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생각지도 못하게 공연 사진을 찍게 되었다.
공연 관람에 방해가 될까봐 가수측의 요청에도 공연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LG아트센터였기 때문에 일단은 리허설 사진만 의뢰를 받았다.(여담이지만 공연장 바닥재를 나무에서 불연 카펫 같은 걸로 바꿔주면 하이힐 또각거리는 소리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 완벽한 관람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그래도 소속사측에서 어떻게 잘 설득을 했는지 음향 콘솔 뒤 기계실 유리박스 내에서 촬영할 수 있게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괴물같은 스펙의 nikon d3에 70-200mm렌즈라도 두꺼운 유리를 앞에 두고는 속수무책이었다. 일단 무대와 워낙 멀기 때문에 화각을 2배로 늘려주는 컨버터를 장착했으므로 화질은 저하되고 조리개 수치가 두배가 되었다. 그러고나니 아무리 정적인 움직임의 동률형이라도 초당 8매 연사로는 초점을 잡기 어려웠고 iso를 3200이상으로 올리니 화질은 점점 더 뭉개졌다. 가장 극악인 것은 유리로 인해 카메라가 다채로운 조명색을 잘 구현해내질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공연 사진은 기록용으로 쓰일 수는 있겠지만 현장의 감동을 실감나게 전달하는 데에는 실패나 다름 없었다. 애초에 리허설 사진을 찍고자 했었지만 알고보니 리허설도 첫 공연 전날에 모든 과정이 실제 공연처럼 이루어졌고 당일 리허설은 상당한 약식에 불과하였으니 이래 저래 너무 아쉬움이 많이 남은 사진 작업이었다.
기사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번 공연은 LG아트센터의 훌륭한 음향이 탄탄히 뒷받침 하는 가운데 동화같은 무대 구성과 역동적인 조명으로 뮤지컬같은 현장을 만들어냈다. 새벽 안개가 깔린 자작나무 숲이 연상되다가도 막이 한 번 가렸다 걷히자 압도적인 크기의 거목이 무대를 꽉 채워 모두를 깜짝 놀래키기도 하였다. 종이 낙엽이 내리는 가운데 발라드 중심으로 진행되는 공연은 그야말로 가을에 완벽한 구성이었는데 한가위에 아무런 풍성함도 얻지 못해 공허해진 마음이 겨울까지 버틸 수 있을만큼 든든해진 느낌을 받았다. 허나 아무리 사진이고 글이고... 덧붙일수록 표현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공연이니 그저 다음 기회가 온다면 대학교 때 수강신청하던 정신으로 예매해서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수 밖에 없다.

★★★★☆



p.s. 앞으로도 공연 사진 찍을 일이 있을까. 자꾸 빌리러 다니는 것도 번거롭고 canon 1d mk-III 바디 하나는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한 번쯤은 무대 디자인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카메라를 빌리러 한남동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 내내 화창한 가을 날씨가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들더라.
세상을 빛과 그림자로 양분할만큼 눈부신 빛줄기 임에도 쬐는 이를 말려 죽이려는 듯한 한여름 뙤약볕과 다른 인자함이 가득하였다. 하늘은 파랗고 갓 태어난 듯 포동 포동한 구름이 흐르니 그냥 어디 벤치에라도 앉아 동네 바보형처럼 멍청하게 있어도 부러움을 살 것만 같았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 한 무리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친구들과 마지막 수다를 나누는 것을 보니 문득 옛 생각이 났다. 계절이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이었으랴. 그냥 수업이 끝났다는 것에 기뻐하고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집에 가는 길이 가을 풍경보다 더 값진 순간이었는데. 이 따스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의 적절한 배합이 만들어낸 찬란함에도 아랑곳 하지않는 그들의 천연덕스러움이 위대하게 다가왔다. 모두가 같은 운명을 지고 살았기에 이런게 그냥 인생인가보다 착각하고 살았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건 나 뿐인걸까.
1. 은행들이 떨어져 인도에 무수한 흔적을 남기고 냄새는 거의 시궁창 수준이니 부인할래야 할 수 없는 한국의 가을을 살고 있다. 통증으로 하루 하루가 지옥같았던 지난 두 달이 언제 그랬냐는 듯, 이 날을 위해 소중히 가꿔온 뱃살에 주사 바늘을 꼽자마자 관절이 삐걱대는 마찰음도 줄고 머리를 감을 때 아크로바틱한 자세를 취하지 않아도 되니 이건 그야말로 제 영혼이 타는 줄도 모르고 찾게 되는  마약이나 다름 없다.

"인생을 굵고 짧게 살고 싶으면 휴미라를 맞으세요. 하지만 그 유혹을 참아야 해요."
저번 달에 한 번 만나봤던 의사는 염증을 주사제로 낮추는 것을 불경한 일인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 달 반이나 먹었던 당신의 약은 전혀 효과가 없고 그 와중에 염증은 계속 증가해 사는 게 사는 게 아닌데 방 바닥에 누워 여든을 산다고 한들 그걸 좋은 인생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열 번씩 깨고, 이를 악 물고 뒤척이며 자다가 아주 고요하고 편안하게 긴 잠을 자고 나니 통증없는 하루는 내 기꺼이 이틀로 쳐 주고 싶을 정도로 값진 것이었다. 이제는 두 달간 참아왔던 기침을 할 수도 있고 누가 혹시 갑자기 몸을 부딪히면 어떡하나 사방을 경계하며 다니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제부터 면역력이 평균 이하로 떨어지기 때문에 행여나 결핵, 감기, 독감 환자들은 미리 경고를 날려주면 참으로 고마울 것이다.

