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목에서 큰 감점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기발한 제목이 생각나는 것은 아니지만 '조폭 마누라', '지구를 지켜라'와 같이 제목에서 상당히 저렴한 냄새가 난다. 차라리 '긴급조치 19호'가 제목에 있어서는 더 나은 것 같다. 독특한 소재에 비해 너무 뻔한 한국식 억지 감동을 유발하려고 해서 아쉽지만 아역 배우의 어른 스러움을 감상하는 것으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극중 차태현의 집 인테리어와 창 밖으로 펼쳐지는 전망이 무척 탐이 난다.

극중 박보영과 사랑했었던 남자가 입고 있는 티에 주목하라. 나메크 언어 비슷하게 보이는 패턴이 뭔가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장림종 '문자로서의 공간' 1999

디지털 공간 연구를 통해 생성된 다양한 평면들이 티셔츠에 그려진 패턴과 무척이나 흡사하다. 티셔츠의 패턴은 어떤 구성 논리를 통해 만들어진 형상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전혀 모르겠으나 구축적인 이미지를 프린트 해서 티셔츠를 팔고 싶은 나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영화는 ★★★ 



용의자 X의 헌신'을 쓴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 
성공한 기업인의 유산 상속을 이유로 가족들 간에 벌어지는 추악한 음모를 비교적 쉽게 풀어냈다. 책을 천천히 읽는 내가 하루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책장이 잘 넘어가며 그만큼의 몰입도가 있다. 다만 결정적인 장면에서 불충분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결말에 반전 효과를 노린 작가의 의도는 다소 일방적이란 느낌이 든다.
★★★
일본인들의 네이밍 센스는 참으로 훌륭하다. 이 영화와 동명의 원작 소설 역시 과연 이게 무슨 내용일까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제목이다. 일본 제일의 물리학자와 수학자가 등장하지만 대단한 트릭과 추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작가의 역랑 탓인가 아니면 천재를 평범한 한 인간으로 묘사하기 위한 의도인가. 원작자의 다른 소설을 읽어보면 너무 내용을 심하게 꼬아서 읽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일부러 쉽게 쉽게 이야기를 풀고 대신 주인공의 내면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소년탐정 김전일의 한 권 분량 밖에 안 될 영화이지만 깔끔한 전개와 결말은 히치콕의 '이창'과 같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 
 
 
일주일 넘게 나를 괴롭혔던 원고 작성을 방금 마쳤더니 설계 마감한 것 같은 후련함이 따른다. 아 정말 이렇게 재미없는 글을 써보는 건 처음인 것 같고 네덜란드 건축 정책을 평생의 연구 주제로 삼으려 했던 지난 날을 회상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감히 이렇게 재미없는 내용을 공부하려 했다니 ㄷㄷㄷ.

후련한 마음으로 챔피언스리그 맨유와 아스날전을 실시간으로 감상하려 했더만 박지성은 벤치 멤버로...
챔스의 사나이 박지성에게 이게 왠 변고냐...올 시즌 출발은 아주 좋았던 것 같은데 점점 입지가 좁아지는 것 같아 슬프다.

게다가 날씨는 익을대로 익은 봄이라 사람들도 보고 출사도 가고 그럴려고 했더만 돼지 독감이 발목을 붙잡는다.
그냥 닥치고 집에서 글이나 쓰라는 신의 계시인가. 어쨌든 이 무서운 질병이 철 지난 유행처럼 얼굴 붉히며 도망가길 빈다.
네덜란드에는 국가건축가라는 제도가 있다. 탁월한 역량을 지닌 건축가 한명을 선정해 최대 5년동안 국가에서 시행하는 공공 사업에 대한 자문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왕 직속 건축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도시 계획, 건축, 조경, 실내 건축 분야에서 전문가적 견해를 제시하고 정치가들의 파워 게임을 견제하는 위치에 있음을 감안한다면 건축대통령 혹은 국가대표건축가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이다. 이 국가건축가 제도에 관해 최근에 작성한 짧은 소개글을 첨부해본다.

