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스물 일곱에 요절을 한다고 스물 네살쯤에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다.
당장 검색해도 지미 핸드릭스, 커트 코베인, 이상, 바스키아 정도 밖에 찾을 수 없고 우리가 잘 모르는 천재들을 총 출동시켜 수명 그래프를 그려봐도 스물 일곱에서 정점을 이룰리는 없을텐데 왜 하필 스물 일곱일까.
아마도 서른 살 미만의 범위에서는 압도적인 분포를 보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천재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약과 술, 여자(혹은 남자)로 스스로를 학대하다가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운명하는 것이 대게 스물 일곱이던가...

강직성 척추염으로 인해 마감때마다 찾아오는 격심한 허리 통증이나 가끔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불규칙한 심장 박동 때문에 남들보다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은 해가 갈수록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스물 일곱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게 된 데에는 나는 꽤 운이 없는 사람이란 평소의 지론 때문이다. 물건을 계산하기 위해 제일 짧은 줄에 서면 어느샌가 계산대 앞에서 할머니가 동전을 하나 하나 세고 있다거나 점원이 급하게 자리를 비워 제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상은 비일비재하다. 뭘 응모해도 당첨된 적이 없었고 로또에서 숫자 두개 이상을 맞춰 본 적도 없다. 시험볼 때 답 두개로 고민하다 찍으면 항상 오답이고 심지어 내가 때리지도 않은 사람이 나한테 맞았다고 증언해서 주위의 지탄을 받은 적도 있었다. 네덜란드 길거리를 지나가던 남자가 얼굴에 웃음을 한가득 머금은채 "너 운 짱 좋은데?" 얘기해주었던 날도 구입한지 이틀 된 프라다 스니커즈를 신고 거대한 개똥을 밟았을 때 뿐이었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불운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나는 운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단정지었고 그렇게 운이 나쁜 관계로 천재가 전혀 아님에도 스물 일곱에 생을 마감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중한 삶을 무책임하게 운에만 맡기지 않을거란 생각에 말년 병장 몸 사리듯 아주 주의깊고 안전한 삶을 도모한 것이 나의 찬란한 스물 일곱이었다. 급류에 휘말릴까 물에 몸 담그는 짓은 집에서만 하고 바람부는 날에는 간판 밑을 걷지 않았다. 공사장이 있으면 돌아가고 불의를 보면 꾹 참고 견뎠다. 이 나이에도 계속 삶을 연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값진 노력의 결과라 생각한다.
 

부푼 가슴을 안고 대학원 첫학기를 시작하던 학교 3층 스튜디오는 세계 각지에서 건축을 배우겠다고 모인 학생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샴페인과 까나페만 없었다 뿐이지 그저 대상이 끌리는대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모습들은 드라마에서만 보던 일종의 파티와 같았다. 나는 그다지 사교적인 성격은 아닌지라 뭉게 뭉게 형성된 대화의 구름에 속하지 않고 간혹 누군가 스쳐가다 예의상 던지는 질문에 짧은 영어로 대답을 하던 소극적 인물이었다. 그렇게 인종전시장을 방불케하는 난잡함 속에서 초연히 전체를 관망하는 자가 되다보니 갈라파고스 제도에 던져진 다윈처럼 어느샌가 무리속에서 일정한 질서를 발견하게 되었다.  

일단, 맨땅에 두발 딛고 열심히 썰을 풀어야 하는 자리이니 만큼 권력을 쥔 미국인들이 대화의 주제를 끊임없이 재편하는 주도적 위치에 있었고 이런 '팍스아메리카'의 지리적, 언어적 영향권 안에 있는 멕시코, 인도 등의 친구들이 현 국제 정세를 재현하듯 미국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물론 케이블티비 채널 바꾸듯 3개 국어를 버퍼링 없이 쏟아 내는 언어의 귀재, 유러피안들도 두터운 세력을 이루고 있었고, 이날을 위해 수십년 갈고 닦아 온 듯한 완벽한 영어(게다가 미국인의 1.5배속으로)를 뽐내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슬로베니아에서 온 친구와 뉴스에서 몇 번은 들어 봄직한 세르비아 친구도 눈에 띄었다. 서양의 수준을 월등히 넘어서는 전투적 교육을 받아 온 아시안들은 괜히 어눌한 영어 솜씨를 공개했다가 한순간 부끄러운 존재가 될까 우려해 자기 나라 사람들끼리만 똘똘 뭉쳐있었고 그러다 우연히 다른 아시아 친구의 구수한 발음을 듣기라도 하면 그제야 얼굴에 피어나는 행복감은 '너와 나는 말이 좀 통하겠구나'하는 반가움을 넘어 안도감으로 까지 해석될 정도였다.

