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은행들이 떨어져 인도에 무수한 흔적을 남기고 냄새는 거의 시궁창 수준이니 부인할래야 할 수 없는 한국의 가을을 살고 있다. 통증으로 하루 하루가 지옥같았던 지난 두 달이 언제 그랬냐는 듯, 이 날을 위해 소중히 가꿔온 뱃살에 주사 바늘을 꼽자마자 관절이 삐걱대는 마찰음도 줄고 머리를 감을 때 아크로바틱한 자세를 취하지 않아도 되니 이건 그야말로 제 영혼이 타는 줄도 모르고 찾게 되는  마약이나 다름 없다.

"인생을 굵고 짧게 살고 싶으면 휴미라를 맞으세요. 하지만 그 유혹을 참아야 해요."
저번 달에 한 번 만나봤던 의사는 염증을 주사제로 낮추는 것을 불경한 일인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 달 반이나 먹었던 당신의 약은 전혀 효과가 없고 그 와중에 염증은 계속 증가해 사는 게 사는 게 아닌데 방 바닥에 누워 여든을 산다고 한들 그걸 좋은 인생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열 번씩 깨고, 이를 악 물고 뒤척이며 자다가 아주 고요하고 편안하게 긴 잠을 자고 나니 통증없는 하루는 내 기꺼이 이틀로 쳐 주고 싶을 정도로 값진 것이었다. 이제는 두 달간 참아왔던 기침을 할 수도 있고 누가 혹시 갑자기 몸을 부딪히면 어떡하나 사방을 경계하며 다니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제부터 면역력이 평균 이하로 떨어지기 때문에 행여나 결핵, 감기, 독감 환자들은 미리 경고를 날려주면 참으로 고마울 것이다.

2. 정식 명칭은 holland alumni conference.
격조 없이 번역하자면 네덜란드 동창 회의에 초청받아 11월 초에 네덜란드에 가게 생겼다. 초청기관은 nuffic(외국인들의 고등교육을 관장하는 네덜란드 조직)이고 장소는 행정수도인 헤이그에서 열린다. 아직 자세한 요강을 읽어보지 않아서 확답을 보내진 않았지만 이미 마음은 작은 호수에 비치는 의사당 건물의 자태를 흐뭇하게 감상하고 있다. 네덜란드라니! 공짜라니! 하지만 내 지원서를 보고 마치 대단한 건축 전문가인양 착각했으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도 된다. 15명의 건축 종사자들과 이틀짜리 워크샵을 진행해야 하는데 미취학아동 수준으로 퇴화된 영어를 단기간에 끌어 올리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워크샵이 끝나면 관광도 하고, 책에 들어갈 사진도 찍고(날씨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겠지만), 그리운 사람들도 만나고, 학교 구경도 하고,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파타이도 먹고, 떨은 하면 안 되고... 이렇게 마냥 희망적인 일들만 일어날 리 없겠지만 행여 네덜란드 행이 취소가 된다고 하더라도 간만에 신선하고 뜨거운 피가 온 몸을 도는 기분을 느낀 것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 평소 의심 많고 성급한 기대를 하지 않는 성격이 앞으로 닥칠 불행한 사건들에 대해 충분한 방어 기제로 작용할테니 그냥 딱 이만큼의 작은 두근거림만을 안고 겨울을 맞이하면 될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2009년은 다이나믹하게 진행중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