Rijksgebouwdienst


공공시설관리국에 해당하는 Rijksgebouwdienst는 헤이그에 위치한 VROM(주택건설환경부)에 속해 있으며 정부의 각 부처들이 맡은 바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쾌적한 업무 환경을 제공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을 갖는다. 정부 청사, 국책 연구소, 고대 유적, 고성, 감옥, 박물관 등 총 11만 명을 위한 2,000여 건물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부동산 회사 중 하나인 셈이다. 이 공공시설관리국의 수장이 Rijksbouwmeester(국가건축가)로서 건축, 건설, 건축 유산, 인프라, 건축 정책, 시각 예술 전반에 걸쳐 중앙 정부의 자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2006년을 기해 200주년을 맞이하며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국가건축가 제도는 왕권의 성립과 동시에 활약한 왕립건축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직접 디자인을 수행하던 관습에서 벗어나 국가핵심공공사업에 대해 적절한 건축가를 지명하고 독립적인 자문 위원으로서 활동하는 현대적 기능은 1950년대 말부터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최대 5년의 임기를 갖는 국가건축가는 jo coenen과 mels crouwel을 거쳐 2008년에 liesbeth van der pol로 임명되었다


이번에 건축가협회의 의뢰를 받아 네덜란드 건축 정책과 관련 기관에 관한 글을 정리하다보니 네덜란드에는 건축을 정책적으로 보조하기 위한 기구가 참으로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건축협회, 건축가협회, 건축사협회는 물론이고 연구소, 정보센터, 홍보센터, 기타 젊은 건축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공모전, 장학제도, 기금 등등 그야말로 건축가는 디자인만 열심히 하면 되는 아늑한 환경을 제도적으로 만들어준다는 느낌이다. 네덜란드의 건축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이유가 뭐든지 하면 된다고 믿는 도전 정신과 건축을 국가가 내세울만한 상품으로 생각하는 점 외에도 이러한 생각을 실천 가능하게 서포트하는 정책에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우리도 따라서 똑같이 국가건축가를 뽑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올씨다다. 네덜란드 국가건축가가 왕정 건축가에서 시작했다고 하지만 우리 나라 국민 정서와 정치인들의 속성을 고려할 때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드는 제도에 대해서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나 할까. 분명 디자인 역량보다는 정치 사상으로 한차례 선별 작업이 있을테고 그 밖에 학연, 지연, 혈연 등등을 따지고 들어가 실적은 어느새 제일 나중에 고려되는 조건으로 밀릴 것이다. 아무런 제도적 장치와 선험적 근거 없이 다짜고짜 카피하는 제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 보다는 국민 저변에서 공론을 모아 우리가 사는 터전에 대한 참여 정신을 불러 일으킨 후에 그 탄탄한 기반을 토대로 한 단계씩 성장하게 하는 bottom up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그런고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네덜란드와 같이 chief government architect(국가건축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가장 최소 단위의 주거 환경을 관장할 수 있는 (cheap) village architect(동네건축가) 제도를 제안하는 바이다. 건축관련 고등교육을 이수하고 한 동네에서 7년 이상 거주한 사람으로 애동심이 충만하고 민심을 얻을 수 있는 건축가가 있다면 아주 제격일 것이다. 정치, 경제적 이슈에서 보다 자유롭고 사회 참여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업무에 관한 보수는 생필품(쌀, 물, 우유, 계란, 밀가루...)으로 제공되며 주민센터에 사무실을 마련해 주면 괜찮은 시작이 아닐까 싶다. 동네건축가가 모여 구역건축가가 되고 또 이들이 모여 도시건축가, 도건축가, 국가건축가로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과정을 꿈꿔본다.

그렇게만 된다면 서초구 반포동은 내가 찜!
글을 쓰기로 결심을 한 과정은 언제나 그렇듯 즉흥적이고 비논리적이었다. 글에 대한 심한 갈증 혹은 글을 써야만 하는 숭고한주제 의식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이 거친 사회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생물학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중심(main stream)에서 이탈시킨 것이 먼저였고 그 다음에 거세게 흐르는 물살을 관조하며 어떤 식으로 발 담글지에 대해 고민한 끝에 낸 결론이 홀로 글쓰기였던 것이다. 

어짜피 배운 도둑질이 그거라서 시작은 건축 전문 서적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너무 현학적이고 서양사상 중심적인 건축은 나의 본성까지 감동시키지는 못했다. 건축은 종합적인 예술이고 인류 문명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이지만 전문인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이것처럼 또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 건축에 대한 글을 쓴다고 했을 때 그 내용이 마음에서 즉각적으로 우러나오기 보다는 항상 책을 뒤적이고 도면을 분석해야 하는 작업이 선행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건축을 완전히 배제시키게 되면 그동안의 나의 삶이 무의미해 질 우려가 있으니 어쨌거나 건축과는 평생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부부의 연까지는 아니더라도 만나면 좋은 친구 쯤은 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건축을 전문인의 수준에서 일상의 영역으로 떨어뜨리면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남다르고 충분히 재미있는 주제가 나올거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롤 모델로 알랭 드 보통을 꼽을 수 있다. 나도 그와 같이 건축인과 비건축인 사이를 중재하는 존재가 되기를 희망한다. 

