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여차 저차해서 아리랑티비에 잠깐 등장한 일이 있었다. 어짜피 외국인 친구가 주인공이고 나야 그 친구의 지인으로서 나온거라 어디서 자랑할 형편도 못 된다. 더군다나 공중파 방송도 아니고 아리랑티비이니 국내에서 그 프로그램을 생방송으로 시청했을 사람이 내 주위에 누가 있을까. 심지어 나도 못 보고 당사자인 독일 친구도 못 봤으니 말이다. 얼마나 관심이 없는 코너였는지 아리랑티비 홈페이지에서도 정보를 찾을 수가 없고 그 흔하디 흔한 vod서비스에서도 그 프로만 쏙 제외되었다. 그래서 결국 제작사 작가에게 연락해 방영된 영상을 파일로 달라고 했다. 근데 개념 충만한 작가가 굳이 직접 만나서 주고 싶다고 하기에 독일 친구와 함께 식사 약속을 잡았고 독일 친구가 며칠 뒤에 독일로 영영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의 한국어 선생을 비롯하여 다큐멘터리를 도와준 관계자 두명이 더 모이게 되었다. 독일 친구 지인 다섯에 작가 한명이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따지고 보니 나를 포함 세명이 디비디를 받아야 할 중요 인물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몰랐지만 작가는 내가 잘 모르는 관계자 두명이 함께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니 당연히 세 장 이상의 디비디를 구워왔어야 정상이었다. 근데 이게 웬걸. 막상 작가는 디비디를 두개만 가져오고 하나는 당연히 주인공에게 건네주고 나머지 하나는 나이 많은 과장님이라 불리는 여성께 건네주는게 아닌가. 나에게는 뭐 이렇다 할 얘기도 없는걸 보니 독일 친구를 통해 복사를 하라는 의미로 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순간 밥도 먹기 전에 혈압이 올랐으나 잘 모르는 사람도 함께 있는 곳에서 분위기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한 것이 그냥 친구 도와주는 셈 치며 하루 통역하면 되겠지 싶었던 일이 영어 한마디 못하는 작가와 피디 때문에 내가 스토리를 구상해서 장소 섭외, 친구 스케줄 조정까지 일인 다역을 해야하는 상황으로 커졌고 그럼에도 돈 한푼 안 받고 도와줬는데 방송이 언제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내가 방송국 홈페이지를 뒤져야 하는 식이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본인이 꼭 밥을 사겠다던 약속도 어느새 쏙 들어가고 손수 주겠다던 디비디도 알아서 카피하라는 식이고... 이게 방송 촬영 전이었으면 유인촌 처럼 한마디 했을 것이다.

"아오. 찍지마 씨~ 승질 뻗쳐서~" 

내가 한창 바쁘던 때에 매일같이 전화를 해서 괴롭히길래 너무 하시는 거 아니냐고  언질을 준 바 있지만 결국 마지막에도 유감스런 기억을 만들어 준 작가는 무슨 일을 하건 한번만 더 생각하는게 사회 생활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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