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 10년차가 되면 세상 모든 게 다 무서워진다.

오늘은 갑갑한 내 인생이 너무 무서웠다.

지하철에서 가쁜 호흡을 하다가

롤러코스터 내려갈 때 느끼는 하반신 허전한 기분도 참다가

결국 자낙스 반 알을 먹고

그러다 갑자기 yj에게 어디냐는 톡이 왔다.

 

우연찮게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고

언제나처럼 찾아온 공포를 알콜로 절일 필요가 있어서

집을 목전에 둔 21시 30에 흔쾌히 술자리에 응했다.

 

(중략)

결국 신사동-평창동-집의 복잡한 여정을 감내했는데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장 큰 불안의 하나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것 보다

지금 나의 위치 때문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강의를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것.

최소한의 범위를 움직이며, 최소한의 인간을 만나고,

예측 가능한 일을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한다.

그간의 10년을 생각해 볼 때 강의를 하면서 보낸 시간은 이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내 업역을 쌓아야겠다.

 

* 내일은 운전을 해야하나 라는 의무감 때문에 더 무서워졌다.

나는 왜 이렇게 운전이 무서울까. 결국 도로에서 불특정다수를 만난다는 그 개념,

그리고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고, 욕도 먹고 싶지 않다는 조심스러움 때문.

그래 옛날에 그랬었지, 하하, 하고 웃을 날이 오려나?

 

* 9월 13일의 기록

8월 25일에 yj와 또 술을 마셨던 게 기록이라면 기록.

그리고 여전히 운전을 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차를 몰고 나갈까 생각은 하지만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까닭. 자전거는 잘 타면서 자동차는 왜 기피할까.

결국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한다.

1.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시원한 종강을 맞이하기 어렵다.

설계 포트폴리오도 더 열심히 봐주었고, 평가 결과를 설득하느라 힘들었는데

현대건축은 과제를 많이 낸 탓에 채점하느라 하세월을 보냈다.

채점 후 점수를 알리는 것도 하나하나 일이고,

무엇보다 성적을 내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A에서 B로 넘어가는 구간, B에서 C로 넘어가는 구간은 언제나 1점 차이로 갈린다.

그 1점이 뭐가 그리 뚜렷한 차이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이게 스포츠처럼 기록 경쟁도 아니고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2~3년간 학점을 후하게 받은 학생들에게 B나 C학점은 크게 놀랄 일이겠고

그런 학생들의 불만을 대응하는 일은 상상만해도 지치고 질린다.

강의를 열심히 하고, 학생을 푸시할수록 결과적으로 더 부담이 크다.

역시나 이번 학기까지만이다.

얼른 탈출하고파.

 

근데 맨날 도망치려는 이런 새가슴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억대의 재물을 다루고, 예측 불가능한 자연 재해와 싸우며, 미세한 공정을 컨트롤하고,

때에 따라 법정을 오가며 싸우는,

그러면서도 직원들의 월급을 줘야하는 건축가들의 삶이란 얼마나 단단한걸까.

 

그게 무엇이든간에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고 싶다.

 

2.

지금 적는 글은 1번을 적고 며칠 뒤의 기록이다.

글을 쓰고 이틀간은 대학 포털 접속을 회피했다.

학생들의 불만을 보고 싶지 않았다.

글에도 감정이 실려있고, 그것은 현실의 강도를 넘어서 체감된다.
대수롭지 않게 적은 의견도 읽는 이의 폐부를 찌를 수 있다.

 

오늘 큰 맘 먹고 포털에 접속했는데

놀랍게도, 너무도 놀랍게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무소식이 희소식인 경우이며

더불어, 입이 방정인 경우가 될 것 같기도 한 순간이다.

그래. 아무런 정정요청이 없던 학기가 언제 있었던가.

그래도 아직은 한 명도 없음에 감사를 한다.

아니면 요즘 학생들의 전략은 정정기간 말미에 찔러보는 것일까?

 

올해를 제외하고 5회 강의 중 우수강사상을 3회 받았다.

