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만을 기다렸는데 여전히 해가 지면 방이 너무 쌀쌀하다.
남들은 꽃을 보러 다니고, 사진을 남기고,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나는 지난 시간들만 뒤적이고 있다.
작년에는 혜리를 생각했다.
이대에 핀 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올해도 꽃을 보기 위한 모든 조건이 맞지 않는다.
시간, 마음의 여유, 동행인 등등.
지독한 우울을 겪고 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야 하는 화, 목을 빼고는 거의 집에 있다.
강의로 모든 진이 다 빠져 회복의 시간이 필요한 까닭도 있고
몸 상태도 별로고, 제일 문제는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해야할 일은 많은데, 그게 또 썩 내키는 일들이 아니라서
대부분의 날들을 책상에 앉아 끙끙대고만 있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남성호르몬의 부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피트니스센터가 문을 연 때에만 잠깐 가다가
요즘은 그마저도 안 간지가 오래다.
잠이 많아지고, 머리는 비어가며, 한숨은 깊어진다.
결혼을 하고, 양가 친척을 상대하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자신의 업역에서 매년 의미있는 결과를 남기는데
나는 그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데도 계속 정체된 상태로 남아있다.
정말로 무엇을 하는 인간인지를 모르겠다.
몇년째 강의 노동자와 남들이 청탁한 원고나 쓰는 사람으로 굳어져서
나를 위한 일을 할 때의 즐거웠던 동력이 사라졌는데
누군들 다 자기 주도의 일만 하고 사는 것은 아니잖은가.
모든 것은 에너지.
일, 사랑, 우정, 공부, 창작, 겸손, 공경, 양보, 배려, 기쁨, 슬픔,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