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관해서는 내키는 대로 살아왔다. 그때 그때의 기분과 화두의 많고 적음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수다스러운 사람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묵한 사람으로 비추어졌다.
요즘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 자유롭고 여기 저기를 떠돌며 지인들을 만나곤 한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근황에 대해 이것 저것 주워듣게 되고 얘기 거리가 될 만한 물고기들(윤상 6집의 두 번째 트랙 '소심한 물고기들'에 근거를 둔다)을 다른 사람 앞에서 방류하게 되었다. 유학을 갔거나 해외 지사에 있다가 잠시 들어온 친구들이 나를 일종의 관문처럼 거쳐가게 되면서 나의 소식 전달 범위는 현재 상당히 글로벌한 위치에 도달해 있다고 본다. 아주 친한 친구들 끼리는 특별히 비밀로 요구하지 않은 이상 어지간한 얘기는 다 터놓고 말하게 되는데 문제는 가끔 아주 친하지도 않은데 같은 자리를 나누게 되는 사람들 때문에 벌어진다고 본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기우에 불과할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청자들이 훨씬 더 과묵한 사람들일 수도 있으나 결국 내 입을 통해 나오게 된 얘기는 사람들을 거치고 거쳐 화제의 대상에게 까지 도달할 것이란 예측이다. 
혹자는 예전에 이런 얘기를 하였다. '너한테만 말하는 비밀인데 비밀을 꼭 지켜주라'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무책임하다라고 말이다. 일단 비밀이라는 중대한 얘기를 본인도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문제이며 그것이 정말 발설되지 말아야 할 비밀이라면 애초부터 본인의 입 밖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얘기라고 본다. 비밀이라고 단단히 셋팅한 사실도 백프로 보안을 책임질 수 없는데 하물며 그냥 내 뱉는 말들이야 어떠하겠는가. 물론 각자가 현명한 맞춤식 검열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들이란 남 몰래 누군가의 얘기를 하는 것이 필요한 존재라 생각한다. 그냥 단순한 순환 고리가 이루어지면 또 다행스럽겠지만 기억력의 감퇴, 과장의 욕구, 상상의 발현 등의 이유들로 인해 이야기는 시간이 갈수록 본질을 잃을 수 있다. 돌고 돌다가 먼 이국 타향에서 본인에 대한 황당한 얘기들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떻겠는가. 농담으로 시작 된 말이 뉴스 추적, 피디 수첩 등의 원고가 되어 당사자의 귀에 들어간다면?
이제는 더이상 철 없는 나이도 아니고 친구들끼리 자주 만나지도 못해 돈독함도 예전만 못하다. 내가 이십 년 지기의 말 실수 하나에 오만정을 다 털어내고 관계를 정리한 것 처럼 이제는 의식적으로 남에 대한 말을 줄이고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혹시나 내가 생각 없이 발설한 얘기에 맘 상했거나 농담이었지만 본인에겐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던 말들이 있다면 무척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고 전하고 싶다. 특별히 대놓고 그런 얘기를 한 사람들은 없지만 그래도 분명 어딘가에서는 내가 던진 얘기들로 오해의 불씨가 바작 바작 타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요즘 말이 너무 많았다. 다소 불친절한 인상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라 말을 많이 함으로써 강한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싶었던 의도도 있었는데 내 얘기를 많이 해주거나 아니면 그냥 과묵한 사람, 화가 난 사람, 무서운 사람으로 사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 '강원도의 힘'은 제목에서 부터 강한 끌림이 있다. 도대체 강원도에 있다는 힘은 무슨 힘이란 말인가. 당시 사람들은 감독의 이름보다 제목에 관한 호기심에서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라고 내 맘대로 결론 짓는다.)  그 뒤로도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밤과 낮' 등 일단 제목부터 먹어주는 작품 활동들을 펼치게 되는데 가장 정점에 오른 작명 센스라 하면 최근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논할 수 있다. 나의 사정과 심정을 백분 헤아려주지 못하는 상대에게 나즈막하게 한 마디 억울함과 섭섭함을 섞어 표현하는 관용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잘 서...'와 같이 어조까지 포스터에 적용하였다면 어떤 반응이 있었을까 사적인 애정을 뒤늦게 공개해 본다.

유난히 이 제목과 같은 표현 방식을 좋아하다 보니 이와 비슷하게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관용어를 생각해 냈는데 그것이 바로 이 글의 제목과 같이 '왜 그러고 살아요'이다. 박미경의 노래 '넌 그렇게 살지마'는 너무 공격적이고 직접적인데 반해 '왜 그러고 살아요'는 이 말을 듣고 웃어야 할 지 화를 내야 할 지 잠시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며 영어로 표현하려 해 봐도 딱히 뭐라 번역을 해야 할 지 모르는 우리 민족 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정서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신조어도 아니고 고상하지도 않은 이 문장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이유는 요즘 이 말을 해주고 싶은 상황을 너무나 많이 접하기 때문이다. 