2. 정식 명칭은 holland alumni conference.
격조 없이 번역하자면 네덜란드 동창 회의에 초청받아 11월 초에 네덜란드에 가게 생겼다. 초청기관은 nuffic(외국인들의 고등교육을 관장하는 네덜란드 조직)이고 장소는 행정수도인 헤이그에서 열린다. 아직 자세한 요강을 읽어보지 않아서 확답을 보내진 않았지만 이미 마음은 작은 호수에 비치는 의사당 건물의 자태를 흐뭇하게 감상하고 있다. 네덜란드라니! 공짜라니! 하지만 내 지원서를 보고 마치 대단한 건축 전문가인양 착각했으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도 된다. 15명의 건축 종사자들과 이틀짜리 워크샵을 진행해야 하는데 미취학아동 수준으로 퇴화된 영어를 단기간에 끌어 올리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워크샵이 끝나면 관광도 하고, 책에 들어갈 사진도 찍고(날씨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겠지만), 그리운 사람들도 만나고, 학교 구경도 하고,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파타이도 먹고, 떨은 하면 안 되고... 이렇게 마냥 희망적인 일들만 일어날 리 없겠지만 행여 네덜란드 행이 취소가 된다고 하더라도 간만에 신선하고 뜨거운 피가 온 몸을 도는 기분을 느낀 것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 평소 의심 많고 성급한 기대를 하지 않는 성격이 앞으로 닥칠 불행한 사건들에 대해 충분한 방어 기제로 작용할테니 그냥 딱 이만큼의 작은 두근거림만을 안고 겨울을 맞이하면 될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2009년은 다이나믹하게 진행중이다.
인천 도시개발공사에서 출판하는 간행물에 실린 삽화와 글 입니다.
실제 책자에는 그림 테두리가 조금 짤리고 도시개발공사의 열렬한 추종자인 것 같은 뉘앙스로 글도 편집되었지만
그림으로 돈을 벌게 된 최초의 사건인지라 이것도 감지덕지야 하고 넘어 갑니다.
부족한 작가에게 일거리를 나눠 준 영욱형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인천은 성장기 입니다.
어제 벽에 표시한 키를 오늘 넘어버린 한창 때의 아이들처럼
무럭 무럭 높아만 가는 건물들은 매일 매일이 신기록 입니다.
서툰 낱말만 더듬거리다 음절 수를 늘려 소리내던 시기처럼
건물들이 모여 단지를 이루고 도로가 생겨 이웃들이 만납니다.
이러다 또 어느샌가 어른들로부터 '벌써 다 컸네' 소리가
입버릇처럼 나올지도 모를 일 입니다.

광화문 광장.
광화문 역에서 나올 때만 해도 좋았다.
파노라마 뷰로 펼쳐지는 북한산과 광장의 긴 축.
평소에 경험할 수 없었던 위치에 들어서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시민의 승리인 듯.
 

근데 이 건 뭐냐.
한국 드라마에 대한 되도 않는 전시를 뒤로 하자마자 등장하는 유치찬란 꽃 잔치.
색색의 꽃들이 모여 이루는 커다란 그림도 광화문 광장과 당췌 무슨 상관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환경미화 중 하나가 계단 층 마다 작은 화분을 올려놓는 것인데 의자 중간에 화분을 심은 건지, 화분의 테두리에 앉을 자리를 준 건지 알 수 없는 시설물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공무원 중에 꽃 못 심어 죽은 양반이라도 있나 왜 이렇게 사방 팔방 꽃 잔치를 펼치려고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도 정말 전문가 데려다가 멋지게 가꾸면 또 몰라.


이 녹음털털한 짐승은 또 뭐냐.
조경이 언제쯤 꽃 많이 심고, 나무 많이 심으면 이기는 게임에서 벗어날런지.
하버드 조경대학원을 나와 모처에서 일 하고 있는 후배의 앞 날이 걱정되는 하루였다.
어제부터 소화가 잘 안 되고 살짝 몸이 으스스 떨리더니 여전히 몸살 기운은 가시질 않는다.
아직 체온은 평소보다 0.5도 상승해서 37도 이니 크게 걱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신종 플루의 잠복기가 4일 정도라니 당분간은 집에서 추이를 지켜봐야겠다. 신종 플루에 걸리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기침을 하게 된다면 정말 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요즘 같이 관절에서 낡은 경첩 접히는 소리가 날 때에는 기침과 같이 한 순간에 기운이 터져나오는 경우가 가장 큰 고통을 수반하는 순간이다. '에잇~취' 하면서 동시에 터미네이터2에서 산산조각나는 t-1000의 심정을 알게 된다랄까. 그래서 기침을 참으려고 노력을 하면 어설프게 '에흥~'하는 부끄러운 콧소리가 나오게 되고, 과감하게 뱉으려고 하면 온 몸의 근육이 움츠러들면서 생기는 통증을 이기지 못해 '에잇~ㅇㅋㅌㄷㅌㄸ'와 같은 방언을 쏟아내게 된다. 아... 입에 댄 두 손바닥을 침으로 흥건히 적시던 나의 호탕했던 기침을 되찾고 싶다.






