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언제는 안 그랬냐마는 요즘도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위태롭다.
무엇보다 소화가 잘 안 돼서 생리통을 겪는 여성처럼 신경이 날카로우며
날씨까지 건조해져서 피부가 개떡인데, 속이 좋지 않아 약을 못 먹는 악순환이다.
단편을 쓰겠노라, 에세이를 쓰겠노라, 그림을 그리겠노라
선언만 하고 행동에 옮기질 않고 있는 와중에
지독한 감기로 단풍은 구경도 못했고
여전히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큰 부담을 갖고 있으며
얼마전엔 학교에서 이력서를 제출하라 했는데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던 관계로, 게다가 건축 설계로는 더더욱,
자괴감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갑자기 울컥해서 언팔질을 하질 않나, 절친을 제외한 사람들의 연락을 귀찮아 한다.
마감을 한차례 끝내고, 다음 마감을 고민하기 전까지 대략 2주 정도 시간이 있는데
그동안 11월의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럴 때면 각인된 기억처럼 베니스 palazzo grassi에서 봤던 전시가 떠오른다.
전시의 내용보다 더 머리를 때렸던 것은 전시의 제목이었다.
'where are we going?'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고 있는 이 화상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태평양을 떠도는 후쿠시마의 잔해에라도 배를 대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