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데이 나잇!!!!!
나는 집에서 이러고 논다.

모름지기 갈라쇼라면 그 수 많은 연기 중에 즐거움이 가득한 프로그램이 하나쯤은 있었음 싶다.
이번에는 캐나다 피겨 신동이 그런 역할을 했지만
그래도
난 이런 게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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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어렸을 적에는 올림픽만한 낙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자 이내 집, 학교, 학원의 접점들로 경계지어진 협소한 생활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신촌, 강남역 등지에서 사람들과 노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고 중요한 사건들은 당구장 티비를 통해 접했던 것 같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유희매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더이상 올림픽과 같은 전 지구적 축제에 목을 맬 필요가 없어졌다. 경기를 순수하게 경기 자체로만 받아들일 수 없게 머릿 속이 복잡해진 것도 한 몫 거들었다고 볼 수 있고 말이다. 이젠 더이상 폐막식을 보면서 정말 소중했던 친구와 이별하는 듯 코끝이 시려오는 정서를 느낄 수 없는 불감증의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이번 동계올림픽에서는 뜻하지 않은 감동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희망과 함께 무엇보다도 신세대의 당당한 약진을 통해 정신적으로 큰 힘을 얻었다. 선수들 모두 건강히 다음 올림픽에서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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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머니께서 손수 두 아들을 데리고 상도동에서 택시를 타고 동대문아이스링크까지 가서 스케이팅 레슨을 시켜주셨던 과거가 아주 오랜만에 떠올랐다. 마치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처럼 개인 트레이너까지 고용해서 스피드 스케이팅을 익히게 하셨는데... 생각해보면 그때 꽤나 얼음을 잘 지치던 소년이었고 코너웍도 깔끔한 것이 쇼트트랙으로의 전향도 고려해 볼 만한 수준이었다고 자신한다. 하여튼 좋은 걸 누리고 그만큼 실력도 좋았던 기억은 모두 다 초등학교 때. 인생의 정점이 너무도 빨리 왔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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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선수가 티비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vod로 봤는데... 얜 대체 못하는 게 뭐냐!!!!


원래는 김연아에 대한 범국민적 관심의 중심지에서 한참이나 멀리 있던 사람이었다.
어짜피 피겨란 종목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 룰도 잘 몰랐고, 여성이 자아내는 동작의 우아함 혹은 섬세함 보다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적같이 골망이 갈리는 축구같은 종목을 사랑하였다. 단체 대 단체의 전쟁같은 경기가 올림픽 발생 초기와 가장 흡사한 양상이라면, 일단 체육을 좋아하는 측면에서 나란 사람은 그렇게 별로 근대화되지 못한 편에 가까웠다. 피겨는 일종의 연기이지 경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다.

게다가 그녀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다. 과연 김연아가 교정을 하지 않았더라도, 아니면 더 못생겼어도 이만큼의 호응이 뒤따랐을까. 얼굴도 실력인게냐. 대체 광고를 몇 개를 찍었는지 티비에서는 하루종일 김연아만 나오고 심지어는 책도 썼더라? 물론 국가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이 없기 때문에 기업 스폰으로 모든 걸 꾸려가야 하는 특별한 상황때문이었겠지만 연습하기도 바쁜 선수가 운동만 해도 모자랄 판에 그만큼의 대외 활동을 소화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적당한 선은 바로 여기까지다 라고 정의내리기 어렵지만 왠지 투기꾼들의 열기로 가득찬 지하경기장을 보는 듯 도가 넘친 것 같았다. (금메달을 따자마자 그 결과에 대해 경제적인 효과가 1조니 뭐니 하면서 분석하는 언론의 자세도 구역질이 난다.) 경기를 직접 보진 않았지만 김연아가 현재 얼마나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수준이 여자 피겨 역사에 전례가 없을 만큼인지는 언론 보도를 통해 잘 숙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심 무척이나 걱정을 하였었다. 이런 수 많은 관심들이 얼마나 큰 부담을 안겨줄까. 혹시 실패를 했을 때 그녀 자신 뿐 아니라 거꾸로 우리가 집단적으로 떠안게 될 상심은 얼마나 거대할까. 왜 우리는 저 작은 소녀의 점프에 덩달아 심장 박동도 트리플러츠를 뛰어야 하는 걸까. 내가 아닌 남에게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껴야 하는 이 초라하고 가련한 인생을 어찌해야 하나.

