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vial
s, m, l, xl에서의 netheralds dance theater
110908
제주 휴가
2011. 8. 10 - 2011. 8. 13
+ 제주도 출신 아버지를 두었음에도 제주도에 가는 건 초등학교 6학년 때 이후로 처음이다. 아버지는 평균 일 년에 열 번쯤 제주도에 가시지만 가족이 함께 한 적은 없었다. 언제나 골프채를 메고 혼자 휴가를 가시던 아버지 덕에 가족이 함께 휴가를 가는 건 21년 만이다. 과연 우리 식구들이 여행을 떠날 날이 또 올까 싶은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한반도는 이 날도 폭우였겠지. 두터운 구름을 뚫고 맘껏 햇살을 누리자 매트릭스 3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 제주 도착.
제주에서 탄 자동차는 어지간하면 이렇게 실내 지붕에 엠보싱 데코레이션을 해 넣었다. 지방마다 다른 미학.
오설록 박물관을 가는 길은 안개가 자욱해서 10m 앞이 보이질 않았다. 신제주에서 중문으로 가는 길을 그렇게 안개가 잘 낀다고 하니 경로 선택시 주의해야 할 것이다. 오설록 방문은 나쁘지 않았고, 날씨 관계로 포도호텔 관람은 포기했다.
제주 바다를 보다.
북쪽의 용두암. 사진에선 잘 안 보이지만 용 머리를 닮은 바위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아버지가 태어나신 동네이기도 하다.
용두암 근처 유명한 밥집 앞에 있는 커피 판매점.
용두암 근처 유명한 용출횟집.
황돔(1.5kg=15만원). 행복했다.
+ 둘째날은 하귀에 있는 할머니 산소에 처음으로 가 보았다. 배씨 가족묘이지만 일 년에 두 번쯤 벌초를 하기 때문에 지금은 거의 정글과 다름 없었다. 뱀이나 벌이 덤빌까봐서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어찌나 무섭던지.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던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애틋하시다. 산소 앞에서 손자들 왔다는 말씀을 하시며 눈이 붉어지셨다.
숙소에서 조금 쉰 후 친척형 가족과 밥을 먹으러 늘봄흑돼지 식당으로 갔다. 꼬마들 앞에서 음식 사진 찍기가 쑥스러운 관계로 인증샷은 없지만 밑반찬과 고기 모두 최고였다.
나는 미술관이 정말 좋다. 하지만 나머지 식구들은 나만큼 좋아하지 않고 특히나 아버지는 아마도 미술관에 가 보신 적이 없으실 것이다. 달리 계획이 없는 식구들은 제주도립미술관행에 동참하였고 아버지만 마사지 받으러 사우나로 가셨다. 마침 미술관은 숙소에서 가까운 편이어서 택시비가 5200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날씨가 좋기도 했거니와 숲 한 가운데에서 뜻하지 않게 등장하는 현대건축물의 세련됨은 큰 감동이었다.
간삼에서 설계했으나 안도 타다오가 했다 그래도 믿을 분위기였다. 어머니께서 특히 좋아하셔서 뿌듯했다.
휴식중인 제비떼.
옆에는 아이러니하게 러브랜드였다. 러브랜드가 궁금한 사람은 검색해 보시길. 나느 예전에 사진으로 보고 이 게 뭐야 싶었는데 어머니와 형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결국 나는 카페에서 라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고 두 사람은 기어이 러브랜드를 다녀왔다. 인당 9000원의 입장권을 사고 들어간 러브랜드에 대한 감상평은 그야말로 처참하였다. 그러게 내 그렇게 말렸건만. (제주도립미술관은 고작 천 원 밖에 안 하는 훌륭한 곳이다. 하지만 제주도까지 와서 미술관을 가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
전시는 네 개 정도가 있었는데 그 중 제주 출신 작가들의 단체전이 좋았다. 특히 수묵화로 자연과 건축물의 대비를 그린 오민수 작가와 섬세한 판화로 인간 심리를 표현한 김지은 작가의 작품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전시를 본 뒤 전복죽을 먹으러 유빈에 갔다. 요즘 제주 인근 해수온도가 변해서 그런지 어패류들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것 같았다. 유빈도 꽤나 유명한 전복 요리집인데 전복 가격이 올라서인지 내용물이 실하지 않았다. 전복죽을 비롯하여 제주에서 먹은 각종 생선 구이는 집에서 해 먹는만 못한 게 현실이다. 식당에서는 비싼 돈을 내지만 나오는 생선들은 그에 상응하지 못하기 때문. 제주에서 돌아올 때 친척형이 갈치, 고등어, 옥돔을 가득 사서 안겨주었다. 알이 꽉 찬 생물 갈치를 조림해서 먹었는데 제주 식당은 비할 바가 못 되었다.
