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노래들이 후크송이다 뭐다 해서 단순 리듬과 가사의 반복에 재미들린 것도 마음에 안 들지만 더욱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 감정을 빠르고 과장해서 전달하려는 저급한 발상이다.

백지영 '총 맞은 것처럼'
: 일단 이 노래가 모든 사건의 발단이라 할 수 있다. 꼭 총알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 피를 철철 흘려봐야 이 느낌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적당히 우리 정서에 맞는 가사를 붙여야 할 것 아닌가. '빠따 맞은 것처럼', '마대 자루로 맞은 것처럼', '따귀 맞은 것처럼', '쪼인트 까인 것처럼'...등등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남학생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상황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총을 잡아 볼 수 있는 군인들을 위한 노래란 말인가? 그렇다면 더욱 더 불길한 노래 되겠다. 

8eight '나는 심장이 없어'
: 그냥 할 말이 없다. 심장이 없다니. 터미네이터 4에 나오는 마커스도 아니고 말이다. 이 노래가 나름 히트쳤으니 더 지독한 후속작들이 다른 가수들에 의해 등장할 것 같다. '나는 콩팥이 없어', '나는 쓸개가 없어', '나는 맹장이 없어'... 물론 심장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가 없으니 이런 제목을 붙인다 한들 누가 발끈하며 불편한 기색을 내 비칠 수 있겠나. 하지만 '나는 콩팥이 없어' 등의 제목을 붙인다면 콩팥 하나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몰매맞을 각오를 해야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아픈 가슴을 염통에 비유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가뜩이나 신규 인력이 줄어 근심중인 심장외과의들에게는 이대로 가다간 그나마 있던 일거리 마저 줄 수 있다는 뼈아픈 메세지가 아닐 수 없겠다. 

에반 '머리와 심장이 싸우다'
: 왜 뜬금없이 머리와 심장이 싸워야 하나. 공평하게 장기 대 장기, 부분 대 부분이 맞서야 하는게 옳지 않은가. '머리와 가슴이 싸우다' 혹은 '뇌와 심장이 싸우다'로 고쳤으면 한다. 머리에는 대뇌, 소뇌, 뇌하수체, 안구, 치아, 머리카락, 피부 등등 심방과 심실의 근육덩어리로 이루어진 심장보다 훨씬 많은 요소들이 포진해 있다. 이제 심장 좀 그만 괴롭히자. 얘가 그동안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주었는가.

이승철 '손톱이 빠져서'
: 승철이 형마저 이런 저질 트렌드에 동참하다니 정말 실망이다. 내가 축구하다가 남한테 발가락을 채인 적이 있는데, 정말 운동장을 데구르르 구를 정도의 아픔이 밀려온다. 그 이후 발톱 주위의 피부가 까맣게 변하기 시작하고 며칠 뒤 직립으로 차렷자세를 하고 있는 발톱을 발견하게 된다. 발톱의 끝은 여전히 피부와 붙어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손으로 떼어내야 하는데 '발톱이 빠지다'라고 하기 보다는 '발톱을 떼어내다'라고 표현해야 할 그 과정이 끝나고 나면 아주 못생기고 작은 발톱이 금새 빈 자리를 채우게 된다. 이런 일이 손톱에 벌어진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다.

얼마전 오기사디자인 회식 자리에서 영욱형이 얘기했듯이 가사에는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의 사회 모습이 담겨야 하며, 또한 그 안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잉여물처럼 버려진 초라하고 슬픈 영혼들을 향한 위로의 메세지가 들어 있어야 한다.
구시대와 신시대의 경계에 있는 자로서 대중 가요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사태를 평가하자면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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