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막연한 설렘을 갖는다.

하지만, 한 두 번 맞이한 날도 아니고

평범한 날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면서도 그런다.

결국, 기념할 만큼 특별해지고 싶다면 스스로 노력하면 될 간단한 일인데

항상 주저하고 우연에 기댄다.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

즐거움도 계획이다.

즐거웠던 연말을 보냈던 적이 있나 모르겠다.

마음이 아린 날의 연속이다.

그래도 이것은 정상이어야 한다고 여겼던 가치를

가족 구성원이 우습게 여기는 꼴을 봐야하고

누가 메테오를 시전했는지 각계에서 연일 별이 떨어진다.

그래. 뭐, 당장 내 몸 어딘가가 뜯겨나가는 것은 아니고

친구, 연인, 스승이 나에게 큰 실망을 안긴 것은 아니니 최악은 아니지만

오랜 실망과 분노가 쌓이고 쌓여 오늘 날에 이르렀다.

누가 보면 이십 대 청춘의 뜨거운 반항인 줄 알겠다.

이제 나도 곧 오십이다.

제발 기득권, 제도권의 일원으로 후학의 도전을 받아주는 그런 너그러운 위치면 안 될까?

속상하다. 속상해.

오랜만에 친척 형을 만났다.

80년대 남영동 대공분실까지 다녀오신 분이다.
나 초딩 때, 한강 작가 아버지처럼, 518 관련 비디오를 보여주다 이모부에게 혼났었다.

애한테 왜 잔인한 거 보여주냐고.

그 얘길 해줬더니 하하하하 웃으며 내가 그랬냐며, 기억이 안 난다고.

비극의 당사자가 아니어서, 이렇게 웃고 넘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침착맨 채널을 보면서 루리웹 게시물을 읽는데

침착맨이 '리마스터'를 언급하자마자 오른쪽 화면에서도 '리마스터'라는 단어가 등장.

요즘 리마스터라는 표현을 잘 쓰나?

그렇지 않다면 무시무시하고, 하지만, 하등의 쓸모없는 우연.  

 

잡지 외고를 안 쓰겠다는 생각은 오래 되었다.

매번 이행하겠다 말을 흘렸는데, 드디어 실천의 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어떤 의미로는 커리어의 종결이다.

투입하는 에너지 대비 소득이 너무도 적으니까.

물론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만,

그래도 가장 심각한 쪽이었으니 그게 맞다.

 

예전 같았으면 비전이나 이익을 따지지 않고 했지만

이제는 자꾸 앞날을 생각하게 된다.

지금 이렇게 발을 굴려봐야 앞으로 맞이할 희망이 없기에

그냥 가만히 있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결국 그게 노화겠지.

심신이 건강했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뭐든 수락하고 움직였으니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뭐가 됐든 2막이 시작 할  때이다.

장막을 올리자.

힘든 날들이다.

방학은 즐거워야 마땅한데.

삐끗한 허리가 계속 아프고, 취침 루틴은 완전히 틀어졌고,

무엇보다 글 쓰는 건 너무너무 힘들고.

무엇보다 마음을 위로할 시기인데 그마저 허락되지 않는다.

금요일까지 계획한 일을 마치고, 즐겁든 아니든 주말을 주말답게 보내고 싶다.

불볕 더위로 반강제 예열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막연한 희망.

즐겁기를 바란다.

 

* 8월의 마지막 날 후기

기억날 일을 한 방학은 아니었고, 곧 개강이다.

그래도 글 쓸 당시에 비해 허리도, 취침도 괜찮다.

글로 괴로운 시기도 넘겼고, 오랜만에 bar에서 맘껏 즐겼다.

종종 생각나는 사람이 있지만,

오늘내일이 아니라 한참 뒤에도 그럴 것이다.

”내가 즐겨 마신 술은 위스키다. 위스키의 취기는 논리적이고 명석하다. 위스키를 몇 방울 목구멍으로 넘기면 술은 면도날로 목구멍을 찢듯이 곧장 내려간다. 그 느낌은 전류와 같다. 위스키 를 넘기면, 호수에 돌을 던지듯이 그 전류의 잔잔한 여파들이 몸 속으로 퍼진다. 몸은 이 전류에 저항하면서도 이를 받아들인다. 저항과 수용을 거듭하면 저항의 힘은 적어지고 수용의 폭은 넓 어져서 취기가 쌓인다. 위스키의 취기는 이리저리 흩어져서 쏘 다니지 않고 한 개의 정점으로 수렴된다. 온 세상 사람들이 너도나도 위스키를 마신다 해도 위스키는 공동체의 술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술이다. 위스키는 단독자를 정서의 정점으로 이끌고 간다. 그래서 위스키를 좋아하면 혼술…“

바 팩토리정의 사장님이 옮긴 김훈의 글

에스프레소에서 시작한 사람도 필터 커피로 관심이 확장되는지 모르겠다.