일단 일상에서 매일 같이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는 나중에 만화로 표현을 하려고 하니 다음 기회로 넘기겠고 오늘 뉴스에서 깜짝놀랄 만한 사건을 두 가지 보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창하는 러브 하우스로 빤짝 인기를 얻더니 자기 딸보다 어린 새 마누라를 들였고 나중에는 학력위조로 곤욕을 치루더니 이번엔 아주 본격적인 범죄를 일으켰다. 그의 뻔뻔함은 벡터 이미지로 만들어진 듯 아무리 스케일을 뻥튀기 시켜도 좀처럼 왜곡됨이 없으니 반성할 필요도 부끄러운 것도 없나보다. 진짜 전국적으로 얼굴 다 팔린 마당에 '왜 그러고 사는 겁니까 이창하씨!!!' 뭐 어느 세계에나 마찬가지 이겠지만 진정 한 분야의 전문성을 진지하게 파고드는 사람들, 소위 말하는 노력파들, 실력파들은 이런 일에 연루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꼭 요행을 부리거나 남을 등쳐먹고 살아가려는 인간들이 머리 좀 굴리려다가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것 같다. 
여직원을 황산 테러한 사장과 그 사장의 말을 철석같이 들은 말종 직원들은 사실 더 심한 말과 형벌이 필요하다. 이런 인면수심의 짐승들에게 까지 인권을 적용할 것 없이 바로 함무라비 법전식 보복이 들어가 주었으면 한다. 황산 성분 팩, 황산 스파, 황산 마사지...등등 말이다. 물론 정말로 그랬다가는 당장 세계 뉴스를 도배할만큼 과도한 표현이었으나 언제까지 극악 범죄자들에게 까지 갱생의 여지를 주고 최대한 법의 온정을 베풀어야 하는지 난 잘 모르겠다. 엄한 평화 시위자들, 철거민, 노동자들이 어지러운 현 시국을 대변하는 무리들로 신문을 장식하는 동안 사회 한 켠에서는 힘 없고 약한 존재들이 범죄에 노출되는 상황에 그저 한 숨이 나올 수 밖에.
어쨌든 요즘 나를 심히 불편하게 하는 사태들에 대해서 내 깜냥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 것 밖에 없다.
'인간 아니에요? 왜 그러고 살아요?'
만화 남자 훈련소의 작가 같았으면 또 본인이 창작한 엉터리 중국 역사를 가지고 마치 진짜 있는 것인양 저작권법을 그럴싸하게 설명하려 했겠지. 이 권법은 중국 오천년 역사에서...이렇게 운을 띄우면서 말이다.
어쨌든 본론을 얘기하자면 악질적이지도 않고, 어쩌다 한 번 공감대 형성을 위해 올렸다 지웠을 수도 있고, 혹은 너무 예전에 만들었던 홈피나 블로그여서 주소마저 기억이 나질 않는 다거나 하는 사람들에게 까지 법의 잣대를 엄격히 적용하여 50만원~100만원 이렇게 뜯어가는 변호사들이 무서워서 그동안 열심히 찾아 올렸던 영화 포스터, 책 표지, 캡쳐 이미지를 모두 삭제 하였다. 음악이나 영화를 올리는 것은 불법인 줄 알고 있었지만 포스터나 캡쳐 이미지마저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된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다. 물론 캡쳐 이미지 같은 것도 얼마든지 나쁜 의도로 생산 확대 될 수 있지만 그래도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해 줄 수 있는 루트를 마련해 주지도 않고 무서운 칼날을 들이미는 것은 평범한 블로거들에게는 그냥 텍스트로 모든 것을 표현하라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이미 시대는 영상물이 주도하고 있고 컨텐츠가 재생산 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창작이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제대한 사람에게 갑자기 입영통지서가 날아오는 것 만큼 놀라울 법무 법인의 고소장은 정말 아쉬운 창작물 보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게도 2011년쯤 2009년에 첨부했던 이미지 파일을 빌미로 기백 요구할지 모르니 '과속스캔들' '인터내셔널' '내 머리속의 지우개' '보트'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등의 포스터를 만든 사람과 억지 인연을 만들어야 하는게 아닌가 모르겠다.
게다가 이제부터는 영화, 음악, 도서 평을 쓸 때 해당 이미지는 내 손으로 직접 그려보이겠다.
개발 새발... 아주 각오들 하시게나.




하늘엔 잠자리 무리가 날아 다니고
저녁엔 매미 한 마리 찌르르 몸을 떨다가 지 혼자라 민망했는지 금새 울음을 멈추었다.
아파트 벽에 갇혀 울창한 녹음은 구경할 수 없어도 여름은 모른척 할래야 도리가 없다.
  

요즘 가요에 대한 나의 푸념을 듣기라도 한 듯 상형께서 6집 앨범을 소리 소문없이(T_T) 발매해 주셨다. 당장 강남 교보 핫트랙스에 달려가서 앨범을 구입하긴 했지만 씨디피가 고장난 관계로 앨범을 들을 길이 없어서 하루 종일 밖에서 궁금해 죽는 줄 알았다. 안 그래도 지연누나 만나서 친구들과 압구정에 있는 음악감상전용바에 갔었는데 다 합쳐서 족히 몇 억은 되어 보이는 음향 시스템을 통해 6집 앨범을 듣고 싶은 욕망을 참느라 힘들었다. 

