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때의 크리스마스 이브란 아주 작은 일탈이 가능했던 날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성탄미사를 보러 밤 늦게 성당에 가시면 형과 나는 전자오락을 하거나
야시시한 장면들과 액션이 잘 버무려진 007같은 영화를 봤습니다.
게임기나 비디오가 있어도 몰래 몰래 즐겨야 했던 집안 분위기 탓에
부모님 돌아오시는 구둣발 소리가 날 때 후다닥 방에 들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부모님을 맞이하는 일에서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24일에 나가 25일에 들어와도 거리낌 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대학 입시보다 더 경쟁률이 높은 택시(누군가에게는 모텔)잡기가 싫어서
일찍 파티 장소를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집에 걸어가는 내내
그 때 형과 함께 집에서 보내던 크리스마스를 그리워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가족이 한데 모여 트리도 만들고
유치원 원장님이 산타 할아버지를 선물과 함께 집에 보내주신 때도 있었습니다.

반짝 반짝 점멸하는 전구들을 넋 놓고 바라보곤 했는데
이제는 맞은 편 아파트 거실에서조차도 트리 불빛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되면 다른 건 몰라도 크리스마스 트리는 꼭 매년 챙기기로 다짐 합니다.
당장 내년에는 파티 드레스 코드에 맞출 수 있게 빨간 니트라도 장만 하구요.
유쾌함, 화려함, 따뜻함, 분주함, 적적함 등등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성탄절은
어쨌든 의미있는 하루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본인은 아직 철이 없어 뿔이 자라지 않는 관계로 지인의 크고 탐스러운 녹용을 협찬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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