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황증이라는 것은 이제 괜찮은가보다 안심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데 너 나 모르냐며 길에서 어깨를 붙잡히는 상황과 같다. 아니 실은 케빈에 대하여의 틸다 스윈턴처럼, 그리고 더 헌트의 매즈 미켈슨처럼 불현듯 봉변을 당하는 삶이다. 이것은 일종의 천형이다. 내 일상을 가급적 예측 범위 내에 붙잡아 둔다면 별 일 없이 살 수 있을까? 낯선 만남의 가능성을 줄이고,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게 술도 금하고, 해 지면 바로 잠자리에 들고, 이런 금욕적인 삶을 통해서.

사실은 사랑을 주고 아픔을 나눌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더 좋아질지, 아니면 그로 인해 더 악화될지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요즘은 평소와 달리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복잡한 일과에 노출되었고, 무엇보다 7년만의 유럽 여행을 준비중이다. 

여행만큼 예측 불가능하고 스스로를 좁은 구석에 몰아넣는 행위도 없는 것 같다. 작년 봄의 간사이 여행도 무척 즐겁기도 했지만 밤이면 호텔에서 불안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약을 먹고, 일기를 쓰며 스스로를 달래느라 꽤나 고생이었다. 4년 전에는 운좋게 당첨이 되어 그렇게 그립던 네덜란드에 공짜로 가게 되었음에도 공황증이 도져 급하게 취소했던 전력이 있다. 

어쨌든 이번 유럽행에 대해서는 하루 정도만 더 진지하게 고려해야겠다. 이미 친구들에게 한 번 번복했던 사항이라 무릎을 꿇고 사과할 정도의 미안함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황이라는 놈은 사람의 마음을 극한으로 몰고가는 무시무시함이 있어서 나도 나를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남은 주말, 오직 하나의 당면한 문제를 가지고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예전에는 자살하는 사람을 두고 죽을 용기면 뭐든 못하겠는가 하는 모자란 생각을 가졌었는데 이제는 그게 절절히 공감이 된다. 그들은 진심으로 삶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죽을 생각은 절대 없고 최대한 많은 도움과 조언을 듣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이다. 심지어 큰 돈을 써가며 병원에서 석달간 치료/교육을 받은 적도 있다. 다만, 당시에는 놀라울 정도로 호전이 되었으나 그 이후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슬픈 사정이... 그리고 예전에 비해 공황을 극복하는 기술도 만성이 되어서 그리 효과적이지 않을 때가 있다는 점이다. 

벗을 수 없는 족쇄, 빙의된 망자.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 고통은 절대로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렁 속에서 몸부림 치며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사람은 나 하나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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