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erto innocenti의 '마지막 휴양지'

본 전시는 이태리 볼로냐 시에서 개최되는 아동 도서전의 행사로, 세계 최고·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원화 공모전이다. 내가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함을 쓸 자격은 없지만 아동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꼭 다녀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온 몸이 얼어붙는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전당내 한가람 미술관에 다녀왔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미술관 바닥 동선을 따라 천천히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한적한 분위기였다. 어떤 기법을 썼는지 제법 친절하게 적혀있지만 미술 실기라고는 초·중·고 시절에 배운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여러 방식이 혼합된 그림의 경우 당췌 묘사법을 유추할 수가 없었다. 어떤 식으로 그림을 그려내는지 대표적인 작가의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물이 준비되었더라면 작가들의 무시무시한 그림 솜씨에서 비롯된 열등감이 조금은 보상받는 기분이었을텐데 말이다. 이런 느낌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끝없는 질문과 고민에 발걸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였고, 도저히 따라할 엄두조차 못 내겠다는 그림도 있어서 그냥 '하하하 이건 꿈도 꾸면 안 되지. 아암. 그렇고 말고'를 읊조리며 마음을 비우게되는 그림들도 있었다.
이태리, 일본, 이란 작가들의 그림들이 많은 편이었고 한국 작가는 두 명인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중 한명의 작품은 다른 외국 작가들과 비교해봐도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될 정도로 멋진 화풍을 보여주었다. 특히나 일본 작가들의 작업은 유럽의 색채가 강해서 그림만으로는 작가의 국적을 유추하기가 어려웠는데 한국 작가는 뭐랄까 한국적 정서가 물씬 풍기면서도 뛰어난 묘사력과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수상작들의 전시가 끝나면 특별전이 이어지는데 올해는 이태리의 대표 작가 로베르토 인노첸티(roberto innocenti)의 작품들을 선정하였다. 전시작들이 원화인지 아니면 원화를 스캔한 후 프린팅한 것인지 구분은 못했지만 책에서 축소판으로 볼 때 느낄 수 없는 경이로운 디테일을 그야말로 배터지게 감상할 수 있다. 단언컨데 그림에 바짝 붙어 감탄을 토해내는 사람들로 인해 여기가 전시장인지 서커스장인지 모호해질 것이다. 뷔페를 실컷 먹고 디저트 코너에 갔더니 요리왕 비룡의 궁중요리가 펼쳐졌다고나 할까. 감동이 지나쳐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돈을 받고 용감하게 그림을 저지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반성을 하게 하고, 동시에 앞으로의 방향을 어슴프레 비춰준 원화전은 3월1일까지 전시되며 kb카드, sk텔레콤 멤버쉽카드는 두당 천 원씩 현장 할인된다. 모네, 피카소, 모딜리아니, 리히텐슈타인 등등 유명세가 다분한 그림들도 좋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상상과 환상을 담은 전시의 가치도 이에 못지 않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
 
공식사이트
roberto innocenti에 관하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