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의 통계를 보니 9월 지출의 80%가 술값이다.

그 술값의 80%가 bar in house에서 인생 최대 플렉스를 한 것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니 후회는 없다.

 

문제는 그렇게 마신 날 집에서 혼자 마신 술이다.

금액과 시간의 리미트가 없으니 계속 신나게 마시고 트위터에서 주절거렸다.

근데 그게 좀 많이 후회된다.

 

이후로 트위터에 글을 쓰지 않는다.

이게 뭔 엄한 말 목 베는 소리인가 싶지만,

다양한 감정들이 한데 얽혀 우울해졌다.

더군다나 s형과의 협업이 틀어지며 더 다운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 일도 차라리 잘 한 결정인데

짧은 2주간의 협업이라도 정신적으로 지나치게 소모된 점은 있다.

 

이제 10월이다.

백신 2차 접종도 마쳤고, 월요일에 두 번이나 휴일이 있으니

알차고 기쁘게 살자.

 

앓고 있는 질환들 때문에 화이자 백신 접종 전후로 다도 불안했다.

다행히 이틀째인 아직까지는 큰 변고는 없는데, 2차 역시도 무사히 잘 넘기면 좋겠다.

그나저나 초현실의 인물이 나타나 나의 질환들 중 어느 하나를 낫게 해줄테니 골라보라면 무엇을 골라야 할까.

백 억을 줄테니 이런 걸 할래 수준의 되도 않는 상상을 해봤다.

 

어느 것 하나 사소하지 않은걸.

그렇지만 역시 벗어날 방도가 가장 어려운 것,

수명에 조금이라도 더 영향을 주는 것으로 골라야겠지.

그리하여 큰 결심을 했는데,

 

강직성 척추염, 아토피 피부염, 공황장애 순서가 되겠다.

자, 이제 마음의 결정을 내렸으니 어서 제안을 주세요.

이미 한 번 본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다시 본 날

자기 전, 12시즌에 달하는 [빅뱅 이론]중 한 편을 보는데

메릴 스트립 이름이 등장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래서 우리 인생에 신이 개입하는 순간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신이 고작 이런 사소한 장난으로 본인의 존재를 알릴 이유가 없지)

이만큼 잘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도 일상에서 종종 마주하게 된다는 것.

 

약을 타러 병원 방문.

얼마만이냐 물었더니 6개월 만이란다.

세월도 빠르고, 그간 병원을 안 간 것도 바보같고.

어떻게 지냈냐 해서 좋지 않았다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하다고 했더니

길게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일단 약을 먹고 2주 후에 또 얘기하자 했다.

사실 약을 안 먹고 싶어서 그런 것이지 약을 먹으면 별 문제가 없지.

아무튼 지금의 나는 약으로 좀 후드려패서 과민함을 누그려뜨려야 하나보다.

프로작을 복용하면 괜찮아지겠지.

프로작이니까.

정말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틀.

하도 오랜만에 술자리를 가져서인지 방구석 노인네 회고록도 아니고

묻지도 않았는데 자백하는 피고처럼 안 해도 될 말이 너무 많았다.

집에 오자마자 후회가 밀려오고 어쩔 줄 몰랐다.

이제부터라도 말의 무게를 생각하고, 가급적 내뱉지 말자.

오히려 귀 기울여 듣고, 질문을 많이 하자.

귀인과의 티타임을 앞둔 오후.

밖을 나오니 성큼 다가온 여름이 맞이했다.

그럴 줄 알고 아끼는 파인애플 셔츠를 입었다.

방 정리 중 나온 쓰레기도 분리수거했다.

그간 무슨 대단한 미련이었는지 버리지 않았던 애플 제품의 박스들을 자루에 후두둑 떨어뜨렸다.

디스크 조각 모음을 마친 사람마냥 산뜻한 마음으로 발을 내딛었다.

 

목적지는 지하철로도 얼마 안 됐다.

그런데 갑자기 또 생각났다.

잠을 못 자면 공황이 온다는.

물론 그 말을 방송에서 한 의학 박사는 그러니 잠을 충분히 잘 자두라는 얘기였겠지만

현대인에게, 특히 매일이 불안인 사람에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당연히 충분히 못 잤고, 그분의 얘기가 일종의 암시로 마음에 박혔다.

세로토닌 분비를 차단하는 신경 물질은 열심히 생산되고

고층 빌딩 옥상의 항공 장애 표시등처럼 특별한 조건이 아니더라도 내내 빨간 빛이 깜빡거렸다.

 

아니다다를까 지하철 두 정거장을 못 가 결국 공황이 터졌다.

거기서 그냥 잠깐 딴 생각하며 회피했으면 좋은 결과를 맞이했을 텐데.

근데 그러지 못했다. 문이 닫히기 직전 빠져나왔다. -> 1 down

오늘도 패배했구나. 난 왜 매번 패배인가 자괴감이 왔다. -> 2 down

어려운 사람을 만나는데 지각할 것 같다는 우려를 한다. -> K.O.

불안에 사로잡히니 과거 중 최악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지하철이었다.

