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마저 삼켜진 듯 고요하다.

이럴 때 학창 시절 친구를 찾아 정처없이 학교 운동장들을 서성일 때의 감정,

가진 게 없던 처지의 황량함, 소외감, 무력감이 소환된다.

같은 장소, 비슷한 시간대에(보통 일요일 오후 3~4시?)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그때의 슬픔을 꺼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검사 받기 전인데 이것저것 검색하다보니 두려움에 휩싸여 잠을 이룰 수 없다.

괜히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제안한 것도 아닐테고,

남성의 경우는 여성보다 결절이 악성인 경우가 많다고 하고,

나처럼 세로로 긴 형태, 경계가 또렷하지 않은 경우가 악성인 경우라고 하니

그게 아무리 예후가 좋은 암이라 하더라도 무섭지 않을 리 없지.

나도 예전에는 갑상선암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역시 자신의 일이 되니 그때의 내가 그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다.

 

현대인에게 병원만큼 진실된 종교 공간은 없겠다.

그간 삶을 나태하고 방만하게 대했던 태도를 반성하기도 하고

가진 것을 소중하게 지키지 않으려 했던 어리석음도 후회하며

무엇보다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검사를 앞둬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호르몬의 영향 때문인지

요즘은 기분이 바닥을 쓸고만 있다.

이게 다 뭔지 모르겠다.

매년 동네 병원에서 특수 피 검사+간단 초음파를 받았었는데,

흑석동으로 주소를 옮겼던 시기를 기점으로 7년만에 검사를 받았다.

피 검사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 일단 초음파 만으로도 여기저기 문제가 발견됐다.

 

콩팥에 살(?)이 찌고, 동맥에 콜레스테롤이 끼고, 갑상선의 혹이 자랐다.

(갑상선 조직 검사를 받는 날이 다 오는구나)

최근에 뱃살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볼 때 역시 중년의 신진대사는 관심을 요한다.

그간 식단 조절도 없고, 운동도 안 하고, 특히 폭음이 많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를 받은 것.

 

역시 사람이 바르게 살려면 병원을 자주 가야 한다.

결과를 전하는 의사 앞에서 손을 절로 모르게 되고, 그렇게 조신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정말로 술을 줄이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마음을 비워 잔잔하게 살도록 해야겠다.

억지로 즐거워지고, 억지로 망각하려고 알콜에 의존했던 삶은 그만.

애써 견디지 말고, 무심해지자.

 

그러한 삶의 일환으로 7년을 했던 수업도 하나 그만 두려 한다.

 

+

피/소변 검사 결과를 받았다.

그래도 다행히 경동맥 초음파를 볼 때보다는 콜레스테롤이 위험 단계는 아니다.

식단 조절, 운동, 절주로 충분히 수치를 낮출 수 있는 상황.

대부분 수치는 나쁘지 않고, 아주아주 다행스럽게 지방간도 아니었다.

다만 비타민 D 수치가 무척 낮아서 가끔 주사를 맞거나 매일 캡슐을 먹어서 보충해야...

해를 너무 안 봐서 그런가.

아무튼 이 정도면 선방이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갑상선 검사만 별 일 없이 넘어가면 좋겠다.

sns 그게 뭐라고.

일단 트위터, 인스타그램은 접었고,

거의 눈팅만 하던 페북에 애정이 생기기 시작해서인지

딱 그만큼의 마이너스 감정이 생긴다.

그렇다면, 그냥 앱을 지우던, 조용히 멀리하면 될 일인데

애써 '나 이거 이제 그만 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내 자신이 여전히 일말의 관심이라도 원한다는 얘기겠지.

물론 그렇게라도 선언하지 않으면, 수시로 손이 가는 채널을 하루 아침에 끊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럴 땐 그냥 <기슭>에 가서 술이나 마시고 싶은데

너무 멀고, 너무 늦었고

너무 나이가 들어 막 개발되는 연신내 힙 플레이스+ing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용어를 배웠네.

근데 그래서, 관심형 안정 애착(그저 용어의 반댓말로 적어 본)으로 돌리는 방법이 있을까?

위너의 진우가 술 좋아하는 이유가 나랑 같구나.

지난 게시물을 올리고 거의 한 달 만이다.

그 사이에 여러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글로 적기 위해 복기하는 과정이 괴로워서 그냥 넘겨버렸었다.

 

오늘 또 한 번 느꼈다.

분위기 파악을 잘못했다는 것을.

내가 해야 할 임무는 술자리를 계속 끝도 없이 연장하는 게 아니고

적절한 타이밍에 끝냈어야 하는 건데...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마시는 무책임은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다.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시간과 리듬을 고수하는 일이 필요한 태도.

이럴 바에는 그냥 예전처럼 혼자 자리를 떠서

혼술을 하는 편이 낫겠다.

 

이제는 내가 술자리를 주도하는 윗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집에 가고 싶어도 선뜻 일어서지 못했던 과거를 되짚어 보자.

술자리의 즐거움이야 누가 모르겠는가.

적절한 시간에 파하는 것도 내가 담당해야 하는 역할임을 깨닫는다.

