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얼마만의 이사란 말인가.

88년에 상도동에서 서초동으로 이주한 이래로 처음이니 대략 27년 만이다.

물론 아파트 재건축 때문에 3.X년간의 타지 생활이므로 27의 숫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갈 전망이다.

매년 집 뒤에서 봄을 알리던 목련과 벚꽃을 볼 수 없어 서운하지만

새로운 아파트 단지에는 어떤 나무들이 들어설지 궁금해진다.


이사 전날에는 잠을 잘 못 잤다.

마감에 대한 걱정 때문이기도 하고, 너무 오랜만의 이사라 두려움이 가득했다.

(2004-2007에는 네덜란드에 있었고, 그때도 이사를 한 번 했지만 짐이 아주 단촐했기 때문에

밴 택시 한 대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했다.)

한 서너시간 잔 것 같았다.

자기 전에 방바닥도 한 번 손으로 쓰다듬어 보고,

괜히 고맙다고 했다.

내가 매일 잠을 잘 수 있도록 지지해준 기반이니까...


이사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나는 이사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고맙게도 형과 어머니가 대부분의 일들을 처리했었다.

운 좋게 멀지 않은 곳에서 전세를 구했고, 상도동과 이웃한 곳으로 가게되니 묘하기도 했다.

흑석동에서의 삶은 꽤나 낯설고, 신기하다.

맘에 드는 점이라면 단지가 조용하고, 깨끗하고, 열쇠 없이 살아도 돼서 편리하다는 점.

게다가 화장실이 두 개인 점이 가장 큰 기쁨일 것이다.

반포에 비해 공기도 맑고, 택배 수거하는 곳이 따로 있으며, 쓰레기 분리수거가 상시 가능하다.

단점이라면 가변형 벽체로 방음이 조금 취약하고, 11층에 살게 되어 뭔가를 잊어버리고 외출한다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곤욕스럽다는 것이다.

4층에 살 때에는 엘리베이터를 타서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 누군가 중간에 합승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는데, 이제는 수시로 엘리베이터 난입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딱히 좋다, 아니다 얘기하기 어려운 것으로는 남향을 들 수 있다.

그동안 한 번도 정남향 방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지라 방을 가득 채우는 햇살은 상당히 낯선 환경이었다.

아직 커튼이 없는지라 오후 1시~5시에는 눈이 부셔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고층이라서 그런 건지 직사광을 한껏 받은 방의 온도는 쌀쌀한 봄이지만 꽤 후덥지근하다.


가장 불편한 점이라면, 역시 교통...

9호선이 연장되면서 배차간격이 너무 늘어졌고, 학교 가는 길이 매우 귀찮아졌다.

흑석역 주변은 차량과 사람 동선이 뒤엉켜 혼잡하고, 택시 잡는 일이 쉽지 않아 보였다.


이사 당일 저녁 늦게까지 원고를 마감하고, 

첫 밤은 역시나 잠을 설쳤고,

그럼에도 설계 수업을 하느라 무척 고되었지만

큰 탈 없이 이사를 마쳐서 다행이다.


27년간 익숙했던 풍경이라도 언제까지 기억될지 몰라 사진으로나마 담아보았다.

안녕, 한양아파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