어쨌든 지금은 아이튠스에도, 아이팟에도, 나노팟에도, 아이리버에도 음악이 잘 리핑되어 하루 종일 나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5집과 6집의 격차가 무려 6년(어디 용한 점쟁이가 6년 만에 앨범내면 대박이라고 점지라도 해 주었는지 가수들이 6년을 주기로 복귀한 사례가 많다)이다. 윤상은 누가 들어도 그만의 스타일을 잃지 않는 몇 안 되는 가수이지만 감수성은 그대로 이고 표현 방식에서 꾸준한 변화를 추구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월드뮤직의 성격이 강했던 4집과 전자음악이 주를 이루는 6집 사이에는 그야말로 수많은 선택의 갈림 길을 거쳐오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로 그 대비가 극명하다. 하지만 누가 얘기 했듯이 윤상은 전자음악을 하더라도 어쿠스틱한 맛이 난다는 표현은 그의 작업 전체를 한마디로 압축하는 묘사가 아닌가 싶다. 음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가 추구하는 전자음악은 새로운 사운드를 위한 도구인 것이지 음악을 쉽게 하기 위함이 절대 아니다. 사운드 소스를 스스로 만들어 내고 그 음들을 하나 하나 쪼개고 붙이고 여기에도 붙여 봤다 저기에도 붙여 봤다 하는 작업들은 어쿠스틱 악기로 음악을 만드는 것 보다 더 진이 빠지고 미치기 십상인 셈이다.(그의 작업을 보면 피아노 조율하는 사람이 연상된다) 시대가 바뀌고 도구가 발전하고 감각들이 변하지만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는 여전함을 보면서 가장 생명력이 길거라 예상되는 진정한 뮤지션 중 한 명이 아닌가 싶다. 저번 5집에서는 좀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이번 6집에서 만큼은 그의 행보에 대한 모든 기우를 말끔히 씻어버리는 훌륭한 작업들이다. 

★★★★

* 오류 수정: 알고보니 우리가 갔던 곳은 '핑가스존'이 아니라 '피터폴앤메리'였다.
아침 댓바람부터 노트북 검색을 했는데...
삼성의 조약돌 n310은 디자인에서 후한 점수를 줄 수는 있겠으나 가격 경쟁력에서 거의 빵점 수준이다.
핸드폰이 들어가도 벅찬 나의 바지 주머니에 어거지로 넣으면 지도 들어갈 수 있다고 당당히 외치는 소니의 넷북은 글 작업 하기에 정말 최고의 도구가 아닐 수 없으나 윈도우 비스타를 써야 한다는 점과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황당한 가격은 역시 anti-vaio를 외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최신 hp, dell 넷북은 무난하긴 한데 디자인에서 정말 좌절하게 하였고,
넷북 시장을 새롭게 평정하려는 asus의 shell 모델은 모든 면에서 훌륭한 수준이었으나 역시 가격이 문제였다.
70만원대 넷북이 갖고는 싶으나 현실적으로 40만대 넷북이 내 형편이 맞겠구나 싶었는데 이것 저것 검색하다 보니 어느덧 나는 애플스토어에서 신형 맥북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허억!
이러다간 맥북에어까지 검색할 기세였기에 의식적으로 숨을 고르고 스스로에게 자제를 촉구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도 돈이지만, 무선인터넷 환경을 구축하게 된다면 내가 즐겨 찾는 북카페를 갈 수 없다는 사실이(왜냐하면 거긴 인터넷이 안 되는 몇 안 되는!!! 가로수길의 카페이기 때문) 나름 설득력 있는 이유 였다. 

이로써 일요의 오전, 넷북을 향한 연정은 연예인을 향한 마음처럼 짧고 덧 없이 흘러갔다.
더 고정적인 수입이 생길 때 까지, 어느 날 두루미가 길다란 부리에서 소니 넷북을 꺼내 줄 때 까지 참고 기다리자.
요즘 노래들이 후크송이다 뭐다 해서 단순 리듬과 가사의 반복에 재미들린 것도 마음에 안 들지만 더욱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 감정을 빠르고 과장해서 전달하려는 저급한 발상이다.

백지영 '총 맞은 것처럼'
: 일단 이 노래가 모든 사건의 발단이라 할 수 있다. 꼭 총알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 피를 철철 흘려봐야 이 느낌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적당히 우리 정서에 맞는 가사를 붙여야 할 것 아닌가. '빠따 맞은 것처럼', '마대 자루로 맞은 것처럼', '따귀 맞은 것처럼', '쪼인트 까인 것처럼'...등등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남학생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상황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총을 잡아 볼 수 있는 군인들을 위한 노래란 말인가? 그렇다면 더욱 더 불길한 노래 되겠다. 

8eight '나는 심장이 없어'
: 그냥 할 말이 없다. 심장이 없다니. 터미네이터 4에 나오는 마커스도 아니고 말이다. 이 노래가 나름 히트쳤으니 더 지독한 후속작들이 다른 가수들에 의해 등장할 것 같다. '나는 콩팥이 없어', '나는 쓸개가 없어', '나는 맹장이 없어'... 물론 심장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가 없으니 이런 제목을 붙인다 한들 누가 발끈하며 불편한 기색을 내 비칠 수 있겠나. 하지만 '나는 콩팥이 없어' 등의 제목을 붙인다면 콩팥 하나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몰매맞을 각오를 해야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아픈 가슴을 염통에 비유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가뜩이나 신규 인력이 줄어 근심중인 심장외과의들에게는 이대로 가다간 그나마 있던 일거리 마저 줄 수 있다는 뼈아픈 메세지가 아닐 수 없겠다. 

