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테온이라는 이름은 '모든'을 뜻하는 '판(pan)'과 '신'을 가리키는 '테온(theon)' 두 단어를 합친 말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 신을 함께 숭배했던 고대 로마인들은 인근지역을 무력으로 정복하더라도 신을 향한 그들의 믿음까지 빼앗지는 않았어요. 다신교 문화를 바탕으로 종교의 다양성을 존중 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모시는 신의 숫자는 늘어만 갔고, 30만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신이 존재하다보니 그리스의 경우처럼 특정 신 한 명을 위해 신전을 세울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결국 누구하나 섭섭하지 않게 모든 신들을 아우르는 건물을 짓게 된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로톤다광장에는 판테온을 보러온 관광객들로 가득합니다. 로마에 가면 꼭 방문해야 한다고 안내 책자에서 강조하는 것에 비해 밖에서 보이는 건물은 무척이나 초라하고 낡았습니다. 교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 흔한 조각 한 점 달려있지 않고 입구를 떠받치는 16개의 코린트식 기둥에 장식된 잎사귀들은 죄다 벌레 먹은 듯 끝이 닳아 있습니다. 국가의 보물이자 신성한 신전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방문객들의 소란스런 왕래에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고전 양식으로 구성된 입구 정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흔적이란 M.AGRIPPA.L.F.COS.TERTIVM.FECIT라고 쓰인 라틴어뿐인데 이는 루시우스의 아들인 마르쿠스 아그리빠가 세 번째 집정관 임기에 만들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판테온은 아그리빠라는 사람이 만든 것일까요? 그 역사적 기원에 대해서 잠시 짚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아그리빠는 황제 카이사르가 양자인 옥타비아누스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기 위해 발탁한 시골출신의 병사였습니다. 카이사르가 기대한 대로 아그리빠는 군인과 정치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고 옥타비아누스가 훗날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가난한 시골 출신에서 제국의 2인자가 된 아그리빠는 항상 카이사르와 신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고 기원전 25년에 판테온을 지어 모든 영광을 고인이 된 황제 카이사르와 자신을 지켜준 로마의 모든 신들에게 바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사각형이었던 최초의 판테온은 불행하게도 기원후 80년에 대화재로 불타 버리고도 미티아누스에 의해 다시 지어진 건물은 110년에 벼락을 맞고 보수가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었습니다. 결국 118년 하드리아누스황제에 의해 새롭게 계획되어 128년에 공사를 마친 세 번째 건물이 현재 우리가 보는 판테온인 것 입니다. 보통은 건축물에 대해서 건축가의 이름이 기록되는데 비해 어디에서도 건축가를 찾아 볼 수 없고 오직 하드리아누스황제의 이름만 남아있는 이유는 왜일까요? 그리고 아그리빠의 이름을 건물에 새겼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하드리아누스는 다른 황제와 달리 건축과 도시계획에 관심이 많았고 예술적 재능이 풍부했던 까닭에 건물 형태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판테온의 경우 역시 기본적인 계획은 황제에 의해 이루어지고 실제 공사에 관한 세부적인 문제들만 건축가들이 관여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스스로의 위대한 창조물을 아그리빠의 공으로 돌린 것은 최초 건설자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위대한 황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아그리빠를 기념함으로써 본인의 정통성을 은근히 강조하려는 정치적인 이유도 담겨 있습니다.