그리고나서도 부족하다면, 그것은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할 일.

/

보모어 15년

피트가 강하지 않아서 아일라에 입문하기 좋다.

퍼스트필 버번 캐스크 숙성. 꽤나 괜찮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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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리악 10년

제주 면세점에서 파는 듯.

세 번 증류, 퍼스트필 버번 + px 셰리 캐스트.

처음엔 알콜이 날카롭고 씁쓸하다.

woody, salty, citrus.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풀린다.

입에 침이 고이게 한 후 마시면 버번과 px 셰리 특유의 단 맛이 가득해짐.

 

p.s. 이 글을 적고 5주 뒤의 느낌.

       벤리악은 거의 막잔쯤 되니까 무슨 약품을 먹는 듯 알콜이 튀어서 버렸을 정도고

       아직도 보모어를 마시는데, 아무리 보모어가 좋은 위스키일지라도

       아일라만 계속 마시는 건 너무너무 피곤한 일이다.

       적어도 3개의 위스키를 사서 돌려마시자.

외롭다.

지난 몇 달간 계속된 감정.

어차피 누군가 곁에 없으니 일하다 저녁에 집에 오면

그럼에도 아무도 없는 시간의 연속.

새벽이 되면 온갖 감정이 요동치고

그렇게 뒤죽박죽인 마음을 다스리다 잠이 든다.

 

대답하는 벽 같은 건 언제 발명되려나.

스시조는 3월까지 예약이 꽉 차고, 4월 예약은 2월 1일에 받는 형편이다.

확실히 오마카세가 인기인 듯 하다.

나는 카드 바우처를 쓰기 위해 가는 건데 예약을 할 수 없어 난감해 하던 차

그냥 4월이라도 예약해볼까 전화했는데 마침 당일 예약 취소분이 있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급하게 가게 됐다.

일단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씨티카드 바우처 12만원은 썼지만

10% 할인은 새해들어 종료, 아쉽게도... 할인까지는 받지 못했다.

그래도 이 시기에 운 좋게 디너 오마카세를 먹은 게 어디냐.

 

가이바시와 새우는 튀기고, 버섯으로 채운 츠마미. 먹기가 다소 불편.
전복은 항상 간이 잘 배서 좋다. 당연히 내장 소스도 박박 긁어 먹음.
말이 필요 없는 문어
복 사시미와 껍질. 폰즈 소스에 찍어먹는데 그리 큰 감흥은 없다. 그저 귀한 복을 먹는다는 의미.
금태 사시미와 참치 젓갈 소스. 아부리한 껍질의 고소함과 짭조롬한 젓갈의 밸런스.
서해 털게. 이것을 먹으러 이 시기에 기를 쓰고 스시조에 온다. 언제나 만화 갤러리 페이크의 후지타가 생각난다.
갈치 구이와 버섯 리조또. 작년 이 시기의 메뉴와 상당히 유사하고, 그럼에도 너무 맛있었다.
안키모. 스시조에서 안키모는 처음 먹은 듯 한데, 역시나 최고라고 할 수 밖에.
복 지리
벤자리
스시가 시작됐으니 에비스 작은 걸로 한 잔!
아오리이까. 무늬오징어는 회로 먹을 때도 감동이지만 숙성한 스시로 먹으니 장난이 아니었다.
방어 뱃살 기름진 것 보소. 이날 모든 스시가 기름 좔좔이라 열심히 씹고목으로 넘긴 이후에도 고소함을 음미하기 위해 한참을 머뭇거려야했다.
아까미
시로에비. 역시나 끈적끈적한 질감. 맛 보라며 한 마리 따로 주셨다.
스시조의 시그니처 참치. 이날 기름진 맛이 끝장이었는데, 참치야말로 말이 필요 없었다.
산타바바라산 우니. 이것도 정말 최고였다.
방어 뱃살. 이래서 디너를 예약할 수 밖에. 설마 런치에도 이 부위가 나올까?
고등어. 토치로 아부리하니까 칼질한 틈새로 기름이 고일 정도.
앵콜로 요청한 아오리이까. 이날 무늬오징어가 넘 맛있었어서. 그랬더니 이렇게 3겹으로 주시며 우니까지 넣어주셔서 극상의 맛이었다. 세상에나 이런 앵콜이라니.
내가 스시조를 가는 이유 첫 번째는 장어, 두 번째는 털게.
호텔의 멜론을 먹어보고 싶어서 과일 주문. 역시 호텔이라 그런지 이렇게 맛있는 멜론은... 다음에도 무조건 계절 과일을 먹어야겠다. 모나카도 좋은데 역시 과일이 돈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뱀 로고가 있는 러시안 보드카를 벌컥벌컥.

영화를 보는 나도 취해서 울고 싶었다.

숭고함과 반짝임도 아무 소용 없다고,

한낱 상업 영화였을 뿐이라고,

세월 앞에선 정신적 가치는 의미 없다고,

그 잔혹한 진실을 굳이 이렇게까지 귀청이 떨어져라 고함 칠 필요가 있었을까.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이런 망작이 세상에 나온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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