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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몸이 아팠다.
여기저기 쑤시고, 미열도 있는 것 같고.
그럼에도 음악 수업 전날이라 과제를 하느라 괴로운 새벽이었다.
오늘 아파서 수업을 못 가겠노라 애기하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2주간 쉬고 싶다는 말을 해야했기에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다.
공황 약을 먹고 갔는데, 이상하게 몸도 개운해졌다.
자낙스의 부작용인가?
보톡스, 비아그라, 아스피린 같은 뜻밖의 작용을 하나?
세로토닌은 통증까지도 휘발시키나?
알 수 없는 일이다.
귀가 후 여세를 몰아 그라인더를 돌려 커피를 내리고,
밀린 책장 정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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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술을 안 마셔서 지출이 확 줄어야 마땅한데
이것저것 사재끼느라 출혈이 상당하다.
usm haller, 오디오, muto 조명, 에반게리온, 젠하이저 hd 600, 코만단테, 아이패드 프로.
뭐라도 마구 긁어모아 내다 팔아서 마이너스 재정을 회복해야겠다.
그리고 뭔가 있어보이는 제품들 구입을 근절하기로 했다.
꼭 쓰지 않아도 충분한 대용품이 있는 소모품들.
이솝, 향수 뭐 그런 거.
올해 남은 지름은 ableton live 뿐이려나?
(아. om-d e-m5 액정 모듈 직구가 있구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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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제에 코만단테가 웬말인가.
그래서 타임모어 그라인더를 샀고, 충분히 만족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타임모어 유저의 칭찬은 마를 줄 모르고,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즐거운 까닭에 조금이라도 맛의 개선을 이끌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소비는 괜찮지 않을까 합리화 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제품 구매 난이도가 점점 극에 달하고, 가격도 덩달아 상승하니
sooner is better 라는 다짐을 했다.
지난 토요일은 구매를 위해 잠도 설치고 10:45 부터 ready 하고 있었는데
11시 땡 치고 무려 20초도 안 되어 마감됐다.
그냥 결제 수단이 뭐든 npay에 등록된 그대로 팍팍 결제했어야 했는데
신용카드로 결제한답시고 5초 허비한 탓이었다.
스피드에는 젬병이고, 콘서트 예매나 수강 신청 전쟁을 겪지 않았던 사람이다보니
코앞에서 놓친 물건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그런 것에 화가 날 줄을 누가 알았겠나.
33만원 제품 가격에 기겁을 할 땐 언제고, 이제는 못 사서 안달인지.
그런데,
나는 나를 너무 잘 안다.
매일 같이 검색을 하고, 고민을 하고, 직구를 할까말까, 다른 사람은 as를 어떻게 하나
이런 것을 매일 고민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인간이다.
아주 고가의,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대상이라면 포기가 빠르지만
잡힐 듯 말듯 한 제품은 잡을 때까지 질척댄다.
그 소모적인 그림이 너무 선명해서 그냥 되팔이의 새제품을 구매했다.
되팔렘은 그날 같이 광클릭을 했던 사람 중 하나이다.
그는 심지어 물건을 받지도 않았고, 구매한 사람의 주소로 주소 변경만 하면 끝.
빠른 클릭으로 5만 원을 버는 것이다.
하지만 내 시간과 정신은 귀하니 그깟 5만원.
5일만 집에 있어도 세이브하는 금액 아니겠는가.
게다가 어지간한 전동 그라인더 보다 퀄리티가 좋은 제품이기에
그 이득을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변명이 길었는데, 오늘 첫 사용한 결과 대만족이다.
이렇게나 만듦새와 퍼포먼스가 좋을 줄이야.
그저 희귀함으로 높은 가격이 아니었다.
가정용 전동 그라인더도 잘 쓰고 있지만, 앞으로는 뒷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