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듯한 직장 생활로 다달이 주택청약부금을 채우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시제의 삼단계(과거, 현재, 미래)를 알콩 달콩 논하는 형편이 아님에서 오는 정신적 아노미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북한 현실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수확의 계절과는 먼 아파트 장판 바닥에 거뭇거뭇 풍년을 이룬 머리카락들을 보고 있자면 매일같이 생산해내는 스트레스의 양이 얼마만큼인지 산술적 설명이 가능할 정도이다.

뿌리를 끊고 자살한 머리카락들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서글픈 생각과 함께 주섬 주섬 손날로 머리카락들을 한 데 모으다가 문득 머리가 예상 외로 많이 빠져 지금과 같이 결실 없는 수확을 해야 했던 중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런 생산량이면 삼십대엔 가발 공장을 차려도 되겠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나름 긍정적으로 회피했던 그 때, 기왕 필요하다면 내 머리칼로 만든 가발이 거북하지 않겠다고 파란 레쟈 커버의 수첩 사이에 검은 재료들을 저축해뒀던 엉뚱한 순간이 있었다. 다행히 고등학교때는 어린 아이들 머리숱 많아지라고 한번 시원하게 깎는 생활 속의 진리를 증명하듯 스포츠머리가 꽤 효과적이었고(유전적 원인은 이것마저 소용이 없겠지만) 일단 개체수가 짧다보니 머리가 빠져도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특별히 의식하지 않은 채 그동안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는지 뒷통수에 미스테리 서클이 만들어졌는지 내 알 바 아니었다.

파릇 파릇한 청춘의 머리 꼭대기를 지배하던 당시의 고민은 여느 또래가 그러하듯 근원을 알 수 없이 뿜어져 나오는 반항심 때문이 아니요, 될래야 될 수 없는 브라운관 너머의 존재에 대한 사랑도 아니요, 눈에 불을 켜고 책을 파보아도 오르지 않는 성적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 세속적인 차원과는 거리가 멀었던,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얼토당토 않는 고민거리는 바로 '휴거'로 야기된 종말에 대한 공포였다. 1992년 『다미선교회』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낚시질을 했던 휴거는 10월 28일 자정에 맞춰 선택된 예수 신봉자들만 하늘로 승천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아한 자태로 지구여 안녕을 외칠 수 있는 자격요건이 어떤 건지는 몰랐지만 주변 교회를 지날 때 들리는 우뢰와 같은 손뼉과 목놓아 부르는 노래들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가정과 직장을 내팽개치고 휴거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그 여파란 대단했고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우는 어른들이 앞장서서 종말을 이야기하니 이제 막 가치관이 뇌에 착상된 소년은 불안에 허우덕대기 시작하였다. 헌데 이상한 점은 부모님도, 친구들도, 학교 선생님도, 언론에서도, 정부에서도 그것이 명백한 거짓이다라고 얘기해 준 기억이 없다. 너무들 조심스러워서 오히려 진짜 가능성 있는 일이라 쉬쉬하는게 아닌가 반문할 정도였다. UFO가 '미확인'이라는 모호한 수식어로 존재 가능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빵상 아줌마의 낭만을 꺾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까닭에 쇼펜하우어를 만난 적도 없는 학생이 생의 의지를 철학하게 되었고 비리 비리 말라가는 정신은 자코메티의 조각에 견줄만 하였다.

드디어 10월 28일 운명의 시간은 다가왔다.
한국 시각으로 0시면 미국은 하루정도 차이나는 곳도 있고 유럽은 7~8시간 뒤일텐데 한국 기준으로 세계적인 부름이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각국의 0시를 기점으로  전지구적 릴레이가 펼쳐지는지 벌써부터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렇게 반신반의 하면서도 라디오가 공신력있는 카운트다운을 하기까지 망부석처럼 기다리는 나 자신도 늠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문세의 별밤 클로징 멘트가 끝난 후 얼마 안 있어 열두시를 알리는 기계음이 긴장 가득한 방의 정적을 깨는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뻔뻔하게 외쳐대던 것과는 달리 밖은 여느 때와 같이 초겨울 청명한 공기만이 흐를 뿐  휴거는 커녕 그 흔한 날벌레조차 눈에 띄지 않았고 세상은 휴가철인양 고요하기만 할 뿐이었다. 일상의 스케줄대로 차분한 오프닝 멘트를 전달하던 새벽 디제이의 음성을 들으며 애진작에 주무시던 부모님이 이미 여한없는 생을 살아서 속 편하게 계셨던게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은 설마 성적 상위권에 속했던 아들이 그런 사이비의 농간에 넘어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셨지만 나는 정말 생각보다 순진했고 누군가와 종말론에 대해 솔직한 고백을 나누고 위로받고 싶었었다. 그러는 몇달 동안은 은근히 괜찮은 척 밥도 잘 먹고 학원도 잘 다니는 평범한 날들 이었지만 아무도 곁에 없을 때 안에서 홀로 삭힌 고민의 흔적은 결코 젊은이답지 않은 흔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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