입구에 가까이 갈수록 수 세기에 걸쳐 새겨진 상처들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집트에서 수입된 붉은 화강암 기둥은 거칠고 색이 바랬으며 발코니 지붕을 덮었다던 청동은 오간 데 없고 새까만 나무 구조가 부끄럽게 속살을 노출 하였습니다. 모든 신들을 위해 봉헌 되었던 신전은 609년 동로마제국의 황제 포카스가 교황 보니파시오 4세에게 소유권을 넘기면서 기독교의 신을 위한 성당으로 한순간에 운명이 뒤바뀝니다. 기독교의 보호 아래 그토록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외부로 드러난 질 좋은 대리석과 건물 정면을 장식하던 조각들이 약탈당하는 것 까지 막기는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663년 콘스탄티우스황제는 로마를 방문하는 12일 동안 값어치 있는 장식품들과 청동기와를 모두 가져가 버렸고, 17세기 초 교황우르바노 8세는 산탄젤로 성의 방어를 위해 입구 천장을 덮은 청동 25톤을 모두 녹여 대포를 만들었습니다.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리던 화려함은 어느새 콘크리트와 벽돌만 남아 칙칙해졌습니다. 조각들을 매달기 위해 여기저기 구멍이 흉하게 뚫린 페디먼트 밑을 지나 오랜 노력 끝에 복원한 청동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가 봅니다.


아! 하늘을 덮은 거대한 돔 지붕이 만든 실내공간은 정말로 거대하고 경이롭습니다. 지름 43.3m의 공이 들어간다면 바닥에 그 끝이 정확히 맞닿을 정도로 정교하게 짜인 내부는 공학과 수학이 이룩한 건축의 기적입니다. 일반 건물 15층 높이에 달하는 천장에서부터 1층으로 전달되는 콘크리트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벽의 두께는 얇아지고 재료도 비교적 가벼운 돌들로 이루어졌습니다. 단단하고 무거운 석회질로 구성된 1층 벽은 무려 6.2m나 될 정도로 두꺼우니 웬만한 폭탄에도 끄떡없을 것 같네요. 콘크리트가 굳는 속도를 빠르게 하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사각형 모양으로 촘촘하게 판 벽면은 입체적인 패턴을 이루며 장식적인 효과까지 달성했으니 일석삼조입니다. 이후 모든 돔 구조에 영향을 미치게 된 판테온의 돔은 시작부터 얄미울 정도로 완벽한 모습을 갖추었네요. 유일하게 뚫린 머리꼭대기의 둥근 창을 통과한 강렬한 햇살이 바닥에 눈부신 원을 그려냅니다. 거대한 실내를 가르는 한줄기 빛을 따라 사람들이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이 재밌습니다. 실내를 밝히고 공기를 순환시키는 9m 지름의 창은 비가 내리면 더운 실내 공기를 밖으로 뿜어내면서 내부에 떨어지려는 빗물을 밀어 낼 정도로 과학적입니다.   


실내에 들어서기까지 앞만 보고 걸었던 사람들은 둥근 창을 보기위해 고개를 들고 한참을 서 있습니다. 고대로마 때부터 사람들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각자의 위대한 신에게 기도를 올렸겠지요. 인간의 시선이 수직을 향하면서 저 하늘 너머 어딘가에 있을 신의 위대함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판테온의 둥근 지붕은 하늘을 닮은 것 입니다. 하늘은 둥글다는 당시의 생각이 이러한 공간을 만들게 된 이유인 셈이지요. 욕심이 많은 누군가가 사각형문양 가운데 하나씩 달려있던 금장식을 훔쳐가기 전에는 우주에서 빛나는 별들과 같이 신비로운 반짝거림이 하늘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신의세계가 황홀하게 펼쳐졌으리라 짐작됩니다. 고대그리스는 맑고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종교의식이 대부분 야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전은 외부를 향해 열려있고 상대적으로 내부공간에 대한 관심은 덜하였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건축은 성당이나 공동목욕장에서 알 수 있듯이 중요한 행위들이 내부에서 일어나며 따라서 어떻게 하면 실내를 더욱 웅장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을 바꾸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의식에 따라 건축공간이 역전되는 큰 변화를 2000년이 지난 지금의 판테온에서도 변함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쓰러져가는 외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르네상스이후로 유명인사들의 무덤으로 사용된 판테온은 비록 신성한 건축으로서의 기능을 잃었지만 그 자체로 신화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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