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030722
2003. 7. 22. 00:15
030721
2003. 7. 21. 23:22
* 종이와 펜이면 충분한 삶을 살고 싶다.
030720
2003. 7. 20. 00:16
* 도저히 수습이 안 될 것 같은 순간이 다가올 땐 그저 눈을 감는 수 밖에.
030719
2003. 7. 19. 00:52
* 영어 공부가 유일한 할 일이었던 팔자 좋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가 그립지 않은 것은 내가 공부를, 특히 시험을 위한 공부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때 외운 단어들 중 지금도 기억나는 것들이 과연 몇 개나 될까. 심지어 요즘은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 조차 두려우니 고인이 되신 이익훈 선생님이 아시면 혼구녕이 날 일이지.
030718
2003. 7. 18. 23:06
* 오늘 본의 아니게 죽음에 관한 포스팅을 연달아 하게 되는데,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어머니가 아이를 던지고 본인도 투신했는지, 아니면 막상 자신은 겁이 나서 뛰어 내리질 못했는지, 분명한 건 어린 한 생명이 모정이라는 탈을 쓴 어미 손에 의해 사라졌다는 뉴스를 접했었다.
부모가 죽고 나면 어린 자식들은 불행하게 살 것이 뻔하니 길고 긴 생의 고통을 미리 없애준다는 발상은 너무나 교만하다. 내가 낳은 자식이니 내 손으로 운명을 결정 짓겠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언제 아이가 들어 섰는지도 빨라야 몇 주 뒤에나 병원에서 알 수 있는 것이고 착상된 날짜나 출산 날짜도 어디까지나 예상일 일 뿐. 수정란이 만들어 지는 것도,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어디까지나 근사치이며 인간이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부모란 그 가능성을 높이는 데에만 기여했을 뿐 생명이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얻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죽음을 결정할 자격이 있다는 것인가. 영화 가타카나 소설 은하영웅전설처럼 과학이 발달해 미리 태아의 유전적 형질을 분석할 수 있다면 완벽하지 않은 아이는 그냥 죽어야 하는 건가. 어머니께서 나를 가지셨을 때(물론 지금도 그러하시지만) 몸이 많이 약하셨다. 어머니만 쏙 빼 닮은 나는 그래서 인지 이렇게 여러가지 질병을 안고 골골대고 있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이유로 부모를 원망해 본 적이 없다.
가난하다고 해서,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원하던 아이가 아니라서 등등... 비록 삶은 쉽지 않겠지만 계속 이어갈지 아닐지 여부는 본인의 손에 달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030717
2003. 7. 17. 23:23
* 스티브 소더버그 감독에서 제작비를 백지 수표로 지급하고 한국에서 소재를 찾아 트래픽과 같은 영화를 만들어 보라고 하면 과연 어떤 영화가 나올까. 치명적이지만 너무 만연해 있어서 당연시 되는 문제들. 정부가 액션은 취하지만 자기 발등 찍을까봐 진심으로 파헤치고 싶어하지 않는 대상들. 바이러스처럼 자꾸만 지능화되고 진화하는 시스템들.
내가 미스터 소더버그라면 '건설 사업의 비리(특히 재건축, 재개발에 관하여)'를 한 번 건드려 보고 싶다. 아줌마부대, 재건축 조합장, 구청 건축과 직원, 서울시 직원, 건교부 직원, 건설사 직원, 건설사 대표, 용역업체, 재개발 반대 주민... 이 얼마나 화려한 출연진인가. 얼마전 서부이촌동 쪽인가 재개발을 무리하게 진행하려고 용역업체를 불렀는데 반대파에서도 돈을 모아 더 많은 인원의 용역업체를 불러 맞불 작전을 펼쳤다고 들었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시나리오란 말인가. 룸살롱에서의 성접대도 나올테고 조폭들이 설치는 액션이 마무리를 장식할테니 돈, 섹스, 폭력이 총 집합일세.
단, 이 영화는 찍다가 맞아 죽는 불행을 피한다 할지라도 영화 배급의 거물인 OO엔터테인먼트의 압력으로 개봉은 꿈도 못 꿀 것 같다.
030716
2003. 7. 16. 19:43
(2003년 7월 16일의 기록.
어제는 바보같이 7월 말의 그림을 먼저 올렸는데 오늘부터는 시간순으로 하루에 한 꼭지씩 포스팅!)
저기서 주목할 점은 나름 신경써서 표현하려고 했던 나이키 운동화였다. 코엑스몰에서 산 운동화는 나이키 매장에서 판매한 것이 아니라 멀티샵 같은 곳에서 주인이 따로 수입한 것이라고 했다. 일단 스웨이드 처리된 재질과 옅은 파란 색이 주가 된 디자인이 너무 맘에 들었고 신어 보니 착용감도 무지 좋았다. 가격은 좀 높았으나 그래도 맘에 쏙 드는 물건을 만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매일 나의 발을 포근하게 감싸주던 신발은 각양 각색의 유럽 길을 즈려 밟다가 2006년쯤 로테르담에서 사망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