예전에 서울건축가학교(SAKIA)란 곳에서 두 달 동안 아주 형식적이고 무책임한 교육을 받은 적 있는데 그렇게 단정하게 된 데에는 선생이었던 K교수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실무 활동이 활발한 다른 건축가들과는 달리 프랑스에서 유학했다는 이력 외에는 딱히 정체성이 모호했던 K교수는 수업 시간에 본인 바람피는 얘기로 한참을 보낼 만큼 대책이 없었다. 여자 때문에 바빴는지 나중에는 본인이 해야할 일을 나에게 전가시켜 겨우 구색만 갖춘, 예의 그 놈의 예술인지 뭔지에 대한 시덥잖은 얘기로 포장된 작품으로 전시회에 참가할 정도였다. (덕분에 난 그 양반 일 도와주다가 내 마감도 못 해서 작품집에 작품이 실리지 않은 유일한 학생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그 교수가 한 말 중에 여지껏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어떠한 주제를 선정하든 같은 주제에 대해 10년을 고민하게 되면 그 분야의 박사가 될 것이다'라는 한마디 였다. 뭐 사람은 그 모냥이었지만 말은 바른 말인지라 꾸준한 사고로 인한 기적적인 효과를 믿어야 한다.

뒤늦게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최근에 와서야 평생의 주제를 찾게 되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주제가 추가될 여지가 있지만 현재의 나에게는 인간의 양면성만큼 흥미로운 보따리도 없는 것 같다. 그 양면성을 최초로 인식하게 된 것은 우습게도 역시나 건축에서 였다. 때는 2002년, 신세계 백화점 본점 리노베이션 때문에 명동 신세계 백화점의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백화점이란 곳이 그렇게 흥미로운 곳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아니. 아마도 백화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실상을 파악할 길이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크고 작게 그러한 특성을 공유하고 있겠지만 소비자들을 위해 최대한으로 오픈된 공간 이면에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그들만의 복잡한 세계가 참으로 놀랍게 다가왔다. 가장 효율적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마련된 수직, 사선의 동선을 위해 희생된 부분만큼 비효율적이고 어색하게 때려 맞춘 공간들이 탄생되었다. 물론 일제시대에 일본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었던 만큼 그 특징들은 더욱 두드러졌다. 평면이 단순하게 적층된 모더니즘 형식을 보고 건축을 공부하던 학생 '이상'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을 썼지만 나는 같은 장소에서 '헤테로토피아'와 '미로'를 읽었다. 과거 르 꼬르뷔지에 식으로 잘 갖추어진 옥상 정원에서 한복을 입은 조선인들이 멋들어지게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면 현재의 공간은 코스튬을 맞춰 입은 여직원들이 거친 입담과 담배 한 개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곳으로 변했다. 이러한 비일상적 경험은 훗날 공연장 대기실이나 학교 지하 금고에서 계속되었다.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장소로 존재한다는 것이 건축에서 내가 느낀 양면성의 본질이었다. (이를 소재로 잘 풀어낸 영화가 패닉 룸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은 인간으로 이어졌다. 인간의 삶의 무대인 주변 환경부터 둘러보자. 많은 것들이 쌍을 이루며 존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해와 달, 밤과 낮, 밀물과 썰물,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남자와 여자, 음과 양, 삶과 죽음, 동양과 서양, 신과 인간, 고체와 액체, 생물과 무생물, 기쁨과 슬픔, 선과 악, 만남과 이별, on and off...등등등.(눈, 콧구멍, 귓구멍, 손, 발 등 짝을 이루는 것들은 양면성과 무관하다) 그러다보니 인간 내면에 하나의 성질만 갖고 있다면 그것처럼 이상한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가슴 속 진실된 곳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자아가 비비적대고 있으며 이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공감대가 시작될 것이다. 물론 기적적으로 내면과 외면이 완벽히 일치하는 사람이 있겠으나 이들은 종교인들의 영역으로 솎아내고 이와 비슷하게 둘 이상의 자아를 갖는 다중 인격에 대해서는 정신분석학자들의 소관으로 넘기고자 한다. 어찌됐건 앞으로 내가 꾸며내는 이야기 속에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밑바탕은 양면성이 될 것이고 건축의 양면성, 인간의 양면성 때로는 둘 다 한꺼번에 열거하는 기회가 곧 오리라 믿는다. 

인간은 무척이나 이기적이다. 본인에게 필요하게 되서야만이 관심을 기울이고 해답을 갈구하게 된다. 하지만 평소에 흥청망청 하던 녀석이 하루아침에 구걸을 하는 처지가 되어도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말아먹을 돈은 쥐어박아주는게 인간의 심정 아니겠는가. 그러한 촉촉한 마음을 끌어다가 이 곳에 남겨주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글이 나올 것이다. 다양한 소재들을 공유합시다.
 


