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비가 올 거라고 예측이 돼서 그런 건지 오늘 하루는 정말 대놓고 한증막 이었다. 누구는 뚝섬에서 비키니 입고 태닝하고 있을 때 나는 가로수길에서 셔터를 누르며 얼마 남지 않은 필름 카운터 숫자를 늘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찍는 사진이라 반가웠고 5년 만에 써 보는 흑백 필름이라 서툴지 않게 빛이 잘 맺혀줄까 시간이 갈수록 궁금증이 더해 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곱게 찍혀줄리 만무하기 때문에 일단 인물을 대상에서 제외 시킨다면 당분간 가로수길을 담기는 어렵지 않을까 짐작 했었는데 그래도 그동안 마실 반경을 조금 늘린 덕분인지 운좋게도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모습들을 담을 수 있었다. 입체적으로 뻗은 전선들과 카페 '오후 여섯시 이분' 앞에서 밥 먹는 고양이, 발렛 파킹 요원들의 빈 자리, 영화 엔딩 스크롤처럼 줄 지어 쓰여진 일방 통행 표시. 모두가 그야말로 날씨에 아랑곳 않고 가로수길을 수 놓은 터줏대감들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