+ 셋째 날에는 택시를 섭외해서 다녔다. 십만 원이면 9시부터 18시까지 기사님이 택시로 어디든 안내를 해 주시는데 아버지 또래의 어르신께서 무척 친절하게 데려다 주셨다. 물론 아버지가 제주도 출신이시니 더 잘 해주셨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지정한 목적지 중간 중간 짧게 들를 수 있는 명소를 안내 해 주셔서 꽤나 알찬 하루가 되었다.
이것도 그랭이질인가?
입구 상부의 공간.
물이 호탕하게 떨어져야 할 수공간엔 거미줄만이...
공사가 중단 된 리조트.
인근의 주상절리대.
어째서 저 멀리의 수면은 더 밝게 빛나는 것인가.
휘닉스 아일랜드로 가다가 올레길을 걷기도 하고 섬에 가기도 했다.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산책로가 유실되어 들어가지 못한 '조도'의 풍경. 물이 맑다.
구름을 얹은 성산일출봉.
섭지해녀의 집에서 작은 바닷게를 갈아 넣은 겡이죽을 먹었다. 게 맛이 나는 특이한 죽이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섭지 해녀의 집에서 보이는 바닷가 풍경.
휘닉스 아일랜드 내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아고라. 호쾌하게 들어갔다 콘도 멤버가 아니라 쫓겨난 비운의 장소. 딱히 볼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안도 타다오 설계의 지니어스 로사이.
땅의 기운을 느끼고 명상을 하는 곳.
제주의 돌과 식물이 건축과 잘 어울렸다. 아니 오히려 건축이 이들에게 크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안도의 건물을 직접 체험하긴 처음.
수도 없이 교전 상태인 모자. 오늘은 아름답게 휴전.
홍해 컨셉으로 쏟아지는 인공 폭포. 저 기울어진 면 하부에 갤러리와 카페가 위치.
사람들은 건축보다는 등대를 훨씬 더 선호한다. 지니어스 로사이는 그야말로 한적.
역시 안도 타다오 설계의 글래스 하우스.
레스토랑. 아이스아메리카노 8800원. 아주 맛 없는 쌍팔년도 식의 팥빙수가 16500원.
글래스 하우스의 후정.
구름 갠 성산일출봉.
대칭형 매스. 공간이 너무 단순하며 내부 프로그램들이 어처구니 없어 실망스러운 건물. 결론적으로 휘닉스 아일랜드는 건축가들의 유명세로 마켓팅 하기에는 좋았겠지만 외부 방문객에게 추천하고픈 장소는 아니다. 콘도에서 자는 건 해보고 싶음 :-)
신제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아부 오름의 꼭대기에서 바라 본 풍경. 아부 오름은 이제수의 난을 찍은 장소라고 한다.
오름의 분화구. 둥글게 분화구 주위를 수놓은 삼나무는 인공적으로 심은 것이라 한다.
몇 안 되는 나의 사진.
+ 귀찮음을 억누르며 겨우겨우 기록한 제주도 여행.
모든 사진은 아이폰으로 찍음.
고양이의 본능
그런 측면에서 사람들의 보행을 무시하는 건 예사요, 버스가 달려와도 아랑곳 않는 비둘기가 훨씬 인간사회에 적응을 잘 한 동물이다. 심지어 이들은 나는 법도 잊어버렸으니까.
부정맥
그래서 당장 성모병원에 문의를 했는데 종합병원이 예의 그렇듯 아무리 빨라도 6월 7일에나 선생님을 뵐 수 있었다.
그래도 일단 예약은 하였으나 진료일을 기다리는 동안 증세는 다시 가라앉았고
막상 선생님을 마주할 때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 기회에 실체를 밝혀보자는 뜻에서 이것저것 여러 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막상 심전도 기계를 차고 있자니 마치 이것이 무슨 치유기라도 되는양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방정맞던 부정맥은 멍석깔아 놓으니 나타날 줄을 모르고,
이러다가는 다음 주 월요일 반납일까지도 별 일 없이 지나갈 듯한 기분이 든다.
그나마 요즘은 예전에 먹던 약도 금하고 있고, 평소에 말을 많이 하면서 에너지를 쏟다보면 나타나는 증세였으니
몇 시간 동안 머리 아프게 떠들어야 하는 내일 공개크리틱이 되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내일은 용의자가 출현할 아주 높은 가능성이 점쳐지는 날인 것이다.
20110606
죽음
그리고 그 때부터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남들보다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십 년쯤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거라는 예전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는데
나의 경우는 일단 주제를 잘못 잡았음에도 인생을 통틀어 답을 내려 하고 있다.