이렇게 언어와 인종으로 확연히 구별되는 심리적 거리는 지리적 거리와 다름 아니라고 결론내리는 순간 스튜디오 멀지 않은 곳에서 벽을 등지고 앉아 분위기에 아랑곳 않고 자기들 할 일만 묵묵히 하는 거룩한 집단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뒤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L.A에 위치한 싸이악(sci_arc:남가주 건축 대학) 학생들로 이미 2학년 이었고 로테르담을 배경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어 우리 학교에 베이스 캠프를 꾸린 것 이었다. 양측 모두 종합 대학이 아닌 건축 전문 학교라 그런지 그동안 남다른 교류가 있어왔고 가난한 우리 학교측에서는 넉넉한 공간을 대여해 재정 보충을 꾀할 수 있었으니 서로에게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싸이악 학생들은 이미 1학년을 거친 까닭에 서로에 대한 새로움도 없었고 프로젝트가 끝나는 6개월 후에는 L.A로 돌아갈 운명이었으므로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맺는데에 적극성이 결여될 수 밖에 없었다. 상황 파악이 우리보다 빨랐던 그네들은 하루라도 빨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게 신상에 이롭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그렇게 노트북 모니터만을 주시하고 있었겠거니 하면 약간은 비호감이 될 수도 있었던 그들의 자세는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한 학생이 있었다.
몇 명씩 모여서 집을 렌트했음이 분명한데도 누군가의 집 빈 구석에서 몰래 구겨져 자고 오는 듯한 행색을 하는 또래들과는 달리 그녀는 품격 있는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처럼 언제나 정갈한 자태로 등장하였다. 캘리포니아의 기후 특성상 앞으로 언제 또 입을지 모르는 외투였음에도 HEMA와 같은 네덜란드 저가 매장에서 어쩔 수 없이 대충 구입한 느낌이 아니었고 유럽의 변화 무쌍한 날씨에도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을 갖추기 위해 제대로 준비한 듯한 아이템들 이었다. 매일 같이 가지런하게 빗어 넘긴 머리위로는 옅은 갈색의 광채가 흐르고 그 아래 명확하게 규정된 이마의 볼록함은 두상 어디 한군데 들쑥 날쑥한 곳이 없을 것이라 생각 될만큼 탐스러웠다. 워낙에 앉아서 내리 작업만하고 과묵했던지라 도톰한 입술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지만 아주 가끔 미소지을 때 살며시 드러나는 치아들은 이제 막 잇몸을 뚫고 나왔다고 해도 믿을만큼 건강해보이고 가지런하였다. 이렇게 어디를 훑어봐도 완벽한 조화를 자랑하는 외모에서 가장 압권은 데칼코마니로 얼굴을 빚어낸게 아닌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코였다. 그녀의 코는 단순히 호흡기로써 존재하는게 아니라 예리하게 솟은 콧날로 상대방의 숨을 일순간 멈추게하는 효과가 있었고, 야무지게 다문 입술과 함께 할 때에는 그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할 냉기를 뿜어내는 기능을 갖추었다. 이렇듯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하는 치명적이고 날카로운 콧날을 경외하듯 나는 그녀에게 '칼코'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덕분에 한국사람들 끼리는 그녀가 바로 옆에 있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칭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였다.