나의 질투도 안티 피겨 무드에 크게 한 몫 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는 김연아 아버지가 되셨다. 김연아 경기는 꼭 생중계로 보셨고 시상대에서 그녀가 눈물을 흘리면 덩달아 코를 훌쩍이고 눈물을 훔치셨다. 아니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오버 아니십니까. 아버지가 무슨 빙상협회 회원도 아니고 피겨라고는 미셸 콴 정도만 겨우 기억하실 분께서... 게다가 아버지는 평생 아들의 성취에는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리신 적 없지 않으십니까. 저도 서울시 수영대회에서 일 등 한 적 있었고, 동네 수학경시대회 은상, 중학교 때 한 번 반에서 일 등 한 적 있었고, 그 외에 사생대회, 글짓기 등 잡다구리한 대회 다 합치면 수상경력 꽤나 되는 사람이올시다. 그게 단지 전국구 혹은 세계 일류가 아니어서 감동이 덜 했던 건가요. 그래서 맨날 전교 일 등만 하던 옆집 미옥이를 그렇게 딸 삼고 싶다고 입이 닳도록 제 앞에서 얘기하신 건가요. 김연아보고 국민여동생 국민막내딸 하니까 진짜 아버지 딸, 제 여동생 처럼 보이나요. 아 정말 일 등하고만 가족하려는 이 더러운 세상!!!!!

원래는 이번 올림픽 김연아 경기도 생중계로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이었다. 그런데 올림픽을 몇 일 앞두고 오래된 아남티비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자 어머니의 눈과 귀가 차단된 것이다. 나야 인터넷을 통해 수시로 정보를 알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어머니는 심지어 우리나라가 오전에 금메달을 따도 저녁까지 모르시기 일쑤였다. 그 뒤로는 가끔 핸드폰 dmb를 통해 경기를 보시긴 했지만 연세가 있으신지라 돋보기를 쓰고 작은 화면을 쳐다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김연아 경기는 내가 시간에 맞춰 컴퓨터 모니터로 보여드릴려다 보니 덩달아 나도 쇼트프로그램을 생중계로 보게 되었다. 아사다 마오가 원래 프리 종목에서 뛰어나단 사실도 모르고 그저 김연아가 자기 기록을 또 경신하고 무척이나 기뻐하는 모습에 덩달아 흐뭇해했다. 처음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 순간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기사가 모든 검색창의 전면에 부각되고 언론의 연이은 찬사가 끊이질 않자 더 많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부터 딱 이틀만에 나도 김연아가금메달을반드시딸것이며만약따지못할시그날나의하루는구하라가와도구하지못할정도로망가질대한민국남성이란 타이틀을 걸었다. 영국도박사의 예측을 분석해보면 나의 기쁨과 희망을 과감히 몰빵해도 될 정도라 여겨졌다.

나도 가끔은 징크스가 있다. 항상 그런 건 아니라서 크게 얽매이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내가 없는 곳에서 세상은 더 밝아지는 느낌이랄까.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ac밀란을 상대로 박지성이 전반 9분 그림같은 골을 만들어냈을 때 나는 막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티비를 켰을 땐 1-0이란 스코어에 일단 놀랐지만 득점자 이름을 보고 으악 소리가 났었다. 역시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박지성이 골을 넣었을 때 나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대신 2002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안정환의 헤딩슛이 이태리의 골망을 출렁였을 때에는 티비시청 중이었기 때문에 이 징크스가 언제나 유효한 것은 아니다. 그냥 박지성이 챔피언스리그에 나왔을 경우에 좀 더 근접하다는 경험적 사유랄까. 대한민국이 월드컵 결승전에서 연장전까지 치룬 후 승부차기에 돌입했을 때의 부담만큼 김연아의 프리 경기는 중요하게 여겨졌다. 축구도 아니고 챔피언스리그도 아니고 박지성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닌 김연아의 경기였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 모르는 징크스의 싹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이런 건 그저 미신이고 어리석은 결정이지만 그럼 어떠냐 내 기분에 그게 더 좋을 것 같고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올 것 같은데.

