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방송 제목을 읊어야 할 때.

결국 낙담하거나 자책하거나 상실감에 매몰되거나

자기 손해일 뿐.

어차피 이젠 돌이킬 수 없고, 각자의 삶을 살면 그 뿐이니 정신 방어력을 더 키우자.

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내린 결정인데, 나도 나를 위해.

 

좋아했고 위안을 받았던 세계가 무너졌지만

바를 멀리하고, 술을 멀리하고, 사람을 멀리하면, 돈도 아끼고 건강도 챙기고

무엇이 나쁠쏘냐.

매일 접하는 불행한 뉴스들에 비해 근래의 경험들은 처참함의 근처도 가지 못할 수준.

 

너무 의미를 두지 말자.

뭐 하나 가져가지 못하고 떠나는 삶들 아닌가.

8101번 버스가 활성화 되었을 때에는 KCC 앞에서 단국대 가는 버스를 타고자 반포고 옆 길을 자주 걸었다.

그런데 정책이 바뀌고 8101번이 1101번의 완행 버스가 되면서 한동안 그쪽에 갈 일이 없었다.

더욱이 예전에는 신논현에서 술을 마시고 걸어서 집에 오는 길이 종종 있었는데, 그때에도 반포 자이쪽 건널목을 택해서 반포고 쪽을 볼 일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기분인지 그 길을 걷고 싶었다.

 

당연히 별 생각이 없을 줄 알았다.

그저 조금이라도 숏컷이라 생각해서 택했지 달리 무슨 이유가 있었겠는가.

그런데 학교의 모습을 보자마자 울컥 감정이 터져나왔다.

90년대 중반의 내 모습이 떠오르고, 그때의 학교 생활이 바로 옆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나도 그렇지만 건물 또한 그때의 모습을 잃었다.

붉은 타일이 촌스러웠다 생각했는지 금속 표피를 덧씌웠는데 비록 그런 형상이어도 오래 전의 기억은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은 엄중하게 나를 꾸짖는 듯 했다.

과거의 올곧고 타협하지 않았던 나는 어디갔느냐고.

지금의 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형편없는 인간에 불과했다.

건물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이런 나를 상상도 못했겠지.

과거의 나에게, 내가 좋아했던 장소에게 부끄러운 삶이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은 누구를 비판하거나 쓴소리하는 일은 못하겠다.

나부터 제대로 된 인간이고 싶다.

나이 마흔 넷에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독촉해대는 일만 잔뜩인데

개인 시간이 날 때마다 밀려오는 회의는 어찌할 것인지

앞으로는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남은 삶을 견뎌내야 할 지

그 대책을 세워야 마땅하다.

 

꿈 같은 것은 가당치도 않아.

 

* 갑자기 화가 나서 쓸모없이 공간만 차지하는 이 무용한 책들을 다 팔아버릴까 생각도 든다.

4월 13일. 네가 떠난 지2년이 훌쩍 지났다. 18살의 에마를 위해 영상을 남기는 친구들처럼 우리도 저렇게 천연덕스러웠지. 인생을 살며 친구들과는 세 번의 이별의 시기를 겪는다 생각한다. 졸업, 결혼, 죽음. 하지만 너와는 이 모든 문턱을 넘었어도 결코 멀어지지 않았다. 그 예외적인 인연이 난 기쁘다.

 

p.s. 넷플릭스 트위터 계정이 프렌즈의 에피를 짧게 보여줬는데, 2020년 4월 13일 18살이 되어있을 에마에게 보내는 영상 촬영씬이었다.

2002년 이맘때의 우리도 매우 행복했을 시기였겠다.

소통은 말이 좋지 막상 제대로 된 소통이 일어나지도 않고

불특정 다수의 편집된 행복만을 보면서 나는 왜 이리도 모자란가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오랜동안 정말 좋아하던 사람의 계정을 보면 더더욱 내가 들어갈 틈이 없음에 참담한 심정이고

행여 어떻게든 조금 가까워 지려나 한 마디 얹어 보다가도

스스로도 이거 아닌데 싶은 생각에 자괴감만 작은 몸 가득이다.

 

트위터를 하다가 이게 아닌 듯 하여 인스타를 하다가

인스타 역시 아닌 듯 하여 다시 트위터로 돌아갔는데

결국 그 무엇도 아니다 싶은 결론이라 소외감만 불어났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결국에는 다 필요 없고, 나와 잘 맞는 단 한 사람이면 족한데

이 나이에 그러한 바람 자체가 잘못된 듯 하여 절망적이다.

오랜 지인에게 절교 당했다.