누군가의 관심을 살만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 없다. 비록 그것이 인생의 해답을 알려 줄 만큼 대단한 열쇠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그저 쉽게 흘려 보내는 형식적인 질문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같은 질문을 받게 되는 상황이 썩 즐겁지만은 않은 요즘이다. 물론 내가 베일에 싸여있다거나 비밀스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고 그저 어딘가에 소속돼서 일 하는 신분이 아니다보니 그냥 나의 상황 자체가 자연스럽게 그런 질문들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일의 퀄리티보다는 프로세스의 효율성에 손을 들어주는 나란 사람은 똑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내뱉거나 듣게되는 상황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꾸물럭 거리든 식빵을 굽든 그저 알아서 살게 내비 두길 바라는 고양이과 이다.(하지만 배고플땐 동거인의 다리에 뺨을 부빌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러 이러한 일을 하고(또는 하고 싶고) 지내요라며 나름 명함을 하나 만들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상대방의 사소했던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는 촉매제가 된 것 같다. 그럴때는 그냥 회사의 이름 속으로 속 편하게 스스로를 투영시켜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OO물산, XX전자, ++은행 등을 다니는 친구들에게는 어느 팀에서 일하느냐라고 딱 한 번 묻게 되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 밖의 업무에 관련된 사항은 홍보팀에서 열심히 대변해 줄테니 말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 신상에 관련된 사항을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닌지라 사기를 맞았으면 맞았다고 하고, 회사를 관뒀으면 관뒀다고 하고, 몸이 아프다면 아프다고 솔직히 얘기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숨김으로써 혹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최대한 줄이고 싶기 때문이다. 더 길게 설명해야 할 나중을 위해 미리 미리 보고하는 마음이랄까.

어쨌거나 딱히 얘기해 줄 일이 있지도 않은데 상대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근황을 물어보면 난감해진다. 싸이월드나 블로그 처럼 새로운 글이 떴을 때 바로 알려주는 서비스가 현실 속 만남에서는 불가능한 이상 결국 내쪽에서 자신의 홍보를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결국 블로그를 열심히 가꾸어서 형식적인 질문을 미연에 방지하느냐 아니면 앵무새같은 답변을 계속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내가 판단하고 내가 책임질 문제인 것이다. 애초에 '요즘 뭐 해?', '책은 다 썼어?', '책 언제 나와?' 같은 질문들 보다는 '별 일 없어?', '밥 먹었어?', '그거 봤어?'와 같은 보다 덜 구체적인 질문들을 선호한다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어느새 자기 반성을 하고 있는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책 언제 나오냐구요?
네덜란드 건축 가이드북은 아마도 여름 이후에.
아이들을 위한 건축책은 내년 봄에.
그 밖에 다큐멘터리 하나 찍고 싶구요, 단편 소설도 쓰고 싶고, 소품 디자인하면서 사진도 찍고 싶어요.
공부하면서 책 쓰는 분야가 아니었으면 책이 벌써 나왔겠죠. 
이제 건축책은 그마아아안~~~ 
어떤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나는 잠과 관련해서는 남다른 운명을 갖고 태어났음이 분명할 정도로 잠은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어렸을 적에는 누으면 곧바로 깊은 잠에 빠지는 편이었다. 큰 걱정이 없었던 당시의 집안 환경 덕분인지 스스로의 안전을 부모에게 완전히 내 맡긴 정신적 벌거숭이 상태를 자초할 수 있었다. 꼬옥 끌어 안아야만 심장이 두근 반 세근 반 뛰던 곰 인형처럼 반 가사상태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잠 투정 부리지 않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편이었다. 간혹 전화벨이나 초인종 소리로는 깨질 않아서 어머니께서 대낮에 열쇠집 아저씨를 부르는 일이 있었지만 그런 사건은 그저 너 같이 자는 얘는 처음봤다라는 한숨으로 끝이 날 뿐 결코 혼이 나거나 매를 맞아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하였다. 어쨌든 신생아도 아닌 것이 뭐가 그렇게나 피곤했는지 틈만 나면 꾸벅 꾸벅 졸다가 눈을 감기 일쑤였고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수업 태도에 있어서는 항상 주의를 받는 편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점점 잠이 준다고 누가 그랬던가. 대학 입시는 4당 5락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인류의 오랜 경험이 만들어낸 잠에 관련된 사회적 인식도 나에게 있어서는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는가보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취침 시간은 십대 때와 변함이 없고 잠으로 인해 크게 후회할 짓을 만들지도 않았다. 잠 자는 시간을 줄여서 무언가를 이루기 보다는 깨어 있는 시간을 잘 활용하는 편이 더 합리적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잠에 관해서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면 다른 건 몰라도 잠과 설계 마감을 동시에 만족시킬 순 없다는 사실이다. 설계 마감이라는 것은 언제나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 싸움이고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기록이라서 어쩔 수 없이 잠을 억지로 줄일 수 밖에 없다. 대학 중간고사같은 경우는 워낙 평소에 공부를 게을리 해서, 원래 당일 치기로 보는 것이 효율적인 시험이라서, 혹은 그냥 동기들과 밤 새며 노는 재미에 잠 안 자고 지낸다 하지만 설계 마감같은 경우에는 일단 마감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닥치고 밤 새는 수 밖에 없다. 나중에 이러한 습관이 계속되다 보면 설사 마감 전에 필요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해도 뭔가 불안하고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릇, 설계 마감이란 약속의 시간이 올 때까지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시합인 것이다. 

