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성 선수가 아시안컵 결승골의 주역이 되었다.
내내 벤치를 달구고 있다가 연장전에 겨우 교체되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호주의 수비 때문에 완벽한 기회를 얻었다.
최종 수비수가 공격수를 보지도 않고 멀찍이 도망가 버려 이충성 선수의 반경 3m 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세상에나.
이게 오락실 게임이었다면 분명 버그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에이 씨발. 역시 축구 오락은 90년대 세이부축구 이후로 죽었어.'라고 화를 내며 당장 기계를 발로 찼을 법 하다.
19번의 스트라이커는 하늘이 주신 기회에 걸맞게 호쾌하고 그림같은 발리 슛으로 호주의 그물망을 갈랐다.
그리고는 소녀시대의 '훗훗훗'보다 더 빛나는 세레머니로 그동안의 설움을 관중석 멀리 날려 버렸다.

이충성이 이 골로 일본의 영웅이 되었는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드라마같은 삶에 대한 기사가 여럿 나왔다.
'반 쪽발이'로 불리며 설움 받던 청소년 국가대표 시절과 그로 인해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귀화 했다는 슬픈 사연과 함께 그나마 네가 결승전의 주인공이 되어 참 다행이라는 네티즌들의 축하까지.
뭐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오버하시는 양반들이 간간히 보인다.
이래서 한국은 안 된다느니, 선진국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느니.
이충성 선수가 한국 국가대표 시절에 받아던 차별을 lim x→∞로 보내 한 점으로 수렴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를 숙연해지게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패배의식에 찌들고 싶은 건지 속사정은 알 길 없으나 행여 이충성 선수가 한국에서 받았을 상처에 대신 아파하고 미안해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있을까봐서 굳이 한 마디 걸고 넘어지련다.

"선진국에서도 텃세는 물론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남아있습니다. 딱히 한국이라서 그런 건 아니니 확대 해석 말아주세요."

사람은 큰 아픔을 이겨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장하는 법 아니겠는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