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피아노, 리코더, 하모니카 등의 악기를 사 주신 적은 있지만 순수하게 내 의지로 악기를 산 적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선물했던 통기타를 나도 한 번 연주해보겠노라 올 초에 빌린 적이 있지만 무슨 저주에 걸린 악기처럼 집에 가져다 놓은 그 순간부터 기타에 대한 관심과 의욕이 깨끗하게 증발해 버렸다. 쌩판 모르는 기타보다는 그래도 다장조 음계는 칠 줄 아는 건반이 내 스타일이라는 핑계와 함께 기타는 여전히 방 한 구석에서 레쟈 케이스에 싸여 오래도록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마 한참 뒤 자크를 열었을 때 안에서 전혀 엉뚱한 물건이 튀어나와도 그다지 놀라지 않을 정도로 나는 기타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지낸다.

대신 미디 음악에 대한 나의 관심은 피아노나 기타 보다 더욱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렸을 적 접한 패미콤 오락의 영향이 지배적인데 당시 드래곤 퀘스트나 파이널 판타지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고전이었다. 롤 플레잉 게임의 특성상 한 번 시작을 하게 되면 적어도 한 달 정도는 하나의 오락과 교감을 나누는 셈인데 그러는 와중에 구수하게 뿅뿅대는 미디 사운드에 마음을 뺐겨나 보다. 사골 우려내 듯 오케스트라 버전, 피아노 버전, 클럽 리믹스 버전이 이어서 시중에 발매되지만 뭐니 뭐니해도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비쥬얼이 가미된 스토리가 있고 거기에 항상 좋은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니 이는 한 편의 장대한 뮤지컬을 감상하는 것과 견줄만 하다. 더욱이 rpg게임의 특성상 내가 주인공이 되어 미션들을 헤쳐나가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몰입되는 수준이 관람자의 입장을 넘어서고 일종의 이미지 컴플렉스를 느끼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전자 음에서 어린 시절의 내가 보이니 미디는 일종의 노스탈지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미콤 시절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최초로 현실에 반영된 것은 수신 알림음을 내가 만들어 넣을 수 있는 핸드폰을 갖게 된 최근의 일이다. 인터넷에서 하라는 대로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가진 mp3파일을 변환하여 핸드폰에 넣어 봤는데 이게 생각처럼 괜찮은 시스템이 아닌가보다. 아무리 내가 여러가지 방법을 써서 변환을 해봐도 심한 노이즈가 깔렸고 돈 주고 다운 받은 음원과 음질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전문 기자재를 갖춘 음악인이 아니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박한 최초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최근에 우연히 동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고 거기서 작곡가가 열심히 두드려 대는 물건을 보고 첨 보는 물건을 간 보는 고양이마냥 뇌 한 구석이 킁킁대기 시작하였다. (→ 클릭) 영상 중간에서 잠시 멈춘 후 악기에 쓰여진 글씨를 자세히 보자 물건의 정체가 드러났다. korg pad kontrol. 이 걸 악기라고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내가 음악인이 아니라 정확히 정의내릴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엔 이것도 일종의 악기인 듯 싶었다. 4x4로 배열된 고무 패드에 원하는 음원을 저장한 후 두드릴 때 마다 그 소리가 나오게 하는 기계라서 드럼이 될 수도, 건반이 될 수도, 기타나 베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더군다나 자세한 내용은 아직 모르지만 좌측 하단에 위치한 터치 패드를 이용해서 음원의 색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를 기쁘게 한 것은 바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래도 korg면 유명한 장비를 생산하는 믿을만한 회사이고 현역 작곡가가 사용하는 콘트롤러임에도 가격은 12~13만원에 형성되어 있다. (정가는 27만원 정도 하지만 품절되었고 중고 장터에 거래도 왕성한 편이라 가격이 착하다.) 오래 생각할 필요 없이 딱 하루 고민해 본 뒤 바로 구입 결정을 하였다.

한껏 고조된 나의 기대감과는 달리 오늘 택배로 배송 된 물건은 상당히 지저분해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역시 물건들 중에 가장 싼 물건을 택했으니 이 정도는 감수하라는 뜻이었을까. 피씨방 키보드처럼 담뱃재와 각종 이물질이 여기 저기 붙어있었고 틈새마다 때가 꼬질 꼬질했다. 결국 물티슈와 전자제품 청소 도구와 마지막으로 알콜 솜까지 동원하여 환골 탈태를 시켰다. 본인도 무척이나 흡족한 듯 옆에서 패드 속에 내장된 붉은 빛을 반짝 반짝 내뿜고 있다. (전원을 킨 후 한동안 놔 두면 랜덤으로 불빛이 깜빡이는 기능일 뿐이다. 오해 말자.) 아직은 매뉴얼도 읽어보지 않았고 테스트 할 미디 음원도 없으니 어떤 성능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인생 최초로 음악과 관련된 장비를 구했다는데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스피커는 제외시키자 -.-) 건반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뭔가를 꿍짝 꿍짝 만들어 볼 수 있겠으나 건반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상당한 금액이 필요하니 아직은 언제가 될 거라고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당분간은 그냥 드럼 소리 좀 집어 넣고 패드를 퉁퉁 거리면서 박자 연구 좀 하는 수준에서 머물 듯 싶다.