최근 하루 7~8시간 이상 자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평균 수명이 짧다는 해외 의학진의 연구 결과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 역시도 내가 죽기 전에는 자명한 사실이 되지 않는 까닭에 여전히 가설에 불과하다고 생각 중이다. 불의의 사고가 아닌데 남들보다 현격히 일찍 죽는다면 술, 담배를 멀리하는 나로서는 필히 취침 시간에서 그 원인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변명이라고 생각 되겠지만 모든 삶에는 운명적인 요소가 일정 부분 차지한다고 믿고 있으며 사랑이 그러하듯 잠도 불가피한 비 선택적 영역이고 타고난 궁합인 것이다. 그리고 차라리 그렇게 믿는 것이 속 편하다. 하루 여섯 시간만 자도 상쾌한 인간들이 있는 반면 여덟 시간을 자도 온 몸이 철근같이 무거운 나같은 사람이 있는 법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노력을 통해 한 시간 정도는 땡겨볼 수 있겠으나 그 이상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리가 아닐까 싶다. 앞서 얘기했듯, 차라리 깨어 있는 시간을 잘 활용하는 편이 더 현명한 방법이며 사실상 취침 시간이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숙면을 취하는가, 즉 잠의 질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덟 시간을 자는 사람은 잠 들기 전에 30분 정도 뒤척이다가 잠이 들테고 자면서도 중간 중간 잘 깨기 마련이다. 혹은 자고 난 후에 완전히 망각되어야 할 꿈의 내용들이 너무 생생하게 입력이 되어 전혀 잔 것 같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이 무턱대고 잠을 줄이려다가는 오히려 불면증에 걸리거나 잠을 설쳐 만성 피로에 시달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육체적인 활동과도 관계가 있지만 쉽게 컨트롤 할 수 없는 정신적인 측면과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명처럼 속 편히 받아 들이고 차라리 일찍 자라는 것이다.

이력서의 취미 항목에 '낮잠'을 적고 싶을 정도로 잠을 사랑하는 나로서도 나이가 들면서 예민해지고 그로 인해 수면 장애를 겪게 되는 상황을 어쩌지는 못하고 있다. 어려서는 아버지같이 무던하고 천진한 성격이었다면 점점 커가면서 얼굴도 성격도 어머니를 쏙 빼닮게 되었다. 평소에 걱정이 많으시고 예민한 성격 탓에 어머니는 작은 소리에도 쉽게 잠을 깨시고 좀처럼 다시 잠들지를 못 하신다. 심지어 수면 중에도 어찌나 심한 악몽을 꾸시는지 괴로운 잠꼬대를 연달아 읊어대셔서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다. 이렇다 할 운동도 안 하는 대신 눈만 감으면 쿨쿨 세상 모르고 주무시는 아버지가 매일같이 운동을 하시는 어머니보다 현저히 건강하신 것도 다 잠을 달게 주무시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성격이 날카로운 사람들은 여간해서 숙면을 취하지 못해 외모마저 날이 서 있으며 장소를 불문하고 머리만 기대면 잠이 들고 옆집 공사하듯 코를 골아대는 사람들은 대개 살집이 좀 있고 둥글 둥글한 성격을 갖고 있다. 누군가는 나에게 edge가 살아있다고 묘사 하였는데 그런만큼 여전히 수면 장애는 진행형인 셈이고 어머니처럼 심한 잠꼬대를 하게 될까봐 조금 우려가 된다. 그러다보니 몇 시에 잠이 들었건 혹은 산술적으로 몇 시간을 잤건 눈을 뜨게 되는 순간이 결코 상쾌할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아침은 언제나 하루 중 가장 날이 서 있는 순간이며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심정이 역력히 드러난다. 등교든 출근이든 조용히 혼자 하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고 제일 하기 싫은 말 중에 하나가 굿 모닝 혹은 좋은 아침이다. 외국에서야 워낙 아침 인사가 굿 모닝밖에 없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에서는 내가 먼저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를 건넨 법이 없다. not good 혹은 so so 정도가 아니라 아주 fxxk 하기 때문에 자기 감정에 충실한 것 뿐이다. 

