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관해서는 내키는 대로 살아왔다. 그때 그때의 기분과 화두의 많고 적음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수다스러운 사람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묵한 사람으로 비추어졌다.
요즘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 자유롭고 여기 저기를 떠돌며 지인들을 만나곤 한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근황에 대해 이것 저것 주워듣게 되고 얘기 거리가 될 만한 물고기들(윤상 6집의 두 번째 트랙 '소심한 물고기들'에 근거를 둔다)을 다른 사람 앞에서 방류하게 되었다. 유학을 갔거나 해외 지사에 있다가 잠시 들어온 친구들이 나를 일종의 관문처럼 거쳐가게 되면서 나의 소식 전달 범위는 현재 상당히 글로벌한 위치에 도달해 있다고 본다. 아주 친한 친구들 끼리는 특별히 비밀로 요구하지 않은 이상 어지간한 얘기는 다 터놓고 말하게 되는데 문제는 가끔 아주 친하지도 않은데 같은 자리를 나누게 되는 사람들 때문에 벌어진다고 본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기우에 불과할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청자들이 훨씬 더 과묵한 사람들일 수도 있으나 결국 내 입을 통해 나오게 된 얘기는 사람들을 거치고 거쳐 화제의 대상에게 까지 도달할 것이란 예측이다. 
혹자는 예전에 이런 얘기를 하였다. '너한테만 말하는 비밀인데 비밀을 꼭 지켜주라'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무책임하다라고 말이다. 일단 비밀이라는 중대한 얘기를 본인도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문제이며 그것이 정말 발설되지 말아야 할 비밀이라면 애초부터 본인의 입 밖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얘기라고 본다. 비밀이라고 단단히 셋팅한 사실도 백프로 보안을 책임질 수 없는데 하물며 그냥 내 뱉는 말들이야 어떠하겠는가. 물론 각자가 현명한 맞춤식 검열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들이란 남 몰래 누군가의 얘기를 하는 것이 필요한 존재라 생각한다. 그냥 단순한 순환 고리가 이루어지면 또 다행스럽겠지만 기억력의 감퇴, 과장의 욕구, 상상의 발현 등의 이유들로 인해 이야기는 시간이 갈수록 본질을 잃을 수 있다. 돌고 돌다가 먼 이국 타향에서 본인에 대한 황당한 얘기들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떻겠는가. 농담으로 시작 된 말이 뉴스 추적, 피디 수첩 등의 원고가 되어 당사자의 귀에 들어간다면?
이제는 더이상 철 없는 나이도 아니고 친구들끼리 자주 만나지도 못해 돈독함도 예전만 못하다. 내가 이십 년 지기의 말 실수 하나에 오만정을 다 털어내고 관계를 정리한 것 처럼 이제는 의식적으로 남에 대한 말을 줄이고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혹시나 내가 생각 없이 발설한 얘기에 맘 상했거나 농담이었지만 본인에겐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던 말들이 있다면 무척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고 전하고 싶다. 특별히 대놓고 그런 얘기를 한 사람들은 없지만 그래도 분명 어딘가에서는 내가 던진 얘기들로 오해의 불씨가 바작 바작 타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요즘 말이 너무 많았다. 다소 불친절한 인상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라 말을 많이 함으로써 강한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싶었던 의도도 있었는데 내 얘기를 많이 해주거나 아니면 그냥 과묵한 사람, 화가 난 사람, 무서운 사람으로 사는 편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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