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탈로 작업을 해야 할 일들이 왕왕 생기면서 필름 구성들을 정리하기로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예산과 스케줄에 맞춰 물품을 사고 파는 일은 정말 전기구이 치킨집 유리창 안에서 돌고 있는 닭처럼 진과 영혼이 다 빠지는 과정이었다. 주식 현황을 살피기 위해 하루종일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몇 날 며칠을 중고 장터를 뒤적인 결과 그럭저럭 크게 손해 보지 않고 디지탈 라인 업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내가 허비한 시간과, 왔다 갔다 하면서 쏟은 에너지와, 언제쯤 매물이 나올까 노심초사 마음만 졸이며 일이 손에 안 잡혔던 걸 고려하면 분명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밑지는 장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바탕으로 변증법적 논리를 적용해보면 이보다 더 큰 액수의 돈을 움직여야 하는 주식의 경우 난 절대로 손도 대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래서 이 모든 잡소리에도 불구하고 결국 손에 쥔 물건들을 공개하자면.
라이카 최초의 디지탈 레인지파인더인 M8과 35mm summicron 4세대, 역시 원 바디 원 렌즈의 간결한 구성이다.

허나 렌즈용 uv/ir필터를 월요일에 택배로 받게 되고, 새로운 친구에 걸맞는 가죽스트랩을 살 예정이니 진정한 개시일은 월요일 부터나 가능할 것이다. 마치 다큐사진가인냥 언제든 사진 찍을 준비가 돼 있으려는 생각에 바디용 속사케이스를 구매해서 항시 메고다닐 생각이었으나 지옥철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카메라에 흠집이 생길 걸 상상하니 누가 내 몸에 해코지라도 한 듯 불쾌한 느낌을 받아 그냥 예전처럼 케이스 없이 안전하게 카메라 가방에 넣어 다니기로 했다. 더군다나 파일을 옮기기 위해 sd메모리를 뺄려면 매번 케이스를 벗겨야 하는 반복작업이 너무 번거로울 것 같았다.

어쨌거나 꿈에 그리던 렌즈 녹티룩스를 구입해서 온 천하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었는데 렌즈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나의 행태가 맘에 안 들어 조금 더 검소한 구성을 갖춘 것이기도 하다.(녹티룩스는 정말 대단한 렌즈였고 감히 최고라 말하고 싶지만 나의 소심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이효리랑 사귀면서 효리를 여왕처럼 모신다고 생각하면 어느정도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행여 케이스로 보호되지 못하는 부분에 기스가 갈까봐 카메라만 달랑 메고 다니지 못하는 이 nano mind는 결국 내가 라이카라는 고급 기종을 쓰는 한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아 이 물신주의의 망령이여.

대신 디지탈인 만큼 원 없이 셔터를 날리며 카메라의 진정한 존재 목적을 이루면 단순히 물건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고장 없이 오래 쓰고 싶어서 깨끗이 아끼는 걸로 이해되겠지. 오늘 이전에 쓰던 필름카메라를 파는데 구매자가 깨끗한 상태에 감동받는 것을 보고 나도 같이 뿌듯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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