잠을 불규칙하게 잔다거나, 한꺼번에 몰아서 잔다거나, 혹은 몽유병이 있어 자면서 돌아다니는 경우가 아니라면 여덟 시간이든 열 시간이든 너무 시간 자체에 많은 의미를 두어선 안 될 것이다. 그냥 아 내가 잠이 좀 많은 것 같은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길러볼까 하는 정도는 괜찮겠지만 내가 자는 동안 남들은 열심히 달리고 있을텐데 이렇게 세월을 낭비할 순 없어라며 죄책감에 사로잡혀 불안해 하고 있다면 건강하지 못한 자세이다. 잠을 잘 자는 것도 깨어 있는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한 일종의 준비 단계이며 하드 디스크 조각 모음을 하듯이 하루 중 있었던 많은 일들을 뇌에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니 아주 불필요하게 보내는 시간이 아니다. 게다가 가끔 꾸는 기상 천외한 꿈들은 여전히 나의 사고가 깨어 있음을 증명하며 때로는 현실보다 몇 배나 즐겁기도 해서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마도 인류의 가장 창의적이고 로맨틱한 이야기들은 모두 누군가의 꿈 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앞으로 꼭 쓰고 싶은 영화 시나리오 중 하나도 너무 리얼하고 드라마틱한 꿈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며 잠이 깼을 때 이것은 하늘이 준 큰 선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감격이었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일년 뒤 쯤 알 수 있을 것이고 다음 글에서는 오늘 낮에 겪은 우연한 꿈에 대해 쓸 것이니 잠과 꿈에 대한 나의 사랑은 여전히 유효하다. 잠을 자야 꿈을 꾼다는 속담처럼 꿈이 없는 자들은 일단 좀 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녹티룩스(noctilux)는 라이카 렌즈 중 두번째로 밝은 렌즈의 이름으로 조리개 수치가 무려 1.0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장 밝은 렌즈로 통했으나 최근 70년대부터 꾸준히 지켜왔던 설계가 변경되고 조리개 값이 0.95로 더 떨어진 제품이 등장하면서 오래도록 지켜온 타이틀을 신형 녹티룩스에 물려주었다. 하지만 신형 녹티룩스는 색수차를 대폭 줄인 성능과 그에 걸맞는 8000유로라는 거금으로 출시된다고 하니, 과연 색수차로 인해 전해지는 묘한 느낌을 사랑하는 기존의 유저나 녹티룩스를 써보고 싶었으나 가격이 부담스러웠던 잠재적 수요자들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라틴어에서 '밤'을 뜻하는 'nockte'와 '빛'을 의미하는 'lux'를 합성시킨 녹티룩스는 '밤의 빛'이라는 이름만큼 미세한 빛이 새어나오는 어두운 장소와 좋은 궁합을 이룬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같은 조명, 자연광으로만 채워진 실내, 무수한 가지들이 현란하게 빛과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밑, 햇빛이 산산히 부서지는 파도를 배경으로 할 때 렌즈는 가장 아름다운 결과물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나치게 밝은 렌즈인 만큼 해가 쨍쨍한 대낮에는 nd필터를 껴서 셔터 스피드를 줄여야 하고 셔터막이 타는 참사를 막기 위해 역광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또한 RF카메라의 50mm 렌즈 답지 않게 크기가 상당하며 무게가 900g에 이르기 때문에 카메라와 미적으로 아름다운 조합이 되지도 못 할 뿐더러 렌즈를 바디에 마운트 한 채로 덜렁 덜렁 매고 다닐 시에는 마운트 부위가 휘어지니 어느모로 보나 주의해야 할 점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 불편하다는 라이카에서 가장 불편한 렌즈라 할 수 있으니 어지간해서는 녹티룩스만 쓰는 유저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나마 모든 어려움을 인내하고 단지 좋은 혹은 특이한 결과만을 위해 렌즈를 영입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물량 부족과 그로 인한 최근의 가격 상승은 끝까지 심신을 불편하게 만든다.

