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 오전. (벌써 11일 전이라니)

예약 시간에 맞춰 성모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창도 없는 먹방에서 계속 환자를 맞이한다.

저렇게 폐쇄적인 곳에서 업무를 봐도 되는 건가?

벤티 사이즈 정도 될 법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니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 같은 동질감이 느껴졌다.

 

동네 병원에서 검사했던 작은 초음파 사진을 얼굴 가까이에 대고 유심히 보더니

괜찮을 것 같은데요, 라고 했다.

일단 그 말 만이라도 어찌나 울컥하던지.

내가 인터넷에서 봤던 이미지들을 기반으로 예상한 것과는 어떤 부분에서 달랐던 걸까.

그래도 당연히 검사는 진행.

 

정산부터 하는데 역시 적은 비용이 아니다.

난 왜 실비 보험도 안 들고 있었던걸까.

한심.

 

검사는 비교적 간단했다.

요즘은 대부분 세침으로 하는 듯.

인터넷에서 알아볼 때와 달리 그간 기술이 발달했는지 정확도가 많이 높아졌다.

신발도 벗을 필요 없이 침대에 누워 초음파로 위치를 확인하며 침을 조정한다.

약간씩 방향 전환을 할 때 좀 기분 나쁘고 뻐근한 느낌은 있지만

아파서 주먹을 쥘 정도라던가 신음이 나온다던가 그런 건 아니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10일 정도 예상.

역시나 일주일 정도 지나 지난 수요일에 연락이 왔다.

동네 병원에서 듣기로 했는데, 거기로 팩스를 보낼테니 가보라고 했다.

결과가 나빴다면 좀 더 서둘러서 예약을 잡으라던가

내방시 보호자 동행하라는 식의 얘기가 없어서 희망을 가지려 했다.

 

다음 날 오전에 동네 병원에 갔다.

아무리 희망 회로를 돌려도 결과를 듣기 전까지는 당연히 무섭다.

그래서 결국 양성이라는 기쁜 결과를 들었다.

단계로 따지자면 2단계.

암일 확률은 0~3%이다.

물론 결절은 시간이 지나 커지거나 악성으로 변할 수 있다.

이번에는 어처구니 없게 7년만에 받았는데, 매년 추적할 일이다.

7년간 2mm 정도 자랐다.

 

아무튼 기쁜 소식이었다.

그리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선사한 시간.

잠시나마 암 환자에 빙의해서 울적한 날들을 보냈었다.

결코 상상해 본 적 없는 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니 실제로 투병을 하는 환자들은 얼마나 비통하겠는가.

 

그나마 아직은 좀 젊은 나이 아닌가 싶어 괜찮을 거라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동시에 그렇다면 연로한 부모님은? 부모님의 경우라면 그건 그럴 수 있는 건가?

생각만 해도 무섭고, 절망적이다.

그래도 큰 우환 없이 건강을 유지하고 계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더불어 지금 이 순간에도 건강을 위해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회복과 행복을 기원한다.

시간마저 삼켜진 듯 고요하다.

이럴 때 학창 시절 친구를 찾아 정처없이 학교 운동장들을 서성일 때의 감정,

가진 게 없던 처지의 황량함, 소외감, 무력감이 소환된다.

같은 장소, 비슷한 시간대에(보통 일요일 오후 3~4시?)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그때의 슬픔을 꺼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검사 받기 전인데 이것저것 검색하다보니 두려움에 휩싸여 잠을 이룰 수 없다.

괜히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제안한 것도 아닐테고,

남성의 경우는 여성보다 결절이 악성인 경우가 많다고 하고,

나처럼 세로로 긴 형태, 경계가 또렷하지 않은 경우가 악성인 경우라고 하니

그게 아무리 예후가 좋은 암이라 하더라도 무섭지 않을 리 없지.

나도 예전에는 갑상선암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역시 자신의 일이 되니 그때의 내가 그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다.

 

현대인에게 병원만큼 진실된 종교 공간은 없겠다.

그간 삶을 나태하고 방만하게 대했던 태도를 반성하기도 하고

가진 것을 소중하게 지키지 않으려 했던 어리석음도 후회하며

무엇보다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검사를 앞둬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호르몬의 영향 때문인지

요즘은 기분이 바닥을 쓸고만 있다.

이게 다 뭔지 모르겠다.

매년 동네 병원에서 특수 피 검사+간단 초음파를 받았었는데,

흑석동으로 주소를 옮겼던 시기를 기점으로 7년만에 검사를 받았다.

피 검사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 일단 초음파 만으로도 여기저기 문제가 발견됐다.

 

콩팥에 살(?)이 찌고, 동맥에 콜레스테롤이 끼고, 갑상선의 혹이 자랐다.

