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비키와 자유분방한 크리스티나가 정열과 낭만의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경험하는 이국적 연애담으로 우디 앨런 특유의 비범한 설정과 여주인공의 점잖은 나레이션이 빛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었을까 의구심을 품게 만드는 번안된 제목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심지어 굳이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스포일러성 발언을 담고 있기까지하다. 게다가 의아한 점은 공식 포스터를 봐도 등장하는 여인은 크리스티나와 남자친구의 아내로서 비키는 도대체 왜 퇴출된 것일까 당황하게 만든다.(사실 포스터만 보면 전적으로 한국 번안 제목이 설득력을 갖는다) 자기 신념의 높은 벽을 세워 바른 생활을 유지해오던 비키가 능글맞으나 로맨틱한 남자 안토니오를 만나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과정 역시 영화의 중요한 텍스트가 아니었던가.
어쨌든 나에게 있어 이 영화는 러브 트라이앵글의 안정성에 대해 역설하는 듯 하다. 비키의 먼 친척 뻘인 사모님은 자상하고 능력 있는 남편과 표면적으로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남편이 주지 못하는 육체적 만족을 다른 남자에게서 몰래 찾고 있으며, 크리스티나는 안토니오과 마리아를 양쪽에 두고 예술적 동지로서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크리스티나가 이들 관계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안정된 관계는 일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바르셀로나 거리는 다시 마리아의 광기에 휩싸이고 만다. 우리가 볼 때는 불륜이고 비윤리적이고 관습을 벗어난 삼각 관계가 때로는 둘 만으로는 채우지 못한 빈자리를 메우며 벡터간의 팽팽한 균형을 이룰 수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우디 앨런 늙은이가 주책이야) 오히려 엄격한 규범을 지키려 하는 비키의 경우 선택의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며 고뇌하다가 나중엔 죄책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cbmass를 해체하고 듀엣을 결성한 dynamic duo가 ‘셋보다 나은 둘’을 강조하지만 우디는 삼각형이 갖는 기하학적 안정성(수직력, 횡력에 강하다)을 인생사에 대입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짜릿한 묘미라면 사진을 찍기 위해 하이엔드 디카를 깔짝대는 크리스티나에게 마리아가 ‘사진은 자고로 필름이여’라고 훈수를 두며 그녀의 라이카 M7을 들이미는 장면에 있다. 또한 전작에서 영화사에 기리 남을 무시무시한 킬러를 연기했던 하비에르 바이뎀이 뻔뻔한 바람둥이로 나와 멋드러진 웃음과 진지한 눈빛을 통해 또 다른 의미에서 여자를 죽여놓는 장면들을 감상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