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브 오웬과 나오미 왓츠가 세계 은행의 음모를 파헤치는 요원으로 등장한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는 이데올로기, 종교, 국경을 아랑곳하지 않는 금융 기관을 통해 돈 앞에서는 모든 가치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탐욕을 비판하고 있다. 영화 자체는 그리 매력 없을지 모르겠으나 독일, 이태리, 미국, 터키를 넘나드는 로케이션과 아우토슈타트, 과학 센터, 구겐하임 미술관 등의 유명 건축물들의 실내외가 등장하는 까닭에 건축을 공부한 사람에게는 추가적인 즐거움을 부여한다. 
세계은행의 본사로 나오는 이 곳은 독일 wolfsburg(발음이 어려워서 원어 그대로 표기)에 위치한 아우토슈타트(자동차도시)이다. 아우토슈타트는 폭스바겐의 본사, 공장, 전시장이 모여 형성된 일종의 자동차 테마파크로서 폭스바겐은 람보르기니, 아우디, 벤틀리, 부가티 등의 10여개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멋진 차량을 원없이 감상할 수 있다. 어제 포르쉐가 폭스바겐과 합병을 했으니 더욱 엄청난 공룡기업이 탄생한 셈이고 아우토슈타트에서 포르쉐 전시장이 추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우토슈타트의 가장 큰 볼거리는 뭐니 뭐니해도 물 위에 세운 두개의 원통형 건물일 것이다. 유리 파사드로 인해 내부가 훤히 보이는 두 건물은 일종의 차량 자동판매기로써 고객이 차를 구매하게 되면 하루동안 저 건물 안에 보관했다가 다음날 양도한다고 한다. 고객들은 아우토슈타트에서 일종의 관광을 한 뒤 회사측에서 제공하는 호텔에서 하룻밤 묵게 된다. 차량을 보관하는 두 개의 타워는 차를 세웠다 빼냈다 하는 로보트 팔이 내부에 있으며 방문객들의 흥미를 위해 수시로 기계 팔이 차량을 자동 주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가 아니라면 이 건물의 실내까지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영화의 매력이 바로 이 점이고 장소 섭외는 그만큼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우토슈타트의 진입부는 거대 기업의 권위를 나타내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아인트호벤이 필립스 도시인 것 처럼 wolfsburg는 폭스바겐 도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무척이나 작은 도시이다. 하지만 현대 건축의 걸작 중 하나인 자하 하디드의 과학 센터가 중앙역 바로 옆에 들어서서 정말 생뚱맞은 인상을 주었다. 과학 센터는 아이들을 위한 과학 체험 전시관으로서 영화에서는 건물이 이태리에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아우토슈타트와 아주 가깝다. 고로 배경은 전부 합성인 것이다. 
건물을 지지하는 콘크리트 구조와 천장의 조명은 미래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만들땐 고생 꽤나 했겠지만 완성 후에는 이렇게 멋진 배경이 된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전시의 조악함과 무분별함에 두 번 놀라게 된다. 아이들이 어찌나 깽판을 쳤는지 이 비싼 건물 내부는 저렴하기 그지 없다. 
과학 센터의 내부로 추정되는 공간. 역시 영화가 아니면 이런 곳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없다. 사이버틱한 의자 디자인 또한 콘크리트의 차갑고 무거운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이 영화를 보게 한 결정적 이유는 바로 이 구겐하임 미술관 때문이다. 영화 예고편을 통해 구겐하임 미술관 내부에서 총질하는 것을 본 후 과연 얼마나 대범하게 실내를 파괴했나 궁금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그 수준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천창이 깨지고 전시장이 총알로 벌집이 될 정도니 실제 건물이 아닌 세트라고 예상되지만 너무 실물과 다를 바 없어 놀라울 따름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그의 작품을 걸레로 만들었는데 이런 경우 허락은 누구에게 받는지 궁금하다. 영화의 장소 섭외는 미술 감독의 역할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우 탐나는 분야이고 국내에서 저런 장면을 찍는다면 어떤 곳이 물망에 오를지 혼자 상상해본다. (모든 이의 바램은 국회의사당인가?)

세계 은행의 총재이다 보니 사는 집도 예사롭지 않다. 벽난로 대신 드럼통을 가져다 놓는다면 우리네 현실과 비슷할 듯.
밀라노 두오모에 위치하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아케이드도 등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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