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대 건축 대학원에서 현대 건축 강의를 하는 연경이 에게서 네덜란드 도시와 건축에 대한 특강 제의를 받은 것이 벌써 몇 달 전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스스로 쏜 화살은 예외 없이 어느덧 11월 달력의 20일자 네모 칸에 정확히 꽂히고 말았다. 그 때는 그냥 뭐 어깨 너머로 배우고 답사 다니면서 본 걸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에 흔쾌히 승낙을 했는데 막상 강의 준비를 하다보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다시 읽어봐야 될 텍스트들도 산더미라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렸다. 특히나 파워포인트에 들어 갈 이미지들을 찾기 위해 책을 뒤적거리거나 인터넷을 샅샅히 뒤져야 하는 일은 상당히 고역이었다. 한 번 강의에도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매 주 강의를 하는 사람의 입장은 어떨까. 물론 이렇게 크게 한 번 고생하면 파편으로만 떠 돌던 식견들이 하나 둘 씩 모여 매끄러운 이야기가 되는 값진 결과를 낳겠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큰 보상도 없이 그만큼 자신의 에너지를 던져주는 일인 만큼 너그러움과 희생정신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한 때 박사 과정을 밟으려고 이리 저리 알아보던 때가 있었는데 결국 작가의 길을 택한 것이 사회적 시선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나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잘한 결정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p.s. 정말 완벽하게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준비한다면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200장으로도 부족하겠지만 욕심을 버리고 90장 가까이 만들었는데 그러다보니 왜 강의에는 교재가 필요한지 몸소 실감하였다. 나에게 서양건축사를 가르쳤던 김영훈 교수님은 한 학기동안 700장의 슬라이드를 준비했는데 물론 그것들이 여러 학교에서 수년에 걸쳐 사용될 자료들이지만 뼈빠지게 준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강의실 불만 끄면 바로 꼬꾸라져 잠을 쳐 잤던 철 없던 제자여서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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