그때처럼 되면 어쩌지, 일종의 사망 플래그 같은 생각을 했다.

 

약효가 돌기를 바라며 큰 언주역을 위로 아래로 돌아다녔다.

누가봐도 수상할 모습이었다.

좀처럼 나아지질 않아 약을 또 먹었다.

약을 먹었지만 약효가 나타나기까지 대략 20분이 걸리니 그때까지 어쩌지?

무장해제된 사람의 심정으로 더 큰 혼란이 왔다.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걸리적거리는 호흡, 열차가 오가고, 사람들이 바쁘게 다니는

도시의 건조한 소리와 시각적 자극에 힘들어 했다.

 

결국 걸어가자는 생각에 역 밖으로 나왔다.

열린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이렇게 집에 오는 데까지 1시간 45분을 허비했다.

 

공황이란 정말 뭘까.

비슷한 듯 다양한 면상을 하고 있다.

"그때 그놈인 줄 알았지? 사실 다른 고문관이고 이번엔 내 스타일을 맛 봐라."

공황을 달리 표현할 말들은 생각날 때마다 적어봐야겠다.

그래봐야 경험할 때의 고통을 온전히 전달하긴 어렵겠지만.

 

잠깐 살다 가는 인생인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을 흠결을 따지지 않고 온전히 맺어진 관계만으로 사랑할 순 없을까.

어째서 매일 보는 사람들에게 제일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가.

 

물론 그만큼 부딪히는 횟수가 많기도 하고

나를 만든 사람들이니 나보다 월등히 앞섰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적어도 그 당위는 내가 못나지 않았음을 확신하기 위한 바 아닌가.

유전은 이어진다고 배운 탓에

나의 부족함을 선대에 미루고 마는 못남.

 

얼마나 스마트폰을 다루지 못하든

얼마나 같은 질문을 반복하든

얼마나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든

얼마나 비과학적이든

얼마나 막무가내로 주변을 어지럽히든

 

사랑하자.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측과 소셜 미디어라고 생각하는 쪽의 개념 차이를 생각하자.

그래서 sns에서 뭘 갈구하고자 하는 태도는 적합하지 않다.

정보 혹은 리뷰를 적는 데 있어서도 최대한 간결하게 치고 빠지자.

그래서 관심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검색해 나가도록 물길을 트는 역할만.

딱 거기까지만.

 

sns로 부와 명예를 얻겠다거나, 연인을 만들겠다거나, 팔로워 숫자를 늘리겠다거나...

결국 플랫폼의 주인장 손바닥 안에서 연골 닳도록 각기춤 추는 것 밖에 안 된다.

애초에 sns에서 될 놈은 풍선에 삐라를 담아 날려도 주목받을 놈이다.

 

bar도 마찬가지.

어차피 실력있는 bar는 유명하고, 내가 가지 않더라도 이 코로나 시국에서도 매일 만석이다.

나만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 같고, 자주 가니 인생의 동지가 아닌가 싶겠지만

영업 혹은 당연한 매뉴얼을 따를 뿐인 그들의 친절을 확대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

바텐더는 당신의 친구가 아니다.

업종을 막론하고, 누군가의 가장 친한 사람들은 업계 동료이다.

가깝지만 결코 닿지 않는 바 테이블의 간격.

딱 그만큼의 한계를 인정하고,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독한 술을 파는 bar에서는 매번 지정신이 아니게 되니까)

 

술도 먹었겠다, 위아더월드,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진심을 활짝 열어제끼는데

그런 곳에 쓸 여력(돈과 에너지)이 있다면,

실비보험, 치아보험을 들거나, 감가상각의 법칙에서 벗어난

롤렉스를 사라.

 

팔로워 숫자와 바텐더의 친절.

그것은 물질이되 무게가 0인 이론상의 신재료 같은 것이다.

체적은 무한대인데 볼륨이 0인 멩거스폰지(menger sponge)처럼.

좋은 소리가 뭔지는 모르지만, 기분 나쁜 소리나 잡음에는 예민하다.

벽을 타고 넘어오는 이웃 오디오의 저음, 윗집 아이들의 발소리, 놀이터에서의 굉음.

생각만해도 괴롭고, 핏대가 선다.

 

하만카돈 사운드스틱3(Harman Kardon Soundstick III) 와이어리스는 일종의 재앙이다.

블루투스 기기를 찾느라 폭 폭 소리를 내고

소리가 나지 않는 동안에는 스으으으으 화이트 노이즈가 발생한다.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고, 구글링도 해봤지만, 그 누구도 해결 안 됨.

 

누가 산다고 하면 정말 말리고 싶다. 블루투스를 끄는 기능도 없고,

그래서 와이어리스를 포기하고 단자로 컴퓨터에 연결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심지어 접속 비번 설정도 안 되기에 위아랫집 사람이 접속해서 음악을 틀 수도 있다. 세상에나...

 

한국에서 정식으로 AS도 안 되니 어쩔 도리가 없다.

문제는 전혀 그런 불편함을 못 느끼겠다는 사람도 있어서 의아하다.