어디까지나 고객(학생)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서비스 정신 덕이다.

혹시나 코로나 영향으로 비대면 강의에 취약했나 싶어 찾아봤더니

작년에도 받은 것으로 봐서 그렇지도 않다. 

마지막 강의라 생각한 올해의 결과는 어떨까.
과제를 많이 냈기 때문에 불만이 폭증했을 거라 생각한다.

 

세상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사람들은 내 예상 외의 삶을 살고들 있다.

학교에 소속되었지만, 그렇다고 기업의 직원들처럼 살진 않는다.

전적으로 쏟아 낼 초점이 없고, 그렇다고 내 주관도 없고.

이도저도 아닌 삶.

 

단단한 중심. 그게 필요하다.

이젠 건강을 생각해야 하는 중년이고,

벌이는 시원찮고, 물가는 오르고,

그간 나는 왜 열쳤다고 그리 술을 쳐먹고, 펼치지도 않을 책들을 사재꼈나 후회하고 있다.

주문한 핫토이 루크 스카이워커를 받기도 전에 팔아야하나 고민 중.

취소가 가능하다면 USM도? 아니 근데 중도 취소는 물 건너갔고

삶에 활력을 줄 것 같으니 매일 어루만지며 일 하는 힘을 내보자.

 

1등으로 아껴야 할 것은 술.

bar와는 안녕이고, 술도 2개 정도만 사서 가끔 마시는 정도여야겠다.

어차피 요즘 바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중심 손님의 연령대가 어려서 내가 낄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계속 혼자 가고, 그래서 왁자지껄한 바의 분위기에 도움이 안 된다.

90년대의 강남역 나이트에 30대가 가려고 하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말을 했지만, 불과 일주일 전, 참 바에 가서 역대급으로 계산을 했다.

칵테일은 칼로리가 높아서 위스키를 마시다 보니

그리고 어린 바텐더들이 열심히 일 하는 게 대견해서 옥토모어 같은 거 사주다보니

내가 먹은 것 보다 사준 술값이 더 많았다.

무슨 재벌 아들이라고 이러는지 원.

 

'바는 밤에 문을 여는 병원이다. 영혼을 치유하는 병원이다.'

만화책 바텐더에 나오는 이런 개소리에 취해 바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괜히 밤의 병원을 찾다가 낮의 병원을 더 자주 가게 될 팔자가 될 일이다.

지난 병원의 경험에서 느꼈던 후회와 반성, 겸허했던 자세를 잊지 말자.

 

Last Word를 마시며 비장한 마음을 다지고

Old Pal을 마시며 결별 할 일이다.

 

* p.s. 의지가 2주를 넘기기 힘들군. 27일에 연희동 바에 다녀왔다.

  처음부터 가려고 했다기 보다는 어색한 상황을 맞이하면 도피하듯 말을 꺼낸다.

  내가 뭐라도 결정해야 한다는, 누구도 주지 않은 부담 때문에 불쏘시개를 던지고 마는...

이번이 몇 번째 wave인가.

책 작업이 끝나고 모든 괴로움이 사라졌다고 느낀 기간은 길지 않았다.

자연의 원리가 그렇듯 진자의 운동이나 극의 변화와 같다.

가면 오고, 밀물 썰물, 음과 양, 희로애락, 

 

요즘의 괴로움

1. 학생들 프로젝트 진도가 안 나가서 그로 인한 걱정과 피로

2. 괜히 쪽글을 받기로 해서 버거워진 현대건축 수업

3. 운전도 못하는데 예상보다 빨리 출고되는 차량

4. 차량 구매로 통장 잔고가 0원이 되니 내가 지금 차를 사도 되나 싶은 불안

5. LG와 계약한 원고

6. 수입이 점점 줄어드는데 물가는 오르고, 주식은 안 오르고... 불투명한 미래

7. 갑상선 조직 검사

 

근심의 대부분은 여전히 일에서 오는구나.