92년과 99년을 무사히 보내면서 이젠 휴거, 그랜드크로스 따위의 종말론을 믿는 순진한 소년에서 벗어났으므로
2012년 마야 예언에는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지만, 실상 죽음이라는 이슈는 생과 사의 우주 법칙으로 구동되는
무빙워크를 탄 이상 어쩔 수 없이 옛날보다 성큼 다가가 있고 여러가지 신체에 내재된 질병 덕분에
또래보다 훨씬 앞에서 죽음이라는 녀석을 마주하게 되었다.
때로는 '아우 입 냄새 정말 쩌네. 좀 꺼져줄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죽음과 가까이 대면하게 되는데
주치의의 의학적인 관점에서는 사실이 아닐지라도 몸으로 체감하고 심리적으로 느끼는 거리감은 그 정도로 밀접해 있다.
과연 '오늘 잠을 자면 내일 눈을 뜰 수 있을까' 따위의 생각을 일상적으로 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 있을까.
아직 우리 나이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 망령처럼 일상에 깃들어 있다.
그러니 어디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대할 것이며, 하고 싶은 일이 넝쿨째 굴러 들어와도 어떻게 다 수락할 수 있으며,
먼 훗날 수명이 좀 깎일 것을 기꺼이 감수하며 바로 지금 몸을 불사를 수 있겠는가.
그저 아침에 눈을 뜨면 휴 다행이다 싶고, 강의가 끝나면 중간에 쓰러지지 않고 탈 없이 무사히 마쳤음에 감사하고,
집에 도착해서 부모님 얼굴 봤으니 안심이고, 내일도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
매일 이런 불안을 안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잦은 불안은 곧 불만이고 불행을 낳는다.
몸과 정신이 모두 건강했다면 훨씬 즐겁고 무모한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며칠씩 밤을 새다 설계 마감 전날에는 거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던 20대의 과감함은 더이상 찾을 수 없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스스로와 타협하며 사는 요즘은 그래서 나답지 못하고 남 보이기에 부끄럽고
달콤한 위로와 동정에 기대게 된다.
이러다 내가 지인들 중 가장 오래 살아남는 사람이 되면 그만한 반전도 없겠지.
'시네도키 뉴욕'의 주인공의 심정을 너무 잘 이해하게 되는 요즘.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 수십년 뒤에도... 어머니의 밥 먹으라는 소리에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살아있는 사람이 되고프다.
(누군들 안 그러겠냐마는) 나는 조금 더 살았으면 좋겠다.
두통
과음한 날 머리가 깨질 듯 아픈 적은 있지만 평상시에 이렇게 정기적으로 두통이 오긴 처음이다.
물론 요즘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지만
스트레스 받는 게 비단 요즘 뿐이겠는가 싶어 근본 원인으로 꼽기엔 조금 모자람이 있다.
아마도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부담감이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물론이거니와 가끔 문자로 시시콜콜한 질문들이 들어 올 때에는
내가 이들의 보모 역할까지 해야하나 싶어 한숨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러니 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져야 했던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은 얼마나 머리 아팠겠는가.
우악스럽게 타이레놀을 씹던 그 표정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비로소 어른이 된 것이다.
중간고사
내 딴에는 나름 쉽게 낸다고, 미리 제공한 강의 자료 내에서 거의 단답형으로 냈는데,
채점 초반엔 예능프로에 버금가는 답안을 보며 낄낄대며 웃다가
지금은 내가 뭔가 이 학교 학생들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고
가르침의 방식이 잘못된 게 아닌가 스스로를 질타하는 단계에 와 있다.
그만큼 학생들의 점수가 정답 갯수를 셈하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처참한 지경이다.
물론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낸 몇몇 학생도 있으나 기왕이면 다수를 살려야 하는 게
선생과 선장의 바른 역할이 아니겠는가.
나도 뭐 개뿔도 모르면서도 꾸역꾸역 강의하는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좌절과 굴욕만 안겨준 시험이 된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다.
근데 이론 강의 두 개 중 하나는 기말고사를 안 보는데 어디에서 학생들이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할지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낮의 욕심으로부터
뜨는 별이 다시 돌려줍니다.
머리가 아프도록 죄어야했던
과외 공부방으로부터
오빠가 돌아옵니다.
살점이 아린 것도
참아야했던 일터에서
아빠가 돌아오십니다.
떡 목판 앞에서
무릎이 굳어진 엄마도
시장으로부터 돌아오십니다.
사랑을 흩어버린
낮의 욕심으로부터
평화로운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합니다.
잠시 멎은 싸움터로부터 병사가
꽃잎을 물고 돌아오듯이
엄마의 품같은 고향으로
사랑을,
그리고 평화를,
조용히 조용히 돌려줍니다.
- 이진호 시인의 동시집 '새마음'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