노이즈가 안 나는 양품인가, 아니면 그 사람의 무던함인가.

기껏 스피커를 사놓고 제대로 활용을 못해 가슴을 친다.

 

muuto의 테이블 램프도 그렇다.

조광기(dimmer)가 있어서 직구를 했는데, 빛을 최대치로 놓지 않으면 미세한 소음이 발생한다.

사진과 같은 상태일 때에는 고요한 분위기를 즐길 때인데 노이즈가 산통을 깬다.

전자 회로상 어쩔 수 없을 것이고, 테스트 후 이 정도면 큰 지장은 없겠다 싶어 출시가 됐겠지.

저 멀리 테이블에 두면 전혀 거슬릴 게 없겠으나, 컴퓨터 바로 옆에 두고 쓰니 소음을 피할 길이 없다.

 

앞으로도 살면서 숱한 노이즈에 시달리겠지.

노이즈를 가지고 사운드 메이킹을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친숙하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지만 그건 입장이 다르다. 의도가 반영된 결과물과는 다르니까.

그저 언젠가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막연한 암시를 한다.

소음과의 동거가 익숙해지는 그 때.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다.

 

 

/

어제부터 몸이 아팠다.
여기저기 쑤시고, 미열도 있는 것 같고.

그럼에도 음악 수업 전날이라 과제를 하느라 괴로운 새벽이었다.

오늘 아파서 수업을 못 가겠노라 애기하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2주간 쉬고 싶다는 말을 해야했기에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다.

공황 약을 먹고 갔는데, 이상하게 몸도 개운해졌다.

자낙스의 부작용인가?

보톡스, 비아그라, 아스피린 같은 뜻밖의 작용을 하나?

세로토닌은 통증까지도 휘발시키나?

알 수 없는 일이다.

귀가 후 여세를 몰아 그라인더를 돌려 커피를 내리고,

밀린 책장 정리를 마쳤다.

 

/

올해는 술을 안 마셔서 지출이 확 줄어야 마땅한데

이것저것 사재끼느라 출혈이 상당하다.

usm haller, 오디오, muto 조명, 에반게리온, 젠하이저 hd 600, 코만단테, 아이패드 프로.

뭐라도 마구 긁어모아 내다 팔아서 마이너스 재정을 회복해야겠다.

그리고 뭔가 있어보이는 제품들 구입을 근절하기로 했다.

꼭 쓰지 않아도 충분한 대용품이 있는 소모품들.

이솝, 향수 뭐 그런 거.

올해 남은 지름은 ableton live 뿐이려나?

(아. om-d e-m5 액정 모듈 직구가 있구나 ㅠㅠ)

 

/

내 주제에 코만단테가 웬말인가.

그래서 타임모어 그라인더를 샀고, 충분히 만족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타임모어 유저의 칭찬은 마를 줄 모르고,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즐거운 까닭에 조금이라도 맛의 개선을 이끌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소비는 괜찮지 않을까 합리화 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제품 구매 난이도가 점점 극에 달하고, 가격도 덩달아 상승하니

sooner is better 라는 다짐을 했다.

 

지난 토요일은 구매를 위해 잠도 설치고 10:45 부터 ready 하고 있었는데

11시 땡 치고 무려 20초도 안 되어 마감됐다.

그냥 결제 수단이 뭐든 npay에 등록된 그대로 팍팍 결제했어야 했는데

신용카드로 결제한답시고 5초 허비한 탓이었다.

스피드에는 젬병이고, 콘서트 예매나 수강 신청 전쟁을 겪지 않았던 사람이다보니

코앞에서 놓친 물건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그런 것에 화가 날 줄을 누가 알았겠나.

33만원 제품 가격에 기겁을 할 땐 언제고, 이제는 못 사서 안달인지.

 

그런데,

나는 나를 너무 잘 안다.

매일 같이 검색을 하고, 고민을 하고, 직구를 할까말까, 다른 사람은 as를 어떻게 하나

이런 것을 매일 고민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인간이다.

아주 고가의,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대상이라면 포기가 빠르지만

잡힐 듯 말듯 한 제품은 잡을 때까지 질척댄다.

그 소모적인 그림이 너무 선명해서 그냥 되팔이의 새제품을 구매했다.

되팔렘은 그날 같이 광클릭을 했던 사람 중 하나이다.

그는 심지어 물건을 받지도 않았고, 구매한 사람의 주소로 주소 변경만 하면 끝.

빠른 클릭으로 5만 원을 버는 것이다.

 

하지만 내 시간과 정신은 귀하니 그깟 5만원.

5일만 집에 있어도 세이브하는 금액 아니겠는가.

게다가 어지간한 전동 그라인더 보다 퀄리티가 좋은 제품이기에

그 이득을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변명이 길었는데, 오늘 첫 사용한 결과 대만족이다.

이렇게나 만듦새와 퍼포먼스가 좋을 줄이야.

그저 희귀함으로 높은 가격이 아니었다.

가정용 전동 그라인더도 잘 쓰고 있지만, 앞으로는 뒷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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