(갑상선 조직 검사를 받는 날이 다 오는구나)

최근에 뱃살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볼 때 역시 중년의 신진대사는 관심을 요한다.

그간 식단 조절도 없고, 운동도 안 하고, 특히 폭음이 많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를 받은 것.

 

역시 사람이 바르게 살려면 병원을 자주 가야 한다.

결과를 전하는 의사 앞에서 손을 절로 모르게 되고, 그렇게 조신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정말로 술을 줄이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마음을 비워 잔잔하게 살도록 해야겠다.

억지로 즐거워지고, 억지로 망각하려고 알콜에 의존했던 삶은 그만.

애써 견디지 말고, 무심해지자.

 

그러한 삶의 일환으로 7년을 했던 수업도 하나 그만 두려 한다.

 

+

피/소변 검사 결과를 받았다.

그래도 다행히 경동맥 초음파를 볼 때보다는 콜레스테롤이 위험 단계는 아니다.

식단 조절, 운동, 절주로 충분히 수치를 낮출 수 있는 상황.

대부분 수치는 나쁘지 않고, 아주아주 다행스럽게 지방간도 아니었다.

다만 비타민 D 수치가 무척 낮아서 가끔 주사를 맞거나 매일 캡슐을 먹어서 보충해야...

해를 너무 안 봐서 그런가.

아무튼 이 정도면 선방이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갑상선 검사만 별 일 없이 넘어가면 좋겠다.

sns 그게 뭐라고.

일단 트위터, 인스타그램은 접었고,

거의 눈팅만 하던 페북에 애정이 생기기 시작해서인지

딱 그만큼의 마이너스 감정이 생긴다.

그렇다면, 그냥 앱을 지우던, 조용히 멀리하면 될 일인데

애써 '나 이거 이제 그만 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내 자신이 여전히 일말의 관심이라도 원한다는 얘기겠지.

물론 그렇게라도 선언하지 않으면, 수시로 손이 가는 채널을 하루 아침에 끊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럴 땐 그냥 <기슭>에 가서 술이나 마시고 싶은데

너무 멀고, 너무 늦었고

너무 나이가 들어 막 개발되는 연신내 힙 플레이스+ing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용어를 배웠네.

근데 그래서, 관심형 안정 애착(그저 용어의 반댓말로 적어 본)으로 돌리는 방법이 있을까?

위너의 진우가 술 좋아하는 이유가 나랑 같구나.

지난 게시물을 올리고 거의 한 달 만이다.

그 사이에 여러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글로 적기 위해 복기하는 과정이 괴로워서 그냥 넘겨버렸었다.

 

오늘 또 한 번 느꼈다.

분위기 파악을 잘못했다는 것을.

내가 해야 할 임무는 술자리를 계속 끝도 없이 연장하는 게 아니고

적절한 타이밍에 끝냈어야 하는 건데...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마시는 무책임은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다.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시간과 리듬을 고수하는 일이 필요한 태도.

이럴 바에는 그냥 예전처럼 혼자 자리를 떠서

혼술을 하는 편이 낫겠다.

 

이제는 내가 술자리를 주도하는 윗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집에 가고 싶어도 선뜻 일어서지 못했던 과거를 되짚어 보자.

술자리의 즐거움이야 누가 모르겠는가.

적절한 시간에 파하는 것도 내가 담당해야 하는 역할임을 깨닫는다.

그리고나서도 부족하다면, 그것은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할 일.

외롭다.

지난 몇 달간 계속된 감정.

어차피 누군가 곁에 없으니 일하다 저녁에 집에 오면

그럼에도 아무도 없는 시간의 연속.

새벽이 되면 온갖 감정이 요동치고

그렇게 뒤죽박죽인 마음을 다스리다 잠이 든다.

 

대답하는 벽 같은 건 언제 발명되려나.

이 블로그에 기록된 글이 2003년부터라니.

그 숫자를 보니 그저 허탈한 웃음 밖에 안 나온다.

이후로 내가 계속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누가 나의 안위를 묻는가.

자다가 벌떡 일어다 진토닉을 타 먹어야 할 이 괴로움이 당장의 감정인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하소연 할 길이 없어서 끙끙대다가

뭐라도 한 자 기록하려고 들어왔는데

내가 나를 위로하는구나.

 

그리고 결국 그때에나 지금이나

아무도 없다.

무척 부당하다.

당신도 이게 맞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잘못한 이상의 죄책감을 안고 산다.

당신은 이게 맞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그 정도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의적인 미안함은 있다.

분명히 나의 잘못이 있다.

그렇지만 당신의 해석은 지나치다.

나는 결코 범죄자가 아니다.

 

그래서 고민이다.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당신이 정말 맘에 안 든다는 점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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