어쨌든 녹티룩스는 내가 라이카에 대한 꿈을 갖게 된 5년전 부터 그 존재감을 잘 알고 있었다. 별별 놈의 기념 바디와 렌즈들을 만드는 라이카의 상술로 인해(그러면서도 회사 재정은 계속 악화되니 카메라 시장은 한국의 아파트와 같이 이제는 디지탈이 아니면 답이 없을 정도이다.)  출시된 모든 렌즈들을 파악하기란 무척이나 머리 아픈 일이지만 실제로 구매를 고려해 보지는 않았더라도 6군8매라던가 녹티룩스 정도의 이름은 전설과 같이 회자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그 놈의 가격이었다. 100만원 정도의 렌즈도 겨우 겨우 샀던 시절, 300만원에 달하는 렌즈를 마음에 둔다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짓이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고 돈을 모으다보면 언젠가 한 번쯤은 저 렌즈를 만질 날이 오리라는 희망만을 지닌 채 렌즈의 시세나 결과물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녹티룩스의 기존 모델이 단종되고 환율이 상승하면서 최근 2년 사이 가격이 두 배 이상 상승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하였다. 엄연히 중고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하락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라이카 제품들은 단순한 물품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주식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자동차나 컴퓨터와 달리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그 사용 빈도에 비해 가격이 하락하는 정도가 크지 않고 심지어 오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실컷 쓰고도 관리만 잘 한다면 배가 넘는 가격으로 팔리는 녹티룩스는 그야말로 우량주와 다를 바 없다. 게다가 가격이 높건 낮건 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장터에 나오는 족족 팔리기 마련이다. 

다시 녹티룩스에 불타오르게 된 것은 사진을 취미와 업의 중간 단계로 설정한 아주 최근의 일이다.  좀 더 생산적인 활동과 매너리즘에 빠진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해 장비에 변화를 주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애초에 감히 녹티룩스를 넘보았던 것은 아니다. 일단은 35mm보다 50mm 렌즈로 찍는 것이 내 성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고 실내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찍을 수 있는 밝은 렌즈를 찾는 것이 최초의 단서였다. 건축 사진에 적합할 뿐 아니라 때로는 세상을 미니어쳐로 축소해 버리는 TS렌즈를 고려한 적도 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카메라 바디까지 교체해야 하는 불편함이 뒤따른다. 건축 사진에 대한 요구가 아직까지는 절실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과감한 결단을 내릴 필요는 없었다. 

외국에서 한창 즐거웠던 사진 생활이 한국에 오면서 갑자기 식어버린 것도 렌즈 선택에 큰 단서를 제공하였다. '사진은 외국'이라는 우스갯 소리를 할만큼 이국의 풍경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훌륭한 피사체를 제공하였다. 그러한 부유한 환경에 익숙해졌던 까닭인지 서울에 오자 여간해서는 셔터를 누를만한 상황을 만나지 못했다. 하늘은 매연으로 뿌옅고 개성 없는 아파트 숲이 눈치 없이 프레임 안으로 끼어 들었다. 거리는 사람과 차량으로 너무 복잡했고 건물에는 천박한 간판과 어지러운 전선들이 가득하였다. 인터넷의 과도한 보급으로 신상 정보가 쉽게 노출되기 때문인지 카메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폐쇄적 이었다. 무엇을 더해야 할지, 무엇을 빼야 할지 고민하기도 귀찮았고 그렇다고 해서 맘에 드는 결과를 만들지도 못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스스로 결론 내리기를 피사체를 과장해서 하나의 메세지만을 전달하거나 아예 흑백 사진을 통해 현기증 나는 일상을 단색으로 중화시키자는 것이었다. 한 군데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접사렌즈나 망원렌즈가 필요할테고 피사체를 제외하고는 모든 배경이 아웃포커싱으로 뭉개져 이 역시 보기 싫은 풍경들을 자연스럽게 생략해 버리기에 아주 제격이다. 50mm 화각으로 스냅에도 적합하고 조리개 수치가 현저히 낮아 아웃포커싱 능력이 뛰어나며 흑백에도 발군인 제품을 찾게 된 데에는 이렇게 길고 긴 사연이 깔려 있었다. 

flickr의 강력한 검색과 태그 기능으로 각종 렌즈의 결과물을 비교하는 일이 무척 수월하였다. 게다가 라이카 m마운트에 f1.4 이하의 제품을 찾는 것은 애초부터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주 쉽게 말하자면 결론은 역시 f1.0 녹티룩스 였다. 물론 최초의 녹티룩스(소위 1세대라 불리우는)는 조리개 수치가 1.2이며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였으나 결과의 호불호를 떠나 일단 희소성 만으로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였다. 현행 녹티룩스는 무시무시한 가격에서 중고가가 정체됐고 70년대에 생산된 2세대 마저도 나의 물건 이것 저것을 팔고 앞으로 벌 돈까지 미리 예산에 책정해야 하는 정도였다. 그리하여 녹티룩스의 대안이 될만한 렌즈들을 뒤지고 다녔는데 그 결과가 무척 흥미롭다. 