에반 '머리와 심장이 싸우다'
: 왜 뜬금없이 머리와 심장이 싸워야 하나. 공평하게 장기 대 장기, 부분 대 부분이 맞서야 하는게 옳지 않은가. '머리와 가슴이 싸우다' 혹은 '뇌와 심장이 싸우다'로 고쳤으면 한다. 머리에는 대뇌, 소뇌, 뇌하수체, 안구, 치아, 머리카락, 피부 등등 심방과 심실의 근육덩어리로 이루어진 심장보다 훨씬 많은 요소들이 포진해 있다. 이제 심장 좀 그만 괴롭히자. 얘가 그동안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주었는가.

이승철 '손톱이 빠져서'
: 승철이 형마저 이런 저질 트렌드에 동참하다니 정말 실망이다. 내가 축구하다가 남한테 발가락을 채인 적이 있는데, 정말 운동장을 데구르르 구를 정도의 아픔이 밀려온다. 그 이후 발톱 주위의 피부가 까맣게 변하기 시작하고 며칠 뒤 직립으로 차렷자세를 하고 있는 발톱을 발견하게 된다. 발톱의 끝은 여전히 피부와 붙어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손으로 떼어내야 하는데 '발톱이 빠지다'라고 하기 보다는 '발톱을 떼어내다'라고 표현해야 할 그 과정이 끝나고 나면 아주 못생기고 작은 발톱이 금새 빈 자리를 채우게 된다. 이런 일이 손톱에 벌어진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다.

얼마전 오기사디자인 회식 자리에서 영욱형이 얘기했듯이 가사에는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의 사회 모습이 담겨야 하며, 또한 그 안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잉여물처럼 버려진 초라하고 슬픈 영혼들을 향한 위로의 메세지가 들어 있어야 한다.
구시대와 신시대의 경계에 있는 자로서 대중 가요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사태를 평가하자면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 출판사 토토북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샘플들을 그냥 묵혀두긴 아까워서 블로그에 게재합니다. 아이들에게 건축을 통해 문화와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작성한 글들인데 요즘 아이들의 수준을 너무 높게 측정한 저의 불찰로 인해 퇴짜를 맞은 비운의 졸작들 입니다. 앞으로 한 번 정도 더 도전이 있을 예정인데 그때는 하나의 이야기, 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가급적 쉽고, 즐겁게 쓸 예정입니다. 현재로서는 {프랭크 게리-물고기-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한국의 조선 산업}의 연결 고리를 드러내는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G: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아담한 교회가 이태리 바로크 건축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1634년부터 프란체스코 보로미니에 의해 설계가 시작되었고 1667년에 완공되었지요. 바로크 건축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올록볼록 부드러운 벽이 바깥에서도 잘 보이지요? 이전까지의 건물을 보면 기둥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기둥을 어디에 세우느냐에 따라 건축가가 말하고 싶은 얘기가 달라진다고 해도 좋을 정도에요. 하지만 바로크 건축의 경우 기둥은 건물을 받치는 구조적인 역할을 담당할 뿐, 세련된 모습으로 방문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물결치는 벽면입니다. 

 

 

 

토토: 벽이 딱딱한 콘크리트가 아니라 꼭 부드러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 같아요. 

 

B: 그렇지? 원이나 직선으로 이루어진 이전 건물들에 비해 더 창조적이고 열정적으로 느껴져. 이게 더 인간적이지 않니?

 

토토: 인간적이라고요? 인간적이라면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들이 인간성을 회복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B: 응. 물론 그렇지. 그런데 그러한 평가는 언제나 먼 훗날에 이루어지는 것이라서 그때 그때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단다. 르네상스는 과거 비잔틴이나 고딕에 없던 인간적인 특징을 부활시켰지만 바로크는 르네상스에 비해 더욱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지. 르네상스가 인간적이라고 해서 바로크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할 순 없다는 거야. 

 

토토: 그럼 바로크에서 인간적인 면은 어떤 건데요?

 

B: 그건 일단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생김새에서 드러나는데 말이지... 음, 아주 오래전부터 서양 사람들은 ‘이상’을 꿈꿔왔단다. 이상은 우리가 사는 실제 세상과 달라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모든 게 완벽한 세상’을 뜻해. 쉽게 말해서 지금 여기가 실제라면 신이 사는 천국은 이상인 셈이지. 도형을 그릴 때에도 마찬가지 인데, 원이나 정사각형, 직선 등은 어디 한군데 삐뚤어진 곳 없이 완벽하고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지? 신이 그린 것처럼 똑바른 그런 도형들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거야. 아이가 그린 것처럼 불규칙적이고 구불구불한 선이나 불룩하게 배 나온 타원은 그래서 이상적이라기 보다는 인간적이고 자연스럽다고 보는 거지.

 

토토: 똑바르지 않은 것이 인간적이란 거군요?

 

B: 그렇지. 사람의 몸을 봐도 직각이나 완벽한 원을 이루는 곳은 어디에도 없잖니? 오목하게 들어갔다가, 주름이 짜글짜글 잡혔다가, 뼈가 툭 툭 튀어나오는 것이 보통 사람의 몸이란다. 