화창한 날 강남역 지나가는 길에...
m6ttl, noctilux, superia200

어제는 윤상형 앙코르 공연 사진을 찍었다.
언제나 그렇듯,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과 빌린 카메라가 손에 익숙치 않아서 생기는 불안과 비싼 돈 내고 공연 보러 온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배려가 서로 뒤엉키며 즉흥적인 모션을 취하다 보면 세 시간이 훌쩍 가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특별히 플래시 무비를 만들기 위해 관객이 입장하거나, 좌석이 채워지는 장면을 요청 받았는데 초반에 목적을 달성하다 보니 정작 공연 후반부에 가서는 긴장감이 좀 풀어졌다. 더군다나 방송용 카메라 네 대가 더 좋은 화면을 녹화 중이었으니 활동 반경이 좁아진 것도 나를 좀 더 한가하게 만든 이유였다. 그래서였는지 맨 앞자리 오른쪽 세 번째에 앉은 관객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약간 염색한 듯한 머리색과 동그란 얼굴. 캐쥬얼한 차림이지만 악세사리에는 신경 쓴 모습. 무엇보다도 적당한 길이의 단발 머리와 가끔씩 쓰는 뿔테 안경이 맘에 들었다.(뿔테 안경을 벗은 후 민소매 목 부분에 걸어 놓았을 때에는 더 스타일리쉬해 보였다.) 다른 누구도 시선을 잡아끄는 이 없는데 유독 그 분만 보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모두 갖춘 이상형의 프로토타입이었기 때문일까.

더욱이 그녀는 윤상형의 상당한 팬인 듯 보였다. '사랑이란'을 부를 때에는 진짜로 숨을 죽이기 위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입을 막았으며 내가 앞에서 알짱대건 말건 공연 내내 가수를 향한 초점은 한 순간도 풀린 적이 없었다. 하긴 맨 앞 줄에 앉는다는 것이 대충 어떤 사람인지그 성향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근거이기도 하지만 참으로 예쁘게 열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꾸 셔터 소리를 내야만 하는 내 입장이 난처하기도 했다.

공연이 슬슬 데미를 장식할 즈음에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 공연의 성대한 피날레를 담기 위해 3층 좌석으로 가서 대기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윤상형만 클로즈 업 해서 찍은 후 완전히 막이 내리면 여성분께 말이라도 걸어 볼 것인가. 명함이라도 주면서 블로그에 놀러 오시라고 하는게 좋을지 아니면 솔직하게 맘에 들어서 그런데 나중에 차나 한 잔 할 수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 건지. 그렇게 고민하다가 역시 내 스타일 답게 3층행을 택하게 되었다. 공연장 전체가 들어오는 사진을 찍고 싶었던 것이 우선이지만 용기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괜히 그 상황을 미화시키는 척,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윤상형 공연장에서 또 볼 수 있는 날이 있겠지라고 마음 속에서 중얼거렸지만 형이 또 공연을 할 날이 앞으로 일 년 내에는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관객들의 앵콜 요청에 다시 뜨겁게 달구어진 공연장 사진이 나의 큰 희생과 맞바꿔진 사실을 과연 누가 알아줄 것인가.

주인공이 퇴장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가운데 나는 부리나케 관객의 썰물을 헤치며 다시 무대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진정한 팬으로서 예의를 다 하듯 크레딧이 완전히 끝날 때 까지 자리를 지켜줬고 덕분에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힘겨운 사진 촬영을 마쳤다는 희열에도 불구하고 차마 말을 건넬 용기가 없어 그냥 지나쳐 보내고 말았다. 그 분 옆에 친구가 없었다면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 하며.


 





둥지에서 떨어져 어리둥절한 새끼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연신 주변에서 울기만 하던 어미새로 인해 가로수길 커피스미스 주변은 잠깐 소란스러웠다. 결국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에서 도와준 것 같던데 비슷한 기호를 갖는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서 그런지 비일상적이고 돌발적인 사건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다. 화려한 옷차림과 화끈한 소비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구경거리가 부족한 곳인건 사실이다. 

2008년 8월 24일의 나.
돌 잔치 사진이 들어있는 36방 필름의 마지막 남은 한 장을 소비하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중, 이 좋은 렌즈를 쓰면서도 정작 본인 사진은 한 장도 남기질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에 거울을 향했다. 운동을 못 해 가뜩이나 부실한 몸의 윤곽이 더욱 날카로워지니까 '여전히 엣지가 살아 있구나'라는 H양의 표현이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m6ttl, 50mm noctilux, ektar100, cu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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