필터 커피는 저렴한 예산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라

그리고 일본 융드립을 신화적으로 숭배했었기에 필터 커피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다른 영역을 탐하기 시작했고,

에어로프레스, 컴프레소, 모카포트 등을 구매하다가 본격적인 돈지랄을 시작.

코만단테를 구매하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에스프레소로 넘어가자 다짐.

가찌아 클래식 프로와 말코닉 조합으로 2년간 잘 지냈다.

(코만단테가 에스프레소용으로도 적절하다는 리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며칠 코만단테로 에스프레소를 내려본 결과,

그것은 죽음의 노동이었고, 당장 전동 드릴을 찾을 수 밖에 없으니 코만단테는 필터 커피용으로만 쓰자.)

 

국산 에스프레소 머신이 훌륭한 기능에 가격까지 저렴해지면서

좀 더 고급 머신을 들일까 검은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고

그러다 마누스s를 구매할까, 아냐 그럴바엔 그냥 로켓으로 가야지,

아냐 로켓은 직구해야 하고, 그래서 AS도 문제고, 펌프도 국내용으로 교체해야 하고...

하다보니 나는 감히 미크라를 넘보게 되었다.

 

아반떼 사려다 포르쉐 산다는 합리화의 징검다리 이론처럼

그렇게 분에 넘치는 기기를 구입했다.

물론 이 어마어마한 가격을 어떻게 방어할지 여러 희망 회로를 돌렸고

몇몇 일상의 기쁨+해외 여행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치만 그만큼 데일리 커피 타임이 즐거우니 쌤쌤 아닌가!

(응. 아니야)

 

그렇게 (2년 무이자 할부)주문 후, 12일만에 미크라가 도착했다.

사실 기쁨은 잠시, 이 박스를 어떻게 잘 분리수거하지 싶은 고민이 앞섰다.
아우 낑낑
영롱한 자태 등장
그야말로 (유튜브에 차고넘치는)unpacking!
포터필터와 스팀피처, 템퍼 확인. (예전에 주던 선물 왜 안 줘요ㅜㅜ)
공부, 공부.
작고 예쁘고 파워풀. 스팀 켜보고 그 세기와 쿨터치에 놀랐다.
라 마르조코 코리아 흥해라!

 

기념삼아 주문한 라바짜 1kg 원두로 개시를 하며, 개똥같이 그라인더를 맞춰도 그럭저럭 잘 뽑아준 기기에 감사하며

그래 이것이 에스프레소지 흐뭇했다.

역시나 이탈리아 태생이지만, 다소 못미더웠던(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영특한) 가찌아는

집에서 계속 나와 함께~

 

* 자의식이 넘쳐 사진을 찍은 건 아니고, 개봉 영상을 남기지 않으면 불량 AS가 어렵다기에 찍은 영상이다.

왼쪽이 미크라, 오른쪽이 미니.

미니는 앞뒤로 길어서 제법 크기가 있었다.

누군가의 방문기를 보면 직접 시연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내가 간 날 그런 응대는 없었다.

그렇다고 한 번 내려볼 수 있을까요 물어보면 거절할 분위기는 아니고.

 

얼른 만나고 싶다.

페북에는 다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지, 얼마나 깊이 아는지, 얼마나 매사에 크리티컬한지를 진열하기에

고작 겨울엔 문을 닫고 다닙시다 라는 말을 하는 내가 초라해져서, 하루면 휘발되는 인스타 스토리를 활용하자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나 클라이언트에게 노출되는 것도 시간 문제라 생각하니(그리고 정말 몇 시간 후 노출되었다.) 의욕이 급 식었다.

트위터는 고인 물이 되어 돌아가기 싫고, 쓰레드는 새로운 플랫폼이 생기면 새로운 별종이 등장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고,

역시 홈 스윗 홈, 내 맘대로 떠들 수 있는 블로그가 제일이다.

 

관용이 지금보다 넓었던 시대의 주절거림이 그립다. 플랫폼은 중요치 않다.

나우누리, 아이러브스쿨, 프리챌, 싸이월드,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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