 

 

 

G: 자 이제 다 같이 실내로 들어가 볼까요? 바닥과 천장을 보면 건물이 타원 모양으로 생긴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 시대의 다른 건축가들이 온전한 타원을 쓴 것과 다르게 보로미니는 타원에 다시 한 번 변형을 가해서 표주박 같은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공간이 길쭉하고 들쑥날쑥한 것이 묘한 긴장을 주는 것 같지 않나요? 이 성당은 ‘맨발의 삼위일체 수도회’를 위해 지어졌는데 그들은 화려한 장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에 들어와 보면 우선 조각 없이 깨끗한 벽면이 더욱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토토: 우와. 하늘에는 십자가가 날아다녀요.

 

B: 정말 너무 환상적이구나. 육각형들 사이사이에 십자가들이 채워져 있네. 꼭대기에 갈수록 도형들의 크기가 훨씬 작아져서 그런지 돔의 높이가 실제보다 더 높은 것 같아.

 

 

 

G: 자. 그럼 이제 개인적인 감상이 끝났으면 문제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주목해 주세요. 프란체스코 보로미니의 대표작인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는 위로 솟구치는 듯한 모습과 안팎으로 요동치는 벽면을 통해 신을 향한 열정적인 마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성당의 이름을 해석하면 구체적으로 카를로 성인을 위해 바친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 밖에도 성당의 이름은 이 곳 위치를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네 개의 이것이 있는 곳에 위치한 성당이라는 뜻에서 콰트로 폰타네란 이름이 붙었는데요 과연 이것은 무엇일까요?

 

토토: 저요! 제가 알아요!

 

B: 오. 토토. 이 문제는 이태리에서 태어난 너를 위한 문제로구나.

 

토토: 답은 분수입니다.

 

G: 네. 정답입니다. 콰트로는 숫자 4를 의미하고 폰타네는 분수라는 뜻입니다. 성당은 교차로의 한 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각각의 모서리를 보면 작은 분수들이 조각되어 있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언뜻 길고 어려워 보이는 이름은 바로 장소를 설명하는 단서를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토토군은 총 세 문제를 맞춰 선두권에 진입하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이2: 우와~ 영화에서 말고 실제로 이렇게 높은 대나무들을 보긴 처음이에요. 

어른: 쭉쭉 뻗은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그늘 덕분에 아주 시원하지 않니? 동양의 정서를 대표하는 풍경이기 때문에 네 말대로 대나무들은 영화에 자주 등장하곤 하지. 그런데 이 숲길은 대나무가 빼곡해 특별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소쇄원의 영역을 알리는 역할을 한단다. 

아이1: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걸요?

어른: 응. 그렇지. 우리가 사는 바깥 세계에서의 복잡함을 잊고 깨끗한 마음으로 소쇄원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긴 숲길을 걸어야 하는 준비과정이 필요하단다. 이 대나무들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자연의 세계로 서서히 우리를 안내하는 다리인 셈이지. 


(갑자기 고양이가 먼저 달려 나간다.)

아이1: 앗! 시자! 혼자 가면 안 돼. 이런 빠르기도 하지. 

아이2: 벌써 사라져 버렸어요.

어른: 괜찮아. 먼저 가서 쉬고 있겠지. 우리도 이제 거의 다 왔단다. 

아이1: 정말요? 하지만 입구를 지나오지도 않았는데요?

어른: 응. 그게 소쇄원의 가장 큰 묘미 중의 하나란다. 저기 끊어진 담장이 보이지? 저 담장의 좌측으로 가면 소쇄원의 내부로 들어가는 거고 우측으로 가면 산길을 주욱 오르는 거야. 

아이2: 큰 기대를 하고 온 사람들은 실망하겠는걸요?

어른: 여기서 부터가 소쇄원이요라고 엄격하게 정해놓은 것 보다 이렇게 대나무 숲길을 건너다가 자연스럽게 진입하는 방식에서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이를 건축에 반영하는데 있어 뛰어난 감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우리 조상들은 과장되거나 꾸미는 것을 사양하고 자연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길 바랬거든.

아이1: 자연과 자연스럽게라구요? 흠. 알듯 말듯 하네요.


(대봉대에 한가로이 누워있는 시자를 발견한다.)

아이2: 앗. 저기 시자가 누워있다.  

아이1: 얌체같이 혼자만 편하게 드러누워 있다니.

어른: 이거 시자가 제대로 쉴 곳을 찾았구나. 여기는 대봉대(待鳳臺)라고 하는 작은 정자인데 주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만든 장소야. 이름을 풀이하자면 전설의 동물인 봉황새를 기다린다는 의미인데 예로부터 봉황은 좋은 소식을 가져온다고 믿었거든. 봉황이 둥지를 틀고 산다는 벽오동나무와 열매를 먹는다는 대나무를 주변에 심었으니 손님을 봉황같이 여기고 귀하게 맞이하려는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지 않니?

아이1: 하지만 지금은 시자가 누워있으니 고양이 묘(猫)를 따서 대묘대라고 불러야겠네요.