그치만 그게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고, 결국 버튼을 누른 건 3번과 7번이다.

아니 근데 3번도 굳이 신경 쓸 필요 없는 건데 항상 왜 이 모냥일까.

 

역시나 요즘의 문제는 죽전 갈 때 신분당선의 청계산-판교 구간이다.

중간에 역 하나 더 생기면 안 되겠냐고.

모든 게 다 인식과 차이인데,

비행기는 10시간도 잘 타고, 기차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버스, 지하철, 택시는 문제인가.

물론 이들은 부류가 다르기도 하다.

전자는 정해진 좌석, 질서 잡힌 승객, 후자는 예측 불가능한 승객, 편하지 않은 승차감, 신경질적인 사람들.

예전엔 지하철에서 잘만 잤는데, 나이가 드니 예민해져서 그것도 어렵다.

5월 4일 오전. (벌써 11일 전이라니)

예약 시간에 맞춰 성모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창도 없는 먹방에서 계속 환자를 맞이한다.

저렇게 폐쇄적인 곳에서 업무를 봐도 되는 건가?

벤티 사이즈 정도 될 법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니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 같은 동질감이 느껴졌다.

 

동네 병원에서 검사했던 작은 초음파 사진을 얼굴 가까이에 대고 유심히 보더니

괜찮을 것 같은데요, 라고 했다.

일단 그 말 만이라도 어찌나 울컥하던지.

내가 인터넷에서 봤던 이미지들을 기반으로 예상한 것과는 어떤 부분에서 달랐던 걸까.

그래도 당연히 검사는 진행.

 

정산부터 하는데 역시 적은 비용이 아니다.

난 왜 실비 보험도 안 들고 있었던걸까.

한심.

 

검사는 비교적 간단했다.

요즘은 대부분 세침으로 하는 듯.

인터넷에서 알아볼 때와 달리 그간 기술이 발달했는지 정확도가 많이 높아졌다.

신발도 벗을 필요 없이 침대에 누워 초음파로 위치를 확인하며 침을 조정한다.

약간씩 방향 전환을 할 때 좀 기분 나쁘고 뻐근한 느낌은 있지만

아파서 주먹을 쥘 정도라던가 신음이 나온다던가 그런 건 아니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10일 정도 예상.

역시나 일주일 정도 지나 지난 수요일에 연락이 왔다.

동네 병원에서 듣기로 했는데, 거기로 팩스를 보낼테니 가보라고 했다.

결과가 나빴다면 좀 더 서둘러서 예약을 잡으라던가

내방시 보호자 동행하라는 식의 얘기가 없어서 희망을 가지려 했다.

 

다음 날 오전에 동네 병원에 갔다.

아무리 희망 회로를 돌려도 결과를 듣기 전까지는 당연히 무섭다.

그래서 결국 양성이라는 기쁜 결과를 들었다.

단계로 따지자면 2단계.

암일 확률은 0~3%이다.

물론 결절은 시간이 지나 커지거나 악성으로 변할 수 있다.

이번에는 어처구니 없게 7년만에 받았는데, 매년 추적할 일이다.

7년간 2mm 정도 자랐다.

 

아무튼 기쁜 소식이었다.

그리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선사한 시간.

잠시나마 암 환자에 빙의해서 울적한 날들을 보냈었다.

결코 상상해 본 적 없는 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니 실제로 투병을 하는 환자들은 얼마나 비통하겠는가.

 

그나마 아직은 좀 젊은 나이 아닌가 싶어 괜찮을 거라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동시에 그렇다면 연로한 부모님은? 부모님의 경우라면 그건 그럴 수 있는 건가?

생각만 해도 무섭고, 절망적이다.

그래도 큰 우환 없이 건강을 유지하고 계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더불어 지금 이 순간에도 건강을 위해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회복과 행복을 기원한다.

시간마저 삼켜진 듯 고요하다.

이럴 때 학창 시절 친구를 찾아 정처없이 학교 운동장들을 서성일 때의 감정,

가진 게 없던 처지의 황량함, 소외감, 무력감이 소환된다.

