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는 연일 대통령의 서거를 보도하며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분향소를 찾고 있는가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오늘 강남역을 지나는 길에도 사람들이 퇴근 버스를 기다리는 것 처럼 길게 늘어선 끝에는 작고한 대통령의 사진이 숙연한 모습으로 걸려 있었다. 이용객들의 주연령대가 그래서 인지 아니면 정치적 지지층이 그랬기 때문인지 대부분이 이 삼십대의 젊은이들로 구성되었지만 그렇게 혼잡한 강남역에서 자발적으로 추모행렬을 질서있게 구성하는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낮과 밤을 구분 않고 봉하마을에 모인 사람들이나 서울 곳곳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를 찾아 친지를 잃은 것 같은 슬픔을 비추는 시민들을 보니 어떤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나라 역대 수장 중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어쨌거나 권력의 가장 꼭대기에 앉은 사람인만큼 반 권력지향적인 나의 성격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지까지의 삶을 돌아볼 때 정말로 나의 이상을 실천해 줄 것 같은 대통령 후보가 없었기 때문에 매번 선거날에는 그냥 집에서 자빠져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선거는 국민의 의무라는 세뇌와 투표를 안 했다고 하면 벌레 보는 듯 하찮게 보는 주변 시선이 싫어서 억지로 나가서 누군가를 찍고 오기는 했다. 대통령이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그렇게들 못 돼서 안달이며 그걸로 편이 갈려 서로 으르렁대고 헐뜯으려고 하는 건지 나로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후보의 정책이나 인간 됨됨이에 관심은 있지만 그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21세기 삼국지를 연출하는 모습이나 종교를 연상시키는 듯한 지지자들의 과잉 반응들까지 동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고보면 고등학교 때 정치,경제 과목을 제일 싫어하고 못했으며(이건 선생님 탓이 크다) 삼국지는 한 번도 읽은 적이 없고(읽고 싶지도 않고) 종교마저 거부하는 나인만큼(역시 종교도 교리는 맘에 드나 신도들의 행태가 맘에 들지 않는다) 위와 같은 반응은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된 것도 아니다. 비주류와 B급 문화 지향적인 자세 또한 그 근거로 댈 수 있을 것이다.
뭐 꼭 영웅이라고 해서 에어포스 원이나 인디펜던스 데이에 나오는 대통령처럼 목숨을 걸고 액션을 취할 필요는 없다. 영국이나 네덜란드의 여왕처럼 박제된 아이콘이 되는 것도 원치 않으며 그런 면에서는 차라리 권위를 갖되 스스로를 낮추려하고 퇴임 후에는 귀농하여 보통 시민으로 돌아간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적 행보가 나에게는 더욱 영웅적이며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정치적 행보는 논외로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극적 결말에 대해 여타의 젊은이들 처럼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한 때 국가의 수장이었던 사람이 비통한 마음으로 자살을 택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 누군가를 심판해야 한다는 비장함이나 쥐새끼는 죽으라는 식의 악의는 눈꼽만치도 들지 않는다. 울컥하는 분노는 아니더라도 가슴에 파고드는 뜨거운 비애로 인해 부모를 잃은 것처럼 검은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한다던지 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는 반응에도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어찌보면 굉장히 슬픈 일이다. 세상을 살면서 내 전부를 바칠 수 있을 것 같은, 혹은 나의 이상을 실현해 줄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정치인을 아직 만나지 못한게 말이다.(물론 가장 근접한 후보는 있으나 그가 대통령이 될 확률은 아아...꿈만 같아라) 아마도 나와 직접 관련된 사안들의 잘잘못은 어디까지나 나하고만 관계된 일이라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쉽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스스로를 투영하지 못하는 개인주의적 성향 탓일수도 있다. 그리고 아직 진심으로 남을(혹은 국민을) 생각할 만큼의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더욱 앞 날이 어두운 것은 다음 대통령 후보로 나올만한 사람들은 더욱 답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진짜 누구처럼 '불심으로 대동단결'에 한 표 행사하는 일이 오지 않을까 두려워진다.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사는 한계로 인해 반드시 어떤 누군가를 대표자로 지명해야 하는 운명인 것은 잘 알겠으나 대통령이라는 위치는 아직도 감정적으로 닿을 수 없는 저 멀리에 있는 존재로만 느껴진다.
p.s. 글 쓴 후에 생각해보니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했던 5년 중 3년을 외국에서 보낸 것도 하나의 이유인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보다 막시마여왕의 얼굴을 더 많이 봤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