어른: 하하. 그렇구나. 게다가 소쇄원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는 계곡물을 끌어다 만든 연못에는 손님과 나누어 먹기 위해 물고기를 풀어 놓았다하니 시자가 이 장소를 탐내는 게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되는구나.

아이2: 여기 쓰여 있는 한자는 어떻게 읽는 거죠?

어른: 응. 그건 애양단(愛陽壇)이라고 읽는 거란다. 이 ㄱ자로 꺾인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말하는 건데 햇살이 머물러 사시사철 따뜻하라는 마음과 함께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심이 녹아 있는 곳이지.   

아이2: 누구의 부모인데요?

어른: 저런. 그러고 보니 정작 소쇄원을 만든 사람에 대한 얘기를 빼먹었구나. 소박하고 포근한 풍경에 취해 나도 모르게 내 역할을 까먹었었네. 그러기 전에 우리 다리를 건너서 저기 보이는 별당에서 얘기를 이어가보는 게 어때? 저기가 바로 이 정원의 사랑채로서 글도 읽고 시도 읊으며 학문을 하던 곳이거든. 


(이동 중 담벼락 아래에 난 구멍으로 개울이 흐르는 것을 발견한다.) 

아이1: 어? 담 밑이 뚫려 있어요. 

아이2: 뭔가 불안해 보이는데 임시로 돌을 쌓아놓은 건가요?

어른: 아니야. 그렇지 않아. 산 북쪽에서 흐르는 물이 담장 밑을 통과해 자연스럽게 소쇄원 중심을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수문이야. 제각각으로 생긴 돌을 괴어 인공적인 느낌을 최대한 감추려 하였고 보기엔 저래도 500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단다. 

아이1: 에에? 500년이나요? 

어른: 행여 돌이 넘어진대도 '허허. 다시 쌓으면 되지'하고 가볍게 여기시지 않았을까? 어차피 자연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움직이거나 사라지기도 하면서 계속 변해가는 거잖아. 물길이 거세어져 돌이 쓰러진다면 그것도 자연이 준 운명인 셈이지.

아이2: 그게 자연에 순응한다는 동양적 생각인가요?

어른: 응. 앞으로 아시아의 다른 건축들을 보면 알겠지만 특히 한국적인 경우에서 더 잘 읽을 수 있단다.


(광풍각에서)

어른: 자~ 우리가 앉아 있는 이 곳은 광풍각이라는 곳이고 저 위로 보이는 건물은 제월당이라고 한단다. 광풍각이 방문객들을 위한 곳이라면 제월당은 주인이 사는 집이야. 이전에 배웠듯 각각의 건물은 규모로 구분할 수 있는데 광풍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제월당은 정면 3칸에 측면 1칸으로 조금 작아. 둘 다 팔작지붕을 얹었고 온돌바닥을 갖추어 겨울에도 제법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했지. 

아이1: 그럼 여기서 계속 사람이 살았던 건가요? 

어른: 그런 건 아니고 이런 곳을 보통 별서라고 하거든? 별서라는 것은 거주 목적의 집 근처에 지은 일종의 별장이나 마찬가지인데 특별히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에 위치하는 경우에는 별서라 부른단다. 그러니 출퇴근 하는 일종의 야외 공부방이라고 할 수 있지. 

아이2: 하지만 정원이라고 했잖아요? 정원은 나무와 꽃을 가꾸기 위한 곳 아닌가요? 

어른: 응. 물론 이 곳에서도 지금 보이듯이 여러가지 나무와 꽃이 한데 어우러져 있고 이 모든 것들은 다 위치와 종류에 따라 제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단다. 철학적으로 가꾼 정원이랄까? 그런데 보통 우리는 이 곳을 정원이라고 얘기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소쇄원은 원림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아.

아이1: 원님이요? 

어른: 원님이 아니고 원림(園林). 정원이 주택들 가운데 인위적으로 동산의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라면 원림은 동산과 숲의 자연 풍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부에 정자나 집을 배치한 것을 뜻해. 게다가 정원은 식민지 시대에 일본에서 들여온 개념이라 우리식으로 얘기하자면 원림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단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림을 만든 사람은 양산보(1503~1557)라는 선비인데 그의 호가 소쇄옹인 까닭에 소쇄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어. 소쇄(瀟灑)는 시원하고 깨끗하다는 뜻이 있거든. 대나무 숲과 개울가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보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기분이 절로 상쾌해지지 않니?

아이1: 쿨....

어른: 얘는 너무 편안한지 벌써 잠이 들었네. 하긴 시내에서 꽤 떨어진 곳까지 왔으니 무리도 아니지.

양산보는 너희들보다 조금 더 컸던 열다섯이 되던 해 정암 조광조의 제자로 들어갔어. 조광조는 당시에 곧은 성격과 바른 품성으로 사림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던 학자였거든. 그런데 이를 시기하던 세력이 꾀를 부려서 결국 임금이 하사한 사약을 먹을 수 밖에 없게 되었지. 그때 양산보는 겨우 열일곱 이었는데 스승의 억울한 죽음으로 부터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 모름지기 사람은 때를 잘 만나지 않으면 그 큰 뜻을 펼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속세와 인연을 끊고 고향에 내려와 일찌감치 여생을 보낼 장소를 만들게 된 거란다. 

아이2: 그럼 십대 때부터 이런 곳을 만들기 시작한 거에요?

