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친구는 정말 끈덕지다. 
어느덧 20년을 훌쩍 넘긴 것 같은데 아직도 곁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처음 만난 그때처럼 하는 짓도 똑같아서 스트레스로 예민해지거나 과로로 컨디션이 저조해지면 그걸 또 어떻게 알고 금새 모습을 드러내 더욱 깊은 절망에 빠지게 한다. 잠 잘 때에는 좀 해방되겠지 싶겠지만 이 놈이 정말 악랄한 이유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데에 있다. 시계를 보면 분명 충분한 수면을 취했을 시간이지만 놈과 싸우며 온 몸을 뒤척이느라 나도 모르는 사이 에너지를 소비한 나머지 매일 아침 방전된 몸을 이끌고 고통스럽게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하도 어릴 때라 기억도 잘 안 나고 부모님도 이에 대해선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실 뿐이니 다른 사람에게 떠 맡길 수 있는 처지도 아니라 답답하기만 하다. 재밌는 사실은 이 친구는 꽤 유명해서 거의 전국민이 알다시피하며 겉으로 볼 때는 전혀 아닌 듯 싶지만 알고보면 같은 이유로 꽤나 괴롭힘을 당하고 살았던 친구들이 내 주위에도 더러 있다는 점이다. 통계에 따르면,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악행을 일삼는 것 같지만 절대 만날 일 없을 것 같은 외진 동네에서도 출몰할 때가 있으니 그야말로 전국구 조폭처럼 어마 어마한 세력을 확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관광 개발로 환경 문제가 대두되는 제주도에까지 빠르게 퍼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개발의 이면 더러운 어둠 속에서 기생하는 병적인 존재가 틀림없다. 그동안 이 친구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숱한 노력을 기울여 봤지만 사채꾼보다도 더욱 집요한 추적으로 따돌릴 수가 없었고 어찌 된 영문인지 한동안 소식이 뜸할 때가 있었지만 상황을 탐색하기 위한 은신의 일환일 뿐 결코 인연의 끈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신분제도에 갇힌 타고난 운명처럼 지금 상태를 벗어날 수 없으며 죽을때까지 몸에 새기고 가야 할 21세기 주홍글씨 이다. 이 친구와 영원한 이별을 하게되면 난 아프리카나 극지방 같은 혹독한 환경도 견딜 수 있을 것 같고 싸구려 화학 섬유로 만든 옷을 입어도 날개 단 듯 화려한 스텝을 뽐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차라리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는다 해도 당당히 거울 앞에 설 수 있을 것 같고 이성을 만날 때에도 굳이 스케줄 핑계로 날짜를 미루지 않고 가장 초췌한 모습일 때도 환한 조명이 있는 장소를 자신있게 택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야말로 새로운 삶이 펼쳐지고 행복으로 이르는 길이 크게 단축되는 순간이라 단언할 수 있겠다. 때만 되면 발현되는 스티그마타처럼 아픈 상처를 남기고 가는 친구. 잡아 죽일래야 잡을 수도 없는 말코비치 머릿속 유령같은 친구. 그것이 단 십년이라도 앞으로 남은 여생에 대해 정문은 아니더라도 화장실 키 정도를 쥐고 있는 친구. 그 못된 친구의 이름은 아토피이다.

2.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몸에서 개미가 기어다니는 환각을 경험하는 마약 중독자처럼 종일 몸을 긁어댄다. 수업을 듣다가도 대화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북 북 가죽 긁는 소리를 낼 뿐이다. 그래서 증세가 심할 때에는 군데 군데 피딱지가 들러 붙게 되고 간혹 영문을 모르는 친구들로부터 엉뚱한 의심을 사기도 한다. 검은 재킷이라도 입는 날이면 목 주변에 떨어진 두피가 확연히 드러나고 졸지에 머리도 안 감는 지저분한 놈이 되곤 한다. 입 주위 피부는 항상 허옇게 일어나 있으며 입술은 킨타쿤테 처럼 부풀어 오른다. 가물은 논밭처럼 갈라진 입술을 하도 핥아댔더니 이제는 색이 바래 얼굴 색과 구분이 안 간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 놀림이라도 안 당하지 어렸을 적에는 친한 친구들조차 문둥이라는 잔혹한 표현을 서슴치 않았다. 전염이 안 되는 병이라 천만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꽃마을이나 소록도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눈먼자들의 도시'가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남의 시선에 신경쓰게 되고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마련이다. 증세의 심각한 수준은 남자의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검증받을 수 있는데 그 기회가 되는 것이 바로 군대 신검이다. 나같은 경우 천식은 없고 그래도 때에 따라 호전된 상태로 지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3급 현역에 해당된다. 아토피의 증세가 거의 온 몸에 걸쳐 나타나는 경우는 4급에 해당될 것이고 5급 면제를 받는 사람이라면 정말 그 상태는 절망에 가깝다. 장갑, 마스크, 모자, 안경으로 온 몸을 꽁꽁 숨기지 않는 이상 멀리서 보더라도 한 눈에 아토피 환자임이 분명해진다. 가려운 데를 긁다가 상처가 나고 그 상처가 아물면 또 다시 긁어 피부를 상하게 하고 그렇게 자해와 회복을 번갈아가며 수년을 하다보면 피부가 재생력을 잃고 딱딱한 껍질로 변해간다. 과메기가 되기 위해 한 겨울 혹독한 바깥 날씨 속에서 냉동과 해동을 번갈아 겪게되는 꽁치나, 인간에게 불을 전달해주고 매일같이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야하는 프로메테우스도 아니다. 고통을 받는 이유에는 그 어떠한 목적도 숭고한 의미도 없다. 아토피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이유도 어쩌면 그 공허함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아픔과 함께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당신은 정말 용기있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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