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게 벌어질 수 있는 타인과의 적대적 관계가 싫어 운전을 하지 않는 나는 다행이도 대중교통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버스에서는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기사님의 라디오 채널과 내가 듣고 싶은 채널이 다를 때에 발생되는 난감함과 멀미를 잘 하기 때문에 책을 읽을 수 없다는 단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차가 막히거나 와일드하게 운전하는 기사님 때문에 내 의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굳이 음침하고 갇힌 지하 세계를 당연하게 택하게 된다. 공조시스템에 의한 인조공기가 아닌 바깥의 상쾌함과 더불어 휙 휙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을 효율성, 안정성, 정확성, 친 환경성 등 여러가지 근현대적인 가치와 맞 바꾼 셈이다. 하지만 이러쿵 저러쿵 해도 이동시간에 주로 책을 읽는 습성의 사람으로서 멀미나는 버스보다는 지하철이 당연한 선택일 수 밖에 없다. 물론 가끔 음악을 들을 때도 있지만 mp3도 다운받지 않고 그렇다고 음반을 자주 살 여유가 없는 요즘은 한정된 선곡들로 인해 지칠대로 지친 상태라 아직 한 번도 나의 관음적 시선을 느껴보지 못한 수 많은 책들이 지하철에서 지루함을 달래주는 유일한 즐거움이다. 요즘 같이 첨단을 달리는 기술만능시대에 왜 지하철 2, 3호선에서는 라디오를 들을 수 없는 건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책을 펼치게 되는 면도 있으니 더 이상 군말 않고 비교적 가볍고 작은 크기의 건축 서적을 펼쳐든다.

대체 언제부터 지하철은 움직이는 상권이 되었을까. 사방은 광고판으로 도배가 됐고 가끔은 정차할 역을 알리는 목소리 대신 별로 듣고 싶지도 않은 뉴스가 광고와 반반씩 섞여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문이 열리자 특유의 싸구려 박스통을 밀며 스카프, 토시, 우산, 칼, 팝송 등등을 파는 장사치들이 죄송한 건 알지만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잠시만 참으라는 느낌으로 의례 당당히 물건 홍보를 하고, 이에 질세라 귀머거리 아저씨 아줌마들이 핸드폰에 대고 돌고래 수준으로 고래 고래 목청을 높인다. 나이 탓으로 자연히 고막이 퇴화된 걸 뭐라할 수 있겠냐마는, 또 내가 늙더라도 소머즈 귀가 실용화되지 않아 나도 같은 불편함을 겪을 수 있겠지만 굳이 상대방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면서까지 사적인 통화를 해야 하는지는 그다지 오래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딴에는 매너를 지킨답시고 입을 가리며 통화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목소리의 데시벨이 작지 않은 이상 입에서 나온 소리는 곧바로 손바닥이 만드는 움푹한 동굴을 타고 더 낮고 음침하게 깔려 옆 사람의 고막이 아닌 골을 타고 들어가 웅웅대는 소리로 뒤바뀐다. (소리는 고막으로도 듣지만 두개골로도 듣기 때문에 골전도 이어폰도 나오는 것이고 특히 자신이 녹음한 목소리를 들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두개골로 받아들이는 소리 때문이라 한다.)

최근의 dmb시청은 새롭게 등장한 적이다. 지하철에서 외부 스피커로 음악을 듣고 있으면 사람들이 미친놈인 줄 알텐데 이상하게도 dmb는 당당하게 스피커로 감상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핸드폰 dmb시청을 위해서는 일반 이어폰 잭 말고 그 핸드폰에만 맞는 잭이 달린 이어폰을 써야 하는데 두 가지를 모두 챙기기 귀찮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애초부터 이어폰이란 것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나보다. 더군다나 '선덕여왕'과 같은 범 국민적 드라마가 방송될 시간에는 그런 몰상식한 행위가 더 빈번해진다. 내 비록 옆자리의 승객과 일면식은 없지만 흘끔 흘끔 드라마 화면을 쳐다보는 걸 보니 대사도 은근 궁금해 할테고, 그래서 이 내가 붉은 옷을 입고 오필승코리아와 대한민국을 함께 외쳤던 민족적 동질감으로 주옥같은 대사들을 공유하자는 의도였을까. 아무리 좋게 생각해봐도 이건 도저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심지어 두 사람 이상 같은 방송을 시청하면 도플러효과 때문에 배우의 대사가 서라운드 입체음향으로 시간차 공격을 한다. 왜 다들 불러보지 않았나? 돌림노래의 대명사 '동네 한 바퀴'말이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1분단이 먼저 부르기 시작하면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2분단이 그 뒤를 따르고 그렇게 3분단, 4분단이 합세하다 보면 나중에 거대한 메아리가 교실을 가득 채웠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다. 하지만 노래 가사 대신 사극 대사와 특유의 음색이라면 차라리 불당에서 경전 읊는 소리를 듣는 것이 나을 정도이다. 하아.... 그저 한 숨이 길게 나온다. 대통령이 탄핵될 때 보다 내가 피부로 느끼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건 너무 개인주의적인 삶일까. 도저히 상황을 참지 못하고 옆 칸으로 이동한다. 다행이도 그 곳에는 술 취해 역한 숨을 내 뿜는 취객도 없고 핸드폰 통화하는 사람도 없이 아주 조용한 객차였다. 즐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다.

이 참에 한마디 하자면 일본 친구 말로는 지하철 역에서 핸드폰 통화는 되지만 객차가 운행 중에는 전파를 차단해 핸드폰이 안 터진다고 하더라. 물론 모두가 동일하게 소중하고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막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니 일본처럼 극단적인 침묵을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실내공간에서는 그에 걸맞는 에티켓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개인의 자유간에 접점을 찾을 수 없다면 적어도 모두의 행위가 가능하도록 공간을 분배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가. 이미 노약자를 위한 자리가 오래전부터 마련되었고 전동차를 타는 장애인이나 자전거를 위한 장소가 신설되고 출퇴근시 여성 전용 객차가 제공되니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도서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객차 두 량정도만 분배해주면 정말 행복한 대중교통 이용이 될 거라 확신하는 바이다. 꼭 지하철에서 장사를 해야겠다면 그것도 좋고, 연인이 담소를 나누거나, 비즈니스맨이 중대한 통화를 하는 것도 모두 좋다. 그러니 나도 온갖 소음에 시달리지 않고 책 읽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라 이 놈들아!!!!!! 건축 책 이해할려면 열라게 집중해도 머릿속에 잘 안 들어온단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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