미모와 콧날이 워낙 압도적인지라 동양인 친구들은 감히 말을 걸어 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전혀 별개의 수업을 듣기 때문에 얼굴을 맞댈 기회도 없었거니와 행여 파티에서 본다 하더라도 살벌한 영어와 공감 안 되는 주제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림자 놀이를 하기엔 얻을 수 있는 결과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주변의 누구도 그녀의 마음 석자 알지 못했고 그렇게 신비감은 커져만 갔다.
학기가 종반으로 치닫고 있을때쯤 우리들은 싸이악의 학생들과 함께 다른 학교에서 진행되는 워크샵에 참가하게 되었고 워낙 단기간에 결과물을 만들어내는게 목적인지라 매일같이 게릴라같은 스터디가 여기 저기서 정신 없이 이루어졌다. 밥은 누구랑 어디서 뭘 먹어야 할지 오늘은 또 몇시쯤 집에 갈 수 있을지 암담했던 생활들이 차차 익숙해지는 때가 되자 어느새 컴퓨터에는 마지막 발표를 위한 판넬작업이 올라와 있었다. 칼코가 노트북에 꽂을 콘센트를 찾아 헤매다 내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것도 딱 그 순간 이었다. 이보다 더 가깝게 거리를 유지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내심 의식하고는 있었지만 모든 감정이 배제된 '이퀄리브리엄'의 세계에서 온 듯한 그녀의 작업 태도에 그 이상의 기대는 정말 무의미한 것이었다. 배터리가 완충되는 순간 미련없이 떠날 수 있는게 노트북이고 그것이 워크샵의 밑바탕이니까 말이다. 흠잡을데 없는 형태미와 성능을 자랑하는 '애플'의 '맥북프로'는 그런 그녀에게 너무도 잘 어울리는 작업환경이었고 왠지 '아수스'나 '델'은 L.A에서 온 처자와는 어울리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작업을 멈추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도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많이 다루는 마지막 작업을 하다보니 노트북에 과부하가 걸렸던 것 같다. 마감때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녀는 감히 '맥북프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하였다.

(후편에서 계속)

살짝 드러나는 몇 안 되는 수염에서 하루를 느끼고
깎지 못한 손톱에서 일주일을 감지하고,
어색하게 길어버린 머릿칼에서 한 달을 읽는다.

색이 바랜 반지에서 지난 4년이 빛나고
힘 없이 말라버린 피부에서 남은 수명 중 십년을 감하고
케케묵은 생각 속에서 이십팔년의 고지식한 청춘이 스쳐간다.

나는 현재이고 과거이면서 또 다른 내일이다.

번듯한 직장 생활로 다달이 주택청약부금을 채우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시제의 삼단계(과거, 현재, 미래)를 알콩 달콩 논하는 형편이 아님에서 오는 정신적 아노미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북한 현실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수확의 계절과는 먼 아파트 장판 바닥에 거뭇거뭇 풍년을 이룬 머리카락들을 보고 있자면 매일같이 생산해내는 스트레스의 양이 얼마만큼인지 산술적 설명이 가능할 정도이다.

뿌리를 끊고 자살한 머리카락들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서글픈 생각과 함께 주섬 주섬 손날로 머리카락들을 한 데 모으다가 문득 머리가 예상 외로 많이 빠져 지금과 같이 결실 없는 수확을 해야 했던 중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런 생산량이면 삼십대엔 가발 공장을 차려도 되겠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나름 긍정적으로 회피했던 그 때, 기왕 필요하다면 내 머리칼로 만든 가발이 거북하지 않겠다고 파란 레쟈 커버의 수첩 사이에 검은 재료들을 저축해뒀던 엉뚱한 순간이 있었다. 다행히 고등학교때는 어린 아이들 머리숱 많아지라고 한번 시원하게 깎는 생활 속의 진리를 증명하듯 스포츠머리가 꽤 효과적이었고(유전적 원인은 이것마저 소용이 없겠지만) 일단 개체수가 짧다보니 머리가 빠져도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특별히 의식하지 않은 채 그동안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는지 뒷통수에 미스테리 서클이 만들어졌는지 내 알 바 아니었다.

