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고있는 크리스티나의 눈이 살살 감기는 듯 했다.
새로 산 나의 맥북에어 슬리브즈의 따뜻한 감촉을 좋아하는 듯 해서 기꺼이 그녀의 잠자리로 제공하려 했다.
한 손엔 크리스티나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주변을 정리하다가 그만 에스프레소가 담긴 종이컵을 넘어뜨리고 말았다.
물론 컴퓨터 자판 위에 쏟은 건 아니지만 커피는 순식간에 책상 위로 퍼졌고
맥북에어의 바닥에도 어느 정도 묻긴 하였다.
친절한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때 처럼 사태는 금방 해결됐고
컴퓨터가 잘 작동하는 걸로 봐서 내부까지 커피가 흘러들진 않은 것 같지만
한 순간의 부주의로 받은 트라우마에 아직도 모골이 송연하다.
사실 넷북이었으면 그러거나 말거나 했을텐데 애지중지 하는 맥북이다 보니 그동안 커피 마실 때 마다
굉장한 주의를 기울였었다. 게다가 애플케어라는 든든한 구세주까지 있었지만 언제나 사고는 미연에 방지하는 게
최선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주변을 엄격하게 세팅하며 작업해왔다.
텀블러는 항상 책상 가장 멀리에. 그리고 텀블러와 컴퓨터 사이에는 버퍼 역할을 하는 책을 배치... 등등.
며칠 전에는 키스킨을 사러 매장까지 들렀는데 아직 신형 모델에 대해서는 꼭 맞는 스킨이 나오지 않아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이렇듯 나름 안전을 위한 숨은 노력들이 있어왔는데 고양이 재우려다 다 날려먹을 뻔 하자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가장 크게 남았다.
마치 하루 종일 아이 손 꼭 붙잡고 돌아다니다가 폭탄세일에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자괴감.
좋은 물건은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나다가도 소유하게 되면 그 순간 짐이 되니 난 무소유의 마음과는 거리가 너무 먼 사람이다.
모두가 걱정스런 마음으로 커피 뒷처리를 할 때 크리스티나는 무슨 좋은 구경 났나 싶어 들뜬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겠지.
너 재울려다 아빠는 피눈물을 쏟을 뻔 하였단다.
이 망할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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