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vial

학기말의 주늑

배려 2022. 6. 29. 02:56

1.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시원한 종강을 맞이하기 어렵다.

설계 포트폴리오도 더 열심히 봐주었고, 평가 결과를 설득하느라 힘들었는데

현대건축은 과제를 많이 낸 탓에 채점하느라 하세월을 보냈다.

채점 후 점수를 알리는 것도 하나하나 일이고,

무엇보다 성적을 내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A에서 B로 넘어가는 구간, B에서 C로 넘어가는 구간은 언제나 1점 차이로 갈린다.

그 1점이 뭐가 그리 뚜렷한 차이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이게 스포츠처럼 기록 경쟁도 아니고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2~3년간 학점을 후하게 받은 학생들에게 B나 C학점은 크게 놀랄 일이겠고

그런 학생들의 불만을 대응하는 일은 상상만해도 지치고 질린다.

강의를 열심히 하고, 학생을 푸시할수록 결과적으로 더 부담이 크다.

역시나 이번 학기까지만이다.

얼른 탈출하고파.

 

근데 맨날 도망치려는 이런 새가슴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억대의 재물을 다루고, 예측 불가능한 자연 재해와 싸우며, 미세한 공정을 컨트롤하고,

때에 따라 법정을 오가며 싸우는,

그러면서도 직원들의 월급을 줘야하는 건축가들의 삶이란 얼마나 단단한걸까.

 

그게 무엇이든간에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고 싶다.

 

2.

지금 적는 글은 1번을 적고 며칠 뒤의 기록이다.

글을 쓰고 이틀간은 대학 포털 접속을 회피했다.

학생들의 불만을 보고 싶지 않았다.

글에도 감정이 실려있고, 그것은 현실의 강도를 넘어서 체감된다.
대수롭지 않게 적은 의견도 읽는 이의 폐부를 찌를 수 있다.

 

오늘 큰 맘 먹고 포털에 접속했는데

놀랍게도, 너무도 놀랍게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무소식이 희소식인 경우이며

더불어, 입이 방정인 경우가 될 것 같기도 한 순간이다.

그래. 아무런 정정요청이 없던 학기가 언제 있었던가.

그래도 아직은 한 명도 없음에 감사를 한다.

아니면 요즘 학생들의 전략은 정정기간 말미에 찔러보는 것일까?

 

올해를 제외하고 5회 강의 중 우수강사상을 3회 받았다.

어디까지나 고객(학생)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서비스 정신 덕이다.

혹시나 코로나 영향으로 비대면 강의에 취약했나 싶어 찾아봤더니

작년에도 받은 것으로 봐서 그렇지도 않다. 

마지막 강의라 생각한 올해의 결과는 어떨까.
과제를 많이 냈기 때문에 불만이 폭증했을 거라 생각한다.

 

세상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사람들은 내 예상 외의 삶을 살고들 있다.

학교에 소속되었지만, 그렇다고 기업의 직원들처럼 살진 않는다.

전적으로 쏟아 낼 초점이 없고, 그렇다고 내 주관도 없고.

이도저도 아닌 삶.

 

단단한 중심. 그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