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끊기 어려운 이유는 니코틴으로 인한 중독성도 있겠지만 담배를 핀다는 특정 행위를 위해 손과 입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새로운 학설을 주장하는 바이다. 잘 생각해 보면 아무리 분주하게 활동하는 신체 기관들이라도 손과 입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상호 작용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화를 받으면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경우 실상 귀, 입, 손이 동시에 움직이겠지만 입으로 말 하는 행위와 손가락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운동은 엄연히 다른 목적을 띄고 있기 때문에 교류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없다. 가장 명료한 예로는 바로 식사를 들 수 있는데 칼로 음식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거나 스푼 위의 국물을 흘리지 않고 입에 가져가는 것은 얼핏 쉬운 듯 해도 상당한 기간의 가르침과 실패를 통해 얻게 된 능력이며 음식을 온전히 입 속에 넣어야 한다는 의무 이후에 연속되는 치아와 혀의 작용은 곧 풍요로운 맛을 감각하며 위장에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필수적 과정이다. 입과 손을 활용한 남녀간의 애정표현도 이러한 맥락에서 동등한 범주내에 속한다고 보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럼 왜 하필 손과 입의 관계냐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인류의 직립 보행 이후로 감각기관이 재편성 되고 특정 부위가 확장됨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으며 생존과 직결되는 두 가지, 영양 섭취와 종족 번성에 대해 인간 무의식 깊숙히 각인된 위기감이 두 기관의 상호 작용을 통해 경감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또한 부족한 욕구를 해소했을 때의 카타르시스가 알게 모르게 끽연자들의 손에서 담배를 놓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흡연은 곧 각종 암의 발생과 관계가 있으며 수명을 깎아먹는 행위라는 사실은 인류 생존을 위해 길들여진 습관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역설과 같다. 그렇다면 담배는 bc 1000년경 마야 문명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유전자 내에 본능적으로 죽음의 욕구를 거부하는 코드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또 하나의 미스테리이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될 수도 있다. 담배와 암 혹은 그로 인한 죽음의 관계는 최근의 의학 연구를 통해서 규명되었을 뿐, 그 이전에는 이렇다할 경고가 없었다. 아마도 담배가 해롭다는 상식이 꾸준히 주입되면 앞으로 100년 뒤에는 서서히 몸에서 거부 반응이 어떤 형태로든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 이전에 흡연자를 위한 물리적 공간이 규제되고 세금으로 인해 가격 상승이 유발되면 담배를 필 공간과 구입할 여유가 없어서 이 세상에서 담배가 사라지는 날이 올 가능성도 없진 않겠다.
한 끼 넉넉하게 먹은 뒤 피는 식후땡, 격렬하게 해치운 섹스 뒤의 한 모금. 마치 하나의 속담처럼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 이 표현만 봐도 담배를 폈을 때의 기분이 어떻길래 이러한 습관이 형성된 것인지 비흡연자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비록 담배를 끊은 인간과는 상종도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금연은 인류의 난제이지만 인생의 황혼기가 남국의 휴양섬에서나 볼 수 있는 황금빛 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책상 위 '불티나'의 가스를 모두 연소시키고 담배는 과감히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길 권하는 바이다. 금연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신체 부위를 언급하고 인류 역사를 되짚었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건강히 보내고 싶은게 이 글을 쓴 최초의 의도였음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다.
그럼 왜 하필 손과 입의 관계냐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인류의 직립 보행 이후로 감각기관이 재편성 되고 특정 부위가 확장됨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으며 생존과 직결되는 두 가지, 영양 섭취와 종족 번성에 대해 인간 무의식 깊숙히 각인된 위기감이 두 기관의 상호 작용을 통해 경감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또한 부족한 욕구를 해소했을 때의 카타르시스가 알게 모르게 끽연자들의 손에서 담배를 놓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흡연은 곧 각종 암의 발생과 관계가 있으며 수명을 깎아먹는 행위라는 사실은 인류 생존을 위해 길들여진 습관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역설과 같다. 그렇다면 담배는 bc 1000년경 마야 문명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유전자 내에 본능적으로 죽음의 욕구를 거부하는 코드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또 하나의 미스테리이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될 수도 있다. 담배와 암 혹은 그로 인한 죽음의 관계는 최근의 의학 연구를 통해서 규명되었을 뿐, 그 이전에는 이렇다할 경고가 없었다. 아마도 담배가 해롭다는 상식이 꾸준히 주입되면 앞으로 100년 뒤에는 서서히 몸에서 거부 반응이 어떤 형태로든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 이전에 흡연자를 위한 물리적 공간이 규제되고 세금으로 인해 가격 상승이 유발되면 담배를 필 공간과 구입할 여유가 없어서 이 세상에서 담배가 사라지는 날이 올 가능성도 없진 않겠다.
한 끼 넉넉하게 먹은 뒤 피는 식후땡, 격렬하게 해치운 섹스 뒤의 한 모금. 마치 하나의 속담처럼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 이 표현만 봐도 담배를 폈을 때의 기분이 어떻길래 이러한 습관이 형성된 것인지 비흡연자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비록 담배를 끊은 인간과는 상종도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금연은 인류의 난제이지만 인생의 황혼기가 남국의 휴양섬에서나 볼 수 있는 황금빛 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책상 위 '불티나'의 가스를 모두 연소시키고 담배는 과감히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길 권하는 바이다. 금연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신체 부위를 언급하고 인류 역사를 되짚었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건강히 보내고 싶은게 이 글을 쓴 최초의 의도였음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