일단 각 렌즈사들에서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 한때 렌즈의 밝기에 집착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 경쟁이 언제 누구의 승리로 끝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캐논과 슈나이더에서 f0.95의 렌즈를 만든 바 있다. 생긴 것도 어정쩡하고 초점 맞추기도 어려워 보였으나 대체로 그 결과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슈나이더사의 제논 렌즈는 녹티룩스보다 더 맘에 드는 결과를 보여 나의 혼을 쏙 빼 놓았었다. 하지만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한 나를 보란듯이 렌즈를 구하기란 살아 생전에 불가능할 듯 보였고 설사 렌즈를 손에 넣더라도 일본 장인의 힘을 빌어 m마운트로 개조해야 하는 또 하나의 산이 높이 솟아 있었다. 때문에 위의 렌즈를 쓰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일본인이고 그들 자신이 그 렌즈를 손에 넣은 것을 하나의 기적으로 평가할 정도였다. 게다가 일본에 산다는 렌즈 개조의 달인은 해외에서의 주문을 전혀 받지 않았으며 렌즈가 완전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그 사람을 찾아가 재조정을 받아야 한다니 이건 부대비용이 렌즈 구매가의 몇 배를 상회할 지경이다. 

조리개 수치 1.2 로 다른 비교 대상들에 비해 다소 밀리더라도 합리적인 가격과 인상적인 결과물을 보장하는 헥사논 50mm 역시 훌륭한 대안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은색 제품만 존재하며 나름 한정 생산인지라 이 역시 물건을 구하려면 많은 날들을 강태공처럼 흘려 보내야 한다. 무릇 카메라와 렌즈라는 것은 귀한 인연과 같아서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지를 예상하기 힘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운명을 거스르는 유일한 길은 결국 현찰 뿐이고 따라서 '사진은 외국'이기도 하지만 '사진은 돈'이라는 또 하나의 금언이 나오게 된다. 

한 곳에 꽂히면 정신을 못차리는 성격 탓에 새로운 렌즈를 향한 간절한 마음은 밤에 잠을 설치게 할 정도이고, flickr에서 사진만 보다 하루가 꼴깍 넘어가 버리는 날이 반복되다 보니 심신이 피로해지고 해야할 업무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어짜피 나의 마음은 녹티룩스로 굳어진 듯 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중고 장터 시세가 샵의 그것을 넘어섰다. 서울의 카메라 샵을 다 뒤져보아도 실사용기로 적합한 녹티룩스는 단 한 대 뿐이었고(두개가 더 있는데 이들은 모두 소장용과 다름 없었다.) 이마저도 금새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갈 듯 보였다. 앞서 말했듯 어짜피 우량주인 까닭에 사서 쓰다가 정 이건 나와 안 맞는다거나 턱없이 과분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 되팔아도 전혀 손해볼 것 같지 않았다.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인지라 막상 물건을 구매하는 과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고 말았다. 렌즈를 손에 넣고도 스스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얼떨떨 했으며 아직 테스트 샷도 한 롤 찍어보지 못한 까닭에 의심 반, 두려움 반이다. 원하는 상황에서 샷을 날려보고 나온 결과에 따라 그동안의 모든 감정이 정리될 터인데 부디 만족스러운 구입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다행이 예전에 쓰던 렌즈는 요즘 국내 라이카 시장의 부족한 수급으로 인하여 내가 구입할 때 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었고 이는 녹티룩스를 구입하는데 큰 보탬이 돼 주었다. 그동안은 별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카메라 용품을 보관해 왔었는데 언젠가 되팔지도 모르는 그 날을 생각한다면 보관에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하겠다. 그래서 덩달아 이번 기회에 습도와 온도를 유지시켜주는 카메라 보관함을 구입했는데 카메라나 렌즈에 비하면 그 가격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고 비록 원 바디, 원 렌즈의 단촐한 구성이지만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찍사로서의 분위기가 방에서 풍겨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일이지만, 이로써 올 한 해는 행복할 것이라는 예상이 얼추 맞아가고 있다. 고작 렌즈 하나에 평생 꿈이 이루어 진 듯한 희열을 느끼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이지만 지금은 그냥 이대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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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나이더 제논 f0.95는 여기로!
헥사논 f1.2는 여기!  
보고 또 보고
서른 두번을 대면해도
여전히 감사한 자연의 선물
 
살랑대는 바람결에 눈을 떠보면
인생은 어느덧 여름지나 가을
마음은 언제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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