어른: 본격적으로 원림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삼십대였지만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은 이십대부터 그에 대한 꿈을 조금씩 키워갔었던 모양이야. 그리고 평생을 소쇄원에서 공부하는 데 보냈으니까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 없이 참 바람직한 삶을 살다 가신 분이였지.

아이2: 에이. 그래도 이 산 속에서 혼자 있으려면 심심했겠어요.

어른: 그래서 다른 선비들이 자주 찾아와서 공부도 하고 휴식도 취하라고 광풍각이며 대봉대며 마련한 것이 아니겠니? 덕분에 여러 사람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고 이 곳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글귀와 시가 많이 남아 있단다. 

아이2: 그래서 이렇게 작은 장소에 대해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거군요?

어른: 대표적으로 양산보의 친척인 김인후라는 사람이 48영 한시를 써서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지. 원래는 싯구를 담장에 걸었는데 지금은 제월당에 가면 볼 수 있어. 

아이2: 영이 뭐죠? young?

어른: 영(詠)은 노래하다 또는 시를 짓다라는 뜻인데 48영이라고 하면 마흔여덟개의 시를 의미하지.   

아이2: 와. 정말 많이도 썼네요.

어른: 응. 그래서 지금 우리가 그때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생각들을 짐작하는 자료로 쓰이지.

아이2: 소쇄원에 대해 모르는게 없겠어요.

어른: 하하. 꼭 그렇지만도 않아.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많은 의미와 철학을 담아서 터전을 만들었거든. 여전히 풀리지 않은 비밀들이 남아 있단다.

아이2: 그게 뭔데요?

어른: 여기 소쇄원도를 보면 개울 남쪽으로 인공 연못이 두개가 있지? 

아이2: 예. 하나는 대봉대 옆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어른: 응. 그런데 그 연못을 수직으로 마주보고 있는 건물은 각각 광풍각과 제월당이거든. 그 연못의 너비와 별당의 바닥 면적이 서로 약속한 듯이 비슷하단다.     

아이2: 그게 무슨 의미죠?

어른: 글쎄. 아직 특별한 의미를 찾지는 못했지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그 위치나 크기가 예사롭지 않게 보이나봐. 언젠가 그 뜻을 헤아릴 날도 오겠지.

아이2: 서양 건축에서 흔히 나타나는 상징성과 스케일이 여기에도 있군요.

어른: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정말 똑똑한데? 건축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는 사실은 동서양이 다를 바 없어.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뜻을 일일이 찾아내고 해석하는 것 보다 이렇게 한가로이 마루에 앉아서 자연과 하나 되길 바랬던 소쇄옹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지 아닐까?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한껏 쉬다가 가자꾸나.  


→ 소쇄원 공식 홈페이지

판테온이라는 이름은 '모든'을 뜻하는 '판(pan)'과 '신'을 가리키는 '테온(theon)' 두 단어를 합친 말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 신을 함께 숭배했던 고대 로마인들은 인근지역을 무력으로 정복하더라도 신을 향한 그들의 믿음까지 빼앗지는 않았어요. 다신교 문화를 바탕으로 종교의 다양성을 존중 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모시는 신의 숫자는 늘어만 갔고, 30만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신이 존재하다보니 그리스의 경우처럼 특정 신 한 명을 위해 신전을 세울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결국 누구하나 섭섭하지 않게 모든 신들을 아우르는 건물을 짓게 된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로톤다광장에는 판테온을 보러온 관광객들로 가득합니다. 로마에 가면 꼭 방문해야 한다고 안내 책자에서 강조하는 것에 비해 밖에서 보이는 건물은 무척이나 초라하고 낡았습니다. 교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 흔한 조각 한 점 달려있지 않고 입구를 떠받치는 16개의 코린트식 기둥에 장식된 잎사귀들은 죄다 벌레 먹은 듯 끝이 닳아 있습니다. 국가의 보물이자 신성한 신전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방문객들의 소란스런 왕래에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고전 양식으로 구성된 입구 정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흔적이란 M.AGRIPPA.L.F.COS.TERTIVM.FECIT라고 쓰인 라틴어뿐인데 이는 루시우스의 아들인 마르쿠스 아그리빠가 세 번째 집정관 임기에 만들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판테온은 아그리빠라는 사람이 만든 것일까요? 그 역사적 기원에 대해서 잠시 짚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아그리빠는 황제 카이사르가 양자인 옥타비아누스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기 위해 발탁한 시골출신의 병사였습니다. 카이사르가 기대한 대로 아그리빠는 군인과 정치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고 옥타비아누스가 훗날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가난한 시골 출신에서 제국의 2인자가 된 아그리빠는 항상 카이사르와 신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고 기원전 25년에 판테온을 지어 모든 영광을 고인이 된 황제 카이사르와 자신을 지켜준 로마의 모든 신들에게 바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사각형이었던 최초의 판테온은 불행하게도 기원후 80년에 대화재로 불타 버리고도 미티아누스에 의해 다시 지어진 건물은 110년에 벼락을 맞고 보수가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었습니다. 결국 118년 하드리아누스황제에 의해 새롭게 계획되어 128년에 공사를 마친 세 번째 건물이 현재 우리가 보는 판테온인 것 입니다. 보통은 건축물에 대해서 건축가의 이름이 기록되는데 비해 어디에서도 건축가를 찾아 볼 수 없고 오직 하드리아누스황제의 이름만 남아있는 이유는 왜일까요? 그리고 아그리빠의 이름을 건물에 새겼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하드리아누스는 다른 황제와 달리 건축과 도시계획에 관심이 많았고 예술적 재능이 풍부했던 까닭에 건물 형태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판테온의 경우 역시 기본적인 계획은 황제에 의해 이루어지고 실제 공사에 관한 세부적인 문제들만 건축가들이 관여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스스로의 위대한 창조물을 아그리빠의 공으로 돌린 것은 최초 건설자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위대한 황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아그리빠를 기념함으로써 본인의 정통성을 은근히 강조하려는 정치적인 이유도 담겨 있습니다.