일단 경기 시작 한참 전에 인터넷 티비를 켜고 소리를 죽인 채 화면을 숨겼다. 훨씬 일찍 치뤄진 곽민정의 경기 리플레이를 보며 마음의 워밍업을 좀 하였고 경기 시간이 대략 4분 정도라는 것을 파악해 두었다. 1시 21분에 경기 시작이라 했으니 25분 쯤에 화면을 불러 들이면 짠 하고 김연아가 피날레 포즈를 취하거나 오서 코치 옆에서 판정을 기다리겠지 싶었다. 오전에 보던 책과 시계를 번갈아 보길 반복하다가 운명의 21분이 되자 책을 내려놓고 머리를 비우기 시작하였다. 4분이란 시간은 아사다 마오가 울면서 인터뷰했듯이 '앗'하는 순간에 지나갈 찰나에 불과하였다. 대학 합격자 발표 ARS전화에 수험 번호를 눌렀던 97년의 나로 돌아가 조용히 경기 화면을 불러들였다. 김연아는 앉은 자세로 마구 돌고 있었고 관중은 적당한 수준의 호응을 보여주었다. 경기 후반에 점프 뛸 일은 없을테니 안심하고 약 30초 동안 여러 자세로 돌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막 경기가 끝났는데 어떻게 했을지 너무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그녀는 예전과 다르게 격앙된 상태로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고 관중은 실로 우뢰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그제야 나는 다행히 연기에 큰 실수는 없었겠구나 싶었다가 이내 눈물을 흘리는 연아를 보고 이 친구가 정말 엄청난 일을 저질렀구나 확신하게 되었다. 찔끔 찔끔 눈물을 흘리는 김연아의 점수가 발표되는 순간. 그래 뭐 이 순간은 달리 묘사할 필요가 없이 그녀를 응원한 모두의 심정이 다 같았을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점수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길길이 집을 뛰어 다녔다. 아 빌어먹을. 왜 내가 대학 합격했을 때 보다 더 기쁜 걸까. 이 거대한 범국민적 최면에 짧은 순간 나도 모르게 동질화된 것 치고는 너무 큰 반응이었다. 심지어 나도 눈물이 고이는 것 같다. 아버지. 아버지의 심정이 이랬던 건가요? 아직 아사다 마오는 시작도 안 했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이미 금메달 확정이라고 티비 자막을 송출해도 문제없어 보였다. 아사다 마오가 음악 연주 전부터 갑자기 트리플악셀을 돌기 시작하고 미친년처럼 신들린 듯 4분 내내 돌고 돌고 또 돌지 않는 한 이변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사다는 심리가 불안정하다고 하지 않는가. 바로 직전에 야오밍 키만큼 높아진 라이벌의 점수에 어떻게 지 정신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겠나. 그냥 맘 편하게 그녀의 연기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누구나의 예상대로 연아의 압도적인 우세. 언제나 죽도록 얻어 터지다가 마지막 필살기(라 쓰고 트리플악셀이라 읽는다) 한 방에 극적인 승리를 거머쥐던 만화 스토리에 길들여진 일본인들의 패배.

오후 5시 반에 집에 들어오신 어머니께서 핸드폰 dmb를 꺼내시더니 경기 재방송을 보신다. 하루종일 볼려고? 이따 저녁 뉴스에도 해 줄텐데 했더니 낮에 간 식당 티비가 너무 작고 멀어서 경기를 제대로 보질 못하셨단다. 그동안 새로운 티비를 알아보러 나와 같이 가길 원하셨는데 마침 금요세미나도 취소되고 시간이 나는 김에 저녁도 먹을 겸 백화점에 가보자고 했다. 마침 삼성전자의 led 티비가 김연아 금메달 획득 기념으로 하루동안만 10만원 할인 행사 중이었다. 이모저모 따져보니 인터넷 최저가와 비등비등 했는데 연아 특별 할인을 적용하니 오히려 백화점 제품이 더 싸게 나와 당장 구입하였다. 그동안 티비가 없어서 불편함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는데 단 한 번의 외출로 해결하고 게다가 가격까지 만족스러우니 더할 나위 없었다. 연아와 함께 한 하루. 아주 시원하고도 현명한 베팅이었다.

p.s. 이제 언론의 후폭풍이 두려운 시점인데... 운동선수, 피겨선수로서의 연아에만 포커스를 맞춰주고 이를 계기로 피겨 종목의 인프라를 확장시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면 어떨까? 응. 아마 안 되겠지? 연아네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함까지 뒤져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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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결과는...


가...가...감사합니다.

