trivial
한국의 미래
배려
2009. 5. 26. 01:03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인터넷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느니 이민을 가야겠다느니 하는 글들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사실 객관적인 데이타만 봐도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연평균 수온 증가는 지구 평균 상승률보다 높고 그로 인해 열대성 바이러스나 해충들이 확산되고 있으며 출산률은 점점 낮아져 내수와 생산이 감소하며 과거에는 옷차림이 신분을 구분하는 절대 기준이었다면 앞으로는 외국어 구사 능력이 그러한 잣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점점 군력을 증가시키며 언젠가 독도를 빌미로 한 판 뜰 기세이며 김정일 사후의 북한 체제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에 중국이 호시 탐탐 북한을 먹을 기회만을 노리고 있으니 산을 깎고 땅을 판 후 골재를 배로 옮겨 북해 언저리에 리틀 코레아를 만들어야 시끄러움에서 벗어날 판이다. 두바이에 야자나무 잎 문양으로 인공섬을 만드는 네덜란드의 기술을 도입하여 섬의 형상은 태극을 닮게 하고 음과 양을 가로지르는 섹시한 라인을 따라 베니스와 같은 운하가 펼쳐지게 말이다.
이 모든게 다 노무현 탓이다, 쥐새끼는 일본으로와 같은 철 없는 악플러를 제외하고는 그래도 앞으로 대한민국의 어른이 될 우리 세대들은 평화, 평등, 민주, 비폭력, 사회주의 등과 같은 이념에 대해서는 꽤나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지 않나 싶다. 물론 모든 가치가 돈에 의해 평가되는 신 자유주의적 발상이 만연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어둡게 만드는 유일한 요인이긴 하지만 이번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 많은 교훈을 얻지 않았나 무책임한 낙관을 해 본다. 어쨌든 정치적 이유로 인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맘대로 결정짓지는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정치에서 기대를 한 적이 있었냔 말이지. 온갖 역경을 딛고 최고의 위치에 선 김연아 선수와 같은 개인, 촛불 시위를 평화적으로 진행시키려는 시민과 이를 뒤에서 서포트하는 네티즌들을 볼 때 여전히 한국의 미래는 기대할 만 하지 않냐는 것이다.
이민을 가고 싶다고 섣불리 말하는 사람들은 안쓰럽다. 물론 내 주변에는 그 나라만의 특성에 매료되어 이민을 가서 살아보고 싶노라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을 짜고 있는 친구도 있다. 글로벌 시대에 이게 무슨 우려할 사항이나 되겠는가? 지긋지긋한 단일 민족의 틈바구니에서 고만 고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끼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사는게 지쳤다는데 오히려 등을 떠밀고 싶은 심정이다. 그저 대세를 따라 남들 가는대로, 이미 기반이 잡혀 앞날을 보장받은 곳으로, 자기 치장의 껍데기를 덮기 위해 선택하는 결정에 대해서만 반감을 갖겠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에 대한 극단적 혐오나 한국 자체를 부정하는 이유를 들어 이민을 가겠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역시 적극적으로 이민을 추천하겠다. 어짜피 같은 하늘 아래 살아봐야 별 도움도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난다 하더라도 유 아 웰컴할 곳은 아무데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나마 모국이 있으니 어디가서 말이나 통하고 밥이나 벌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타향살이의 설움도 고려하면서 동시에이민에 대한 큰 소망을 피력하자는 것이다.
살다보면 모국일지라도 등에 칼이 꽂힐 수 있고 사는 동네가 체르노빌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을 겪은 사람이나 능력이 출중하여 타국에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있는 사람의 바짓 가랑이를 붙잡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다. 성찰에 앞서 패배를 선언하며 도피하는 일부의 사람들에게 세상은 그렇게 호락 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어가 만들어질 때 부터 그래야 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유토피아는 결코 구현될 수 없는 이상향인 것이지 실제로 존재하게 되는 순간 그것은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세계가 되는 것이다. 디스토피아도 유토피아도 거울 너머로 맺힌 허상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