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영화는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음악, 언어, 필름 카메라, 컴퓨터 하드웨어=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매커니즘을 가진 존재들: 굳이 서로간의 공통점을 묘사하자면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분야들에 대해 남다른 조예를 가진 c형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다.

아마도 주문한 밥을 기다리던 중 나누었던 에피타이저 같은 질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가장 슬프게 본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었고 화두를 꺼낸 사람의 예의상 나는 시네마 천국이었노라 미리 운을 띄웠다. 동석한 여인 한 명은 감성을 일으키는 과정이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답게도 슬픈 영화를 만족시키는 조건이 꼭 눈물일 필요는 없다고 그럴싸한 정의를 내렸다. 그에 반해 c형은 나의 의도에 너무도 충실한 답을 내었는데, 본인은 내 머리속의 지우개만 보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흐른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는 약간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영화를 보지 않아서 즉각적으로 뭐라 대응할 수는 없었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심금을 울리는 영화라고는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역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전설같이 회자되는 '8월의 크리스마스'나 '파이란' 이었다면 굳이 의문을 가지려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더 자세한 얘기를 들려주십사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나도 몰라. 순간 마음 속에서 괜한 친절함이 터져나왔다. . 좀만 기달려봐요. 내가 얼른 그 영화를 보고서 형이 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는지 유추해 볼게요. 추천하지도 않은 영화를 보게 된 것은 그렇게 순전히 c형의 짧은 대답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건축 모티브를 좋아하는 나에게 주인공 최철수가 건축가로 나오는 설정은 일단 그것만으로도 무척이나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목수와 현장 감독의 경력을 걸어오다가 갑자기 건축사 시험에 떠억하니 합격해서 괜찮은 프로젝트를 따 내고 동시에 사무실을 오픈하는 과정은 그다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최철수 역을 맡은 정우성 특유의 보헤미안 적인 기질은 우리가 생각하는 건축사의 엘리트적이고 학구적인 이미지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뭐 그래도 최철수가 건축가가 되는 과정이 영화의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한 번 웃어 넘기면 되는 얘기들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 했고 덕분에 체감 시간은 실제 상영 시간보다 제법 길게 느껴졌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c형과 얘기하기 전에 내가 예상하던 그대로였다. 사랑하는 남녀는 신분차를 극복하고 끝내 결혼을 하였으나 진남진녀(선남선녀보다 우월한 존재. 진남>선남>미남)로 인해 그 어려움마저 진정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누군가 불치병으로 꽃다운 나이에 사망하는 클리쉐에서 벗어나기 위해 끌어낸 치매라는 소재도 낭만적으로 보일 정도로 모든 역경을 미화시키는 저 외모들이란. 대사에 대해 언급하자면 여보 내가 치매 2기래요는 너무 메디칼적이고 내 메모리는 2mb래요는 정치적이고, 내 안에 너 있다를 십분 활용한 내 머릿속에 지우개 있다가 차라리 파스텔 톤인 것은 잘 알겠으나, 머릿속 지우개가 정말 그런 지우개에 불과했음을 깨달았을 때의 허탈함은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어떤 고상하거나 낭만적인 메타포가 아니라 정말 문자 그대로 영국인 환자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았을 때의 한 방 맞은 느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아무런 이유 없이 한 사람의 무의식을 깨울 수는 없는 법. 나는 영화를 통해 두 가지 단서를 확보할 수 있었다. 첫째로 영화 중간 중간 c형이 너무도 좋아할만한 남미 음악이 풍부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탱고가 꼭 여인의 향기와 같이 탱고 춤을 추는 장면에서만 등장할 필요 없이 실베스터 스탤론과 커트 러셀이 주연한 영화 탱고와 캐쉬에 나와도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공사장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남자와 이에 대비되는 고상한 패션 디자이너가 눈이 맞아 동네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언밸러스에도 라틴의 낭만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영화 배경에 등장하는 건축물을 보고 반가워하는 것처럼 c형은 남미 음악을 듣고 감동하지 않았을까 일단 진단해 본다. 그 음악에 개인적인 사연이 녹아 있다면 더욱 더.


두 번째로 영화의 원작을 들 수 있다.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문구는 이 영화가 일본의 다큐를 토대로 제작 되었다는 것이다. c형은 일본에서 10년 동안 거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영화의 실제 스토리를 일본 방송을 통해 미리 접했을 가능성이 짙다. 그렇다면 한때 열도를 온통 울음바다로 만든 누군가의 사연이 무의식 중에 c형의 눈물샘을 자극하였을 가능성도 짐작해 볼 만 하다. '어라?! 친구라고만 생각했던 아이와 잠시 떨어져 있는 것 뿐인데 왜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나는 거지? 설마 내가 그 얘를 사랑하고 있었던건가?'와 같이 순정만화 여주인공 특유의 뜬금없는 무조건반사가 두 딸을 키우는 마흔 넘은 아빠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리 만무하다고 누가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아직 c형에게는 프로이트 뒷통수를 갈기고 콜롬보의 뺨따구를 후려칠 정도로 주도 면밀한 나의 분석을 들려주지 못했지만 그가 동의하든 아니든 어쨌거나 타인을 이해하고자 한 인도주의적 시도 만으로도 영화를 본 가치는 충분하다.

라고는 하지만 영화만 콕 찝어서 냉정히 점수를 주자면 


★★☆

p.s. 엔딩 크레딧에서 보게 된 건축 자문은 이 영화의 가장 즐거운 요소가 아닌가 싶다. 주인공은 건축 자문의 이름을 고대로 따왔으며 영화에 나오는 사무실도 그의 사무실인 것이다. 교과서적인 이름 최철수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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