같은 장소, 비슷한 시간대에(보통 일요일 오후 3~4시?)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그때의 슬픔을 꺼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검사 받기 전인데 이것저것 검색하다보니 두려움에 휩싸여 잠을 이룰 수 없다.

괜히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제안한 것도 아닐테고,

남성의 경우는 여성보다 결절이 악성인 경우가 많다고 하고,

나처럼 세로로 긴 형태, 경계가 또렷하지 않은 경우가 악성인 경우라고 하니

그게 아무리 예후가 좋은 암이라 하더라도 무섭지 않을 리 없지.

나도 예전에는 갑상선암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역시 자신의 일이 되니 그때의 내가 그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다.

 

현대인에게 병원만큼 진실된 종교 공간은 없겠다.

그간 삶을 나태하고 방만하게 대했던 태도를 반성하기도 하고

가진 것을 소중하게 지키지 않으려 했던 어리석음도 후회하며

무엇보다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검사를 앞둬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호르몬의 영향 때문인지

요즘은 기분이 바닥을 쓸고만 있다.

이게 다 뭔지 모르겠다.

매년 동네 병원에서 특수 피 검사+간단 초음파를 받았었는데,

흑석동으로 주소를 옮겼던 시기를 기점으로 7년만에 검사를 받았다.

피 검사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 일단 초음파 만으로도 여기저기 문제가 발견됐다.

 

콩팥에 살(?)이 찌고, 동맥에 콜레스테롤이 끼고, 갑상선의 혹이 자랐다.

(갑상선 조직 검사를 받는 날이 다 오는구나)

최근에 뱃살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볼 때 역시 중년의 신진대사는 관심을 요한다.

그간 식단 조절도 없고, 운동도 안 하고, 특히 폭음이 많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를 받은 것.

 

역시 사람이 바르게 살려면 병원을 자주 가야 한다.

결과를 전하는 의사 앞에서 손을 절로 모르게 되고, 그렇게 조신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정말로 술을 줄이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마음을 비워 잔잔하게 살도록 해야겠다.

억지로 즐거워지고, 억지로 망각하려고 알콜에 의존했던 삶은 그만.

애써 견디지 말고, 무심해지자.

 

그러한 삶의 일환으로 7년을 했던 수업도 하나 그만 두려 한다.

 

+

피/소변 검사 결과를 받았다.

그래도 다행히 경동맥 초음파를 볼 때보다는 콜레스테롤이 위험 단계는 아니다.

식단 조절, 운동, 절주로 충분히 수치를 낮출 수 있는 상황.

대부분 수치는 나쁘지 않고, 아주아주 다행스럽게 지방간도 아니었다.

다만 비타민 D 수치가 무척 낮아서 가끔 주사를 맞거나 매일 캡슐을 먹어서 보충해야...

해를 너무 안 봐서 그런가.

아무튼 이 정도면 선방이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갑상선 검사만 별 일 없이 넘어가면 좋겠다.

sns 그게 뭐라고.

일단 트위터, 인스타그램은 접었고,

거의 눈팅만 하던 페북에 애정이 생기기 시작해서인지

딱 그만큼의 마이너스 감정이 생긴다.

그렇다면, 그냥 앱을 지우던, 조용히 멀리하면 될 일인데

애써 '나 이거 이제 그만 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내 자신이 여전히 일말의 관심이라도 원한다는 얘기겠지.

물론 그렇게라도 선언하지 않으면, 수시로 손이 가는 채널을 하루 아침에 끊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럴 땐 그냥 <기슭>에 가서 술이나 마시고 싶은데

너무 멀고, 너무 늦었고

너무 나이가 들어 막 개발되는 연신내 힙 플레이스+ing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용어를 배웠네.

근데 그래서, 관심형 안정 애착(그저 용어의 반댓말로 적어 본)으로 돌리는 방법이 있을까?

위너의 진우가 술 좋아하는 이유가 나랑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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