세상에나!
최종 보스 네덜란드 끄라머 선수가 실격패 당하다니!
말도 안 되는 신기록을 수립하고 기립박수를 받다가 감독과 뭐라 뭐라 하더니 급 흥분하여 고글을 내던져 버릴 때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었다. 인 코스인데 실수로 아웃 코스 밟을려고 했을 때에도 크게 문제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심판진은 냉정하였다.
서른 넷 노장(-.-;;) 데 용 선수와 은메달따고 금메달처럼 기뻐하던 러시아 선수.
그리고 무엇보다 몸살로 끙끙 앓으며 밤을 지새던 내게 기적의 드라마를 보여준 이승훈 선수!
모두 다 감격적이었다.
상대적으로 왜소한, 그리고 만미터 빙속에선 특별한 경력도 없던 한국의 선수를 두 유럽 선수가 다리를 잡고 높이 떠 받을어 칭찬해 주었을 때가 이번 올림픽 최고의 장면이었던 것 같다.
몸은 아프지만 덕분에 좋은 경기를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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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정보에 의하면 끄라머 선수와 감독간의 싸인이 맞지 않아서 인코스를 두 번 연속 돌았다고 한다.
어쩐지 넘사벽의 기록이 나오더만. 이제야 실격 사유가 제대로 이해 가는데... 해설자가 네티즌만 못하구려.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나 도전적이고 누구보다 재빠르게 선두에 자리하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영감님 혹은 관망자 자세가 몸에 배어서 몸이 움직일 때를 느긋허니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져버렸다. 수학문제 만큼 지독하게 꼬인 일을 눈 앞에 두고 이걸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하나 첫번째 점을 찍을 날 만을 기다려왔다. 컴퓨터 모니터와 기싸움을 벌이다가 설 연휴가 훌쩍 가고 어느새 마감이 코 앞으로 다가오자 억지로 펜을 잡고 이것 저것 그려보기 시작한다. 작업량과 작업속도 그리고 남은 시간을 견주어 봤을 때 이 때 쯤이면 가까스로 위험은 넘기겠구나 싶은 순간을 기다렸던 것이다. 더 이상의 고민은 지나치고, 정신적인 압박감이 스스로를 고문하며 억지로 몸을 종이 앞에 앉혀놓는 그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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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이 순간 일단은 이 살벌한 두통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
이런 저런 일들로 요즘 하루에 쓰는 이메일 양이 엄청나다.
게다가 그 전부가 영문인 덕분에 참으로 낯부끄러운 문장들을 열심히 생산해냈다.
그런 와중에 네덜란드의 유명 건축가 felix claus가 3월에 쮜리히공대(ETH) 제자들을 데리고 홍대에 워크샵하러 온다는데 나랑 저녁을 같이 먹잔다. 내가 쓰는 네덜란드 건축가이드북이 뭐 대단한 책이라도 되는줄 알고 만나자는 건 아닐까 우려가 앞선다. 당신의 귀중한 시간을 같이 보낼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은 아닌데 말이다. 내가 무슨 '공간'지 기자도 아니고. 그냥 자료 좀 제공해주는 대가로 가이드 역할을 해 달라는 거면 좋겠는데, 괜히 자기 건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그러면 뭐라고 해야하나. 흠... 옛날엔 좀 좋았는데 요즘 작업들엔 별 감흥을 못 느꼈어요. 의도적인 간결함(minimalism)인지 아니면 가난함으로 인한 꾸밈없음(nothingness)인지 잘 구분이 안 가거든요...라고 솔직해질 자신은 없다.
지구인들로부터 조금씩 기를 나눠받아 거대한 원기옥을 모으는 손오공의 마음으로
수십개의 건축회사들에게 다시 사진과 도면을 구걸하기 시작하였다.
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굿 럭을 외쳐본다.

+ 100205
몇 몇 업체들이 친절하게도 메일을 받자마자 긍정적인 답변을 줘서 기쁘다.
게다가 네덜란드에서는 건축 사진으로 알아주는 사진가 luuk kramer가 나의 책을 위해 친히 본인의 사진들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한동안 벅찬 감격으로 혼자 멍해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다른 사진들과의 퀄리티 차이로 너무 극명한 대비가 발생될까 우려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지.
가난한 작가의 고집에 응해 준 사람들께 무한한 감사를.
제목에서 년도를 10이라고만 쓰니까 무척이나 어색합니다.
마치 나는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듯. 

감기 기운을 적절한 낮잠으로 가볍게 날려 보내고
고장난 세탁기의 문을 동전 하나로 멋지게 열어드리고
별 거 없는 재료로 준수한 스파게티를 해 먹은 뒤
그동안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헤매던 도구를 우연찮게 찾았으니
이제는 진정 기쁜 마음으로 도약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시험을 친 친구도
지난 주말과 달리 왁자지껄한 금요일 밤을 보낸 당신도
같은 마음 이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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