파릇 파릇한 청춘의 머리 꼭대기를 지배하던 당시의 고민은 여느 또래가 그러하듯 근원을 알 수 없이 뿜어져 나오는 반항심 때문이 아니요, 될래야 될 수 없는 브라운관 너머의 존재에 대한 사랑도 아니요, 눈에 불을 켜고 책을 파보아도 오르지 않는 성적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 세속적인 차원과는 거리가 멀었던,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얼토당토 않는 고민거리는 바로 '휴거'로 야기된 종말에 대한 공포였다. 1992년 『다미선교회』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낚시질을 했던 휴거는 10월 28일 자정에 맞춰 선택된 예수 신봉자들만 하늘로 승천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아한 자태로 지구여 안녕을 외칠 수 있는 자격요건이 어떤 건지는 몰랐지만 주변 교회를 지날 때 들리는 우뢰와 같은 손뼉과 목놓아 부르는 노래들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가정과 직장을 내팽개치고 휴거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그 여파란 대단했고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우는 어른들이 앞장서서 종말을 이야기하니 이제 막 가치관이 뇌에 착상된 소년은 불안에 허우덕대기 시작하였다. 헌데 이상한 점은 부모님도, 친구들도, 학교 선생님도, 언론에서도, 정부에서도 그것이 명백한 거짓이다라고 얘기해 준 기억이 없다. 너무들 조심스러워서 오히려 진짜 가능성 있는 일이라 쉬쉬하는게 아닌가 반문할 정도였다. UFO가 '미확인'이라는 모호한 수식어로 존재 가능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빵상 아줌마의 낭만을 꺾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까닭에 쇼펜하우어를 만난 적도 없는 학생이 생의 의지를 철학하게 되었고 비리 비리 말라가는 정신은 자코메티의 조각에 견줄만 하였다.

드디어 10월 28일 운명의 시간은 다가왔다.
한국 시각으로 0시면 미국은 하루정도 차이나는 곳도 있고 유럽은 7~8시간 뒤일텐데 한국 기준으로 세계적인 부름이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각국의 0시를 기점으로  전지구적 릴레이가 펼쳐지는지 벌써부터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렇게 반신반의 하면서도 라디오가 공신력있는 카운트다운을 하기까지 망부석처럼 기다리는 나 자신도 늠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문세의 별밤 클로징 멘트가 끝난 후 얼마 안 있어 열두시를 알리는 기계음이 긴장 가득한 방의 정적을 깨는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뻔뻔하게 외쳐대던 것과는 달리 밖은 여느 때와 같이 초겨울 청명한 공기만이 흐를 뿐  휴거는 커녕 그 흔한 날벌레조차 눈에 띄지 않았고 세상은 휴가철인양 고요하기만 할 뿐이었다. 일상의 스케줄대로 차분한 오프닝 멘트를 전달하던 새벽 디제이의 음성을 들으며 애진작에 주무시던 부모님이 이미 여한없는 생을 살아서 속 편하게 계셨던게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은 설마 성적 상위권에 속했던 아들이 그런 사이비의 농간에 넘어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셨지만 나는 정말 생각보다 순진했고 누군가와 종말론에 대해 솔직한 고백을 나누고 위로받고 싶었었다. 그러는 몇달 동안은 은근히 괜찮은 척 밥도 잘 먹고 학원도 잘 다니는 평범한 날들 이었지만 아무도 곁에 없을 때 안에서 홀로 삭힌 고민의 흔적은 결코 젊은이답지 않은 흔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배송비 포함 7000원에 구입 한 라디오는 한 달도 되지 않아
자신의 역할을 포기한 듯 불규칙한 숫자들을 정보 창으로 쏟아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폰을 타고 들려오는 유희열의 목소리에서
89.1이 우연찮게 잡혔으니 오늘 밤은 이런대로 지내도 괜찮겠다 넘어간다.

made in china가 만들어내는 노이즈는 마침 비를 주제로 전개되는 노래와 섞여
예기치 않은 감성으로 다가오며,
억지로 기억 저편으로 밀어 넣었던 얘기들은 곧 잠이 들리라던 기대를 깨고
아무리 숨겨도 결국 드러나는 장롱 속 비디오처럼 빠알간 속살을 노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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