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빌리러 한남동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 내내 화창한 가을 날씨가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들더라.
세상을 빛과 그림자로 양분할만큼 눈부신 빛줄기 임에도 쬐는 이를 말려 죽이려는 듯한 한여름 뙤약볕과 다른 인자함이 가득하였다. 하늘은 파랗고 갓 태어난 듯 포동 포동한 구름이 흐르니 그냥 어디 벤치에라도 앉아 동네 바보형처럼 멍청하게 있어도 부러움을 살 것만 같았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 한 무리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친구들과 마지막 수다를 나누는 것을 보니 문득 옛 생각이 났다. 계절이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이었으랴. 그냥 수업이 끝났다는 것에 기뻐하고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집에 가는 길이 가을 풍경보다 더 값진 순간이었는데. 이 따스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의 적절한 배합이 만들어낸 찬란함에도 아랑곳 하지않는 그들의 천연덕스러움이 위대하게 다가왔다. 모두가 같은 운명을 지고 살았기에 이런게 그냥 인생인가보다 착각하고 살았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건 나 뿐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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