입구에 가까이 갈수록 수 세기에 걸쳐 새겨진 상처들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집트에서 수입된 붉은 화강암 기둥은 거칠고 색이 바랬으며 발코니 지붕을 덮었다던 청동은 오간 데 없고 새까만 나무 구조가 부끄럽게 속살을 노출 하였습니다. 모든 신들을 위해 봉헌 되었던 신전은 609년 동로마제국의 황제 포카스가 교황 보니파시오 4세에게 소유권을 넘기면서 기독교의 신을 위한 성당으로 한순간에 운명이 뒤바뀝니다. 기독교의 보호 아래 그토록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외부로 드러난 질 좋은 대리석과 건물 정면을 장식하던 조각들이 약탈당하는 것 까지 막기는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663년 콘스탄티우스황제는 로마를 방문하는 12일 동안 값어치 있는 장식품들과 청동기와를 모두 가져가 버렸고, 17세기 초 교황우르바노 8세는 산탄젤로 성의 방어를 위해 입구 천장을 덮은 청동 25톤을 모두 녹여 대포를 만들었습니다.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리던 화려함은 어느새 콘크리트와 벽돌만 남아 칙칙해졌습니다. 조각들을 매달기 위해 여기저기 구멍이 흉하게 뚫린 페디먼트 밑을 지나 오랜 노력 끝에 복원한 청동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가 봅니다.


아! 하늘을 덮은 거대한 돔 지붕이 만든 실내공간은 정말로 거대하고 경이롭습니다. 지름 43.3m의 공이 들어간다면 바닥에 그 끝이 정확히 맞닿을 정도로 정교하게 짜인 내부는 공학과 수학이 이룩한 건축의 기적입니다. 일반 건물 15층 높이에 달하는 천장에서부터 1층으로 전달되는 콘크리트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벽의 두께는 얇아지고 재료도 비교적 가벼운 돌들로 이루어졌습니다. 단단하고 무거운 석회질로 구성된 1층 벽은 무려 6.2m나 될 정도로 두꺼우니 웬만한 폭탄에도 끄떡없을 것 같네요. 콘크리트가 굳는 속도를 빠르게 하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사각형 모양으로 촘촘하게 판 벽면은 입체적인 패턴을 이루며 장식적인 효과까지 달성했으니 일석삼조입니다. 이후 모든 돔 구조에 영향을 미치게 된 판테온의 돔은 시작부터 얄미울 정도로 완벽한 모습을 갖추었네요. 유일하게 뚫린 머리꼭대기의 둥근 창을 통과한 강렬한 햇살이 바닥에 눈부신 원을 그려냅니다. 거대한 실내를 가르는 한줄기 빛을 따라 사람들이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이 재밌습니다. 실내를 밝히고 공기를 순환시키는 9m 지름의 창은 비가 내리면 더운 실내 공기를 밖으로 뿜어내면서 내부에 떨어지려는 빗물을 밀어 낼 정도로 과학적입니다.   


실내에 들어서기까지 앞만 보고 걸었던 사람들은 둥근 창을 보기위해 고개를 들고 한참을 서 있습니다. 고대로마 때부터 사람들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각자의 위대한 신에게 기도를 올렸겠지요. 인간의 시선이 수직을 향하면서 저 하늘 너머 어딘가에 있을 신의 위대함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판테온의 둥근 지붕은 하늘을 닮은 것 입니다. 하늘은 둥글다는 당시의 생각이 이러한 공간을 만들게 된 이유인 셈이지요. 욕심이 많은 누군가가 사각형문양 가운데 하나씩 달려있던 금장식을 훔쳐가기 전에는 우주에서 빛나는 별들과 같이 신비로운 반짝거림이 하늘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신의세계가 황홀하게 펼쳐졌으리라 짐작됩니다. 고대그리스는 맑고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종교의식이 대부분 야외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전은 외부를 향해 열려있고 상대적으로 내부공간에 대한 관심은 덜하였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건축은 성당이나 공동목욕장에서 알 수 있듯이 중요한 행위들이 내부에서 일어나며 따라서 어떻게 하면 실내를 더욱 웅장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을 바꾸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의식에 따라 건축공간이 역전되는 큰 변화를 2000년이 지난 지금의 판테온에서도 변함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쓰러져가는 외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르네상스이후로 유명인사들의 무덤으로 사용된 판테온은 비록 신성한 건축으로서의 기능을 잃었지만 그 자체로 신화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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