그런 결론까지는 아닐 거라 예상했는데 틀렸다.

이렇게 마음이 아린 것도 오랜만이다.

그나마 당장 마감이 코앞에 닥쳐 아플 시간도 과분한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다 늙어서 절교 당한다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어느 한 시절 차곡차곡 쌓였던 세상이 똑 떨어져나간 기분이다.

부끄럽다.

봄만을 기다렸는데 여전히 해가 지면 방이 너무 쌀쌀하다.

남들은 꽃을 보러 다니고, 사진을 남기고,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나는 지난 시간들만 뒤적이고 있다.

 

작년에는 혜리를 생각했다.

이대에 핀 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올해도 꽃을 보기 위한 모든 조건이 맞지 않는다.

시간, 마음의 여유, 동행인 등등.

 

지독한 우울을 겪고 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야 하는 화, 목을 빼고는 거의 집에 있다.

강의로 모든 진이 다 빠져 회복의 시간이 필요한 까닭도 있고

몸 상태도 별로고, 제일 문제는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해야할 일은 많은데, 그게 또 썩 내키는 일들이 아니라서

대부분의 날들을 책상에 앉아 끙끙대고만 있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남성호르몬의 부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피트니스센터가 문을 연 때에만 잠깐 가다가

요즘은 그마저도 안 간지가 오래다.

 

잠이 많아지고, 머리는 비어가며, 한숨은 깊어진다.

 

결혼을 하고, 양가 친척을 상대하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자신의 업역에서 매년 의미있는 결과를 남기는데

나는 그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데도 계속 정체된 상태로 남아있다.

정말로 무엇을 하는 인간인지를 모르겠다.

몇년째 강의 노동자와 남들이 청탁한 원고나 쓰는 사람으로 굳어져서

나를 위한 일을 할 때의 즐거웠던 동력이 사라졌는데

누군들 다 자기 주도의 일만 하고 사는 것은 아니잖은가.

 

모든 것은 에너지.

일, 사랑, 우정, 공부, 창작, 겸손, 공경, 양보, 배려, 기쁨, 슬픔, 건강.

이제 술은 그만 먹는 게 좋겠다.

어쩌자고 이러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고,

애써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아야겠다.

건강도 챙기고, 마음도 다지고.

건축의 현대성은 ‘집 없음(homelessness)’의 상태라 하였다.
현대적 인간이란 친구 없음의 상태.

1차 이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10말.
2차는 취업 후 결혼이나 귀향등 각자도생하며. 20말 30초.
3차는 이도저도 아닌 놈들이 외로움에 사무쳐 별 것도 아닌 쥐톨만한 공감대를 중심으로 뭉쳤다가 제 잘난 맛에 취해 아집을 부리다 서로의 반발력으로 튕겨져 나가는 시기. 대략 30대 중후반.
4차는 늙고 지쳐 누구를 만날 기력도, 희망도 없는 40대.

1.
술을 먹으면 좋다.
요즘은 소주도 곧잘 먹어.
그런데 술기운을 이끌고 집에 가는 길은
평소 귀갓길보다 적적하고 심란하다.
술 마실 때의 즐거움은 앞으로의 기쁨을 땡겨쓰는 것이었을 뿐.
모든 것이 그렇다.
제스스로 마법처럼 솟는 일은 없어.
잔인하리만치 인과가 분명해.

2.
싫은 게 많다.
특히 의무감에서 자꾸 뭐라도 끄집어내서 건네야 하는 강의가 제일 싫다.
머리에 든 게 없어서 그렇다.
경험상 너무 잘 아는데, 혼자 일하는 것이 그리 유쾌하진 않다.
그렇지만 혼자 일하는 시간을 위해 내 자신을 다수에게 팔아야 하는 시간을 겪는 이 상황은 더욱 비극이다.
고만고만한 사람을 만나며,
내가 뭐라 하던 인생에 조금도 영향을 받을 리 없는 가벼운 관계(이를테면 대강당의 청중)로만 만나고 싶다.
되도 않는 조언을 하고, 크리틱을 하고, 성적까지 내는 직업은 진절머리난다.

3.
남들이 전시하는 삶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그 얄팍한, 중첩된, 투명한, 욕망의 한가운데로 돌아왔다.
부메랑은 돌아오는 궤적에 뒷통수를 맞을 때 더욱 치명적이다.
그들의 위선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 다시 또 노력할 일이다.
성가 부를 때 바이브레이션을 금지시켰던 그 시대로 가자.

4.
싫은 게 많은 와중
언제나 제일 싫은 것은 나.
미세한 것들에 신경 쓰고 일희일비하는
얄팍하고 가난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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