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글렌피딕!
글렌피딕은 몰트 입문기에 누구나 거쳐갔을 대중적인 위스키라 온라인시음회에 참가를 할까 고민했는데
역시 결정을 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이런 기회가 아니면 고숙성 위스키를 경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위스키를 마신지 제법 되었지만 여전히 21년, 26년은(30년은 물론이고) 마셔보지 못했다.
위스키코냑클럽의 시음회나 되어야 아드벡의 아드복이니, 발베니30년이니 하는 것들을 마셔볼 수 있지.
zoom을 이용한 온라인 시음회라는 창의적인 시도와 함께여서 한결 재미있었고
간단한 주전부리로 황태껍질 튀각을 곁들였다.
12년
버번과 쉐리 캐스크 숙성이라 기본적으로 단맛과 바닐라 향이 있으나 강하진 않다.
서양 배 혹은 청사과의 상큼하고 청량한 맛이 특징. 역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이유가 있다.
누가 마셔도 싱글 몰트의 특징을 느낄 수 있고, 40도이지만 상당히 절제된 맛.
15년
버번과 쉐리 캐스크의 원액들을 솔레라 배트에 담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절반을 솔레라 툰이라 부르는 오크통에 옮겨
재숙성을 거치는 방식으로 생산한다. 일종의 씨간장이나 백년된 장어집 소스 같은 개념이려나?
몰트 마시던 초창기에는 12, 15, 18중에 15년을 가장 좋아했었다. 특유의 꿀맛이 내 취향이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접한 15년은 역시 그때의 기쁨을 되살려주었다. 버번의 버터스카치, 쉐리의 과일 당 조합은
위스키의 도수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기분을 줄 법 하다.
18년
이전에는 18년의 참 맛을 몰라봤는데, 이번에 역시 괜히 18년 숙성한 게 아니구나 싶었다.
맛이 진하고, 특히 오크의 풍미가 선명해서 이것이 오크 숙성이구나 싶다. 전반적으로 밸런스가 뛰어나고,
사과의 단맛이 지나간 뒤로 계피의 스파이시함이 따라와 다채롭고 재밌는 맛을 경험할 수 있다.
21년
21년간 버번 캐스크 숙성 후 3~6개월을 캐러비안 럼 캐스크에 숙성한다고 한다.
럼 캐스크 숙성이라 그런지 일단 열대 과일과 브라운 슈가의 단맛이 강조되며, 매콤한 맛과 마지막에는 짠맛도 나타난다.
위스키의 색과 맛이 뛰어남은 크게 관계 없을 듯도 하지만, 시각적으로 이렇게 진한 호박색의 술은 괜히 더 보석처럼
가치있어 보이고, 꿀을 가득 품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그런 면에서 21년의 기대치는 실제 맛과 일치한다고 본다.
26년
단종된 술을 마실 수 있어 영광이고, 언제 또 이런 술을 먹나 한 방울 한 방울이 아쉬웠다.
100% 버번 캐스크 숙성인데 캐러멜 색소를 첨가하지 않아 색이 투명하고 옅다. 바로 위에 적었듯 색과 맛을 관계짓는
것은 나만이 아닌가 보다. 고숙성인데 이렇게 옅은 색은 시장에서도 선호하지 않는다 한다. 그래서 단종되었다고.
맛은 의외로 복잡하였다. 숙성 년도가 오래될 수록 맛이 중화되고 부드러움이 강조되는 듯 했는데,
글렌피딕 26년은 다른 제품보다 도수도 조금 높아서 고도수를 마신다는 기분을 들게 하고, 조금 더 원액에 가까운 듯
진함이 느껴졌다. 버번 캐스크이니 만큼 바닐라 풍미가 있고, 여기에 견과류의 고소함과 살짝 오렌지의 과일향이 나타났다.
끝으로는 짠맛이 혀를 터치하며 바닷가의 풍경이 스쳐지나갔다.
개인적인 선호는 21-26-15-18-12 순서인데, 사실 한 잔으로 평가하기 어렵긴 하다.
단맛을 좋아하지만 여러잔 먹기에는 혀가 피곤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무튼 이번 시음회 참여도 좋은 선택이었다.
다음의 이벤트는 무엇일지, 어떤 위스키와 만날지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