음악을 직업적으로 할 생각은 꿈에도 없고 뭔가를 만들더라도 공개할 의사도 아직은 없다. 그냥 조금씩 조금씩 미디에 대해 알아가다가 나이 마흔 즈음에 떳떳하게 한 곡 정도 들려줄 만 하게 되면 여한이 없겠다. 하지만 어짜피 음악은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꿈이었기에 죽을 때 까지 기초에 머무른다고 해도 전혀 억울할 일은 없다. 그냥 재밌는 장난감 하나 샀다는 생각으로 살란다.


p.s.1. 상형과 동률형 공연에 반도네온 연주자로 참여했던 고상지 양에게 공연 사진을 전달해 주던 와중에 그녀가 드래곤 퀘스트와 파이널 판타지 음악의 상당한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파이널 판타지 앨범 대부분을 mp3로 보내줬더니 너무 기뻐하는데 뭔가 비슷한 취향의 사람을 만나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p.s.2. 스캐너 위에 타블렛이 있고 그 위에 패드콘트롤이 있다. 책들은 책장 용량의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고 초등학교 때 부터 쓰던 책상은 작업하기엔 너무 작다. 단순한 형태에 2인 이상이 쓸 수 있을 정도로 길다란 책상 파는 곳을 안다면 가차없이 답글 달아주시길...  
담배를 끊기 어려운 이유는 니코틴으로 인한 중독성도 있겠지만 담배를 핀다는 특정 행위를 위해 손과 입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새로운 학설을 주장하는 바이다. 잘 생각해 보면 아무리 분주하게 활동하는 신체 기관들이라도 손과 입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상호 작용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화를 받으면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경우 실상 귀, 입, 손이 동시에 움직이겠지만 입으로 말 하는 행위와 손가락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운동은 엄연히 다른 목적을 띄고 있기 때문에 교류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없다. 가장 명료한 예로는 바로 식사를 들 수 있는데 칼로 음식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거나 스푼 위의 국물을 흘리지 않고 입에 가져가는 것은 얼핏 쉬운 듯 해도 상당한 기간의 가르침과 실패를 통해 얻게 된 능력이며 음식을 온전히 입 속에 넣어야 한다는 의무 이후에 연속되는 치아와 혀의 작용은 곧 풍요로운 맛을 감각하며 위장에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필수적 과정이다. 입과 손을 활용한 남녀간의 애정표현도 이러한 맥락에서 동등한 범주내에 속한다고 보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럼 왜 하필 손과 입의 관계냐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인류의 직립 보행 이후로 감각기관이 재편성 되고 특정 부위가 확장됨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으며 생존과 직결되는 두 가지, 영양 섭취와 종족 번성에 대해 인간 무의식 깊숙히 각인된 위기감이 두 기관의 상호 작용을 통해 경감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또한 부족한 욕구를 해소했을 때의 카타르시스가 알게 모르게 끽연자들의 손에서 담배를 놓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흡연은 곧 각종 암의 발생과 관계가 있으며 수명을 깎아먹는 행위라는 사실은 인류 생존을 위해 길들여진 습관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역설과 같다. 그렇다면 담배는 bc 1000년경 마야 문명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유전자 내에 본능적으로 죽음의 욕구를 거부하는 코드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또 하나의 미스테리이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될 수도 있다. 담배와 암 혹은 그로 인한 죽음의 관계는 최근의 의학 연구를 통해서 규명되었을 뿐, 그 이전에는 이렇다할 경고가 없었다. 아마도 담배가 해롭다는 상식이 꾸준히 주입되면 앞으로 100년 뒤에는 서서히 몸에서 거부 반응이 어떤 형태로든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 이전에 흡연자를 위한 물리적 공간이 규제되고 세금으로 인해 가격 상승이 유발되면 담배를 필 공간과 구입할 여유가 없어서 이 세상에서 담배가 사라지는 날이 올 가능성도 없진 않겠다.

한 끼 넉넉하게 먹은 뒤 피는 식후땡, 격렬하게 해치운 섹스 뒤의 한 모금. 마치 하나의 속담처럼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 이 표현만 봐도 담배를 폈을 때의 기분이 어떻길래 이러한 습관이 형성된 것인지 비흡연자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비록 담배를 끊은 인간과는 상종도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금연은 인류의 난제이지만 인생의 황혼기가 남국의 휴양섬에서나 볼 수 있는 황금빛 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책상 위 '불티나'의 가스를 모두 연소시키고 담배는 과감히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길 권하는 바이다. 금연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신체 부위를 언급하고 인류 역사를 되짚었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건강히 보내고 싶은게 이 글을 쓴 최초의 의도였음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다.
오기사디자인 회사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서식한다.
직원이 아니고 직함도 없는 나는 사무실에서 배선생님으로 통하고 원래 다른 이름이 있었던 이 고양이는 어느 날인가 부터 고선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리안숏헤어인데 미국까지 건너 가 나도 못 먹어 본 미국 물을 먹던 놈이다.(중성화 수술을 받았지만 그래도 수컷으로 쳐 주마) 어렸을 적에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건지 사람을 경계하고 틱 장애 환자처럼 가끔씩 몸을 움찔 움찔거리지만 그래도 사무실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특유의 방어적인 성격은 많이 유화되었다. 먹는 거 좋아하고, 구석탱이를 귀신같이 찾아 들어가 있고, 성격 장애가 있는 면들이 마치 나의 분신을 보는 것 같아 가급적 예뻐해 줄려고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이제는 배가 고파서 밥 달라고 우는 소리 정도는 구분할 수 있으니까 상당한 교감이 형성된 셈이다. 하지만 고양이 알러지가 있고 여기 저기 숨어 있느라 온갖 먼지를 뒤집어 쓴 녀석을 보통 가정의 고양이 만큼 귀여워 해 주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미션이다. 언제쯤 사람을 봐도 도망다니지 않고 순순히 목욕 물에 몸을 맡길런지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오기사디자인에서 뭔가 호칭이 불 분명한 존재들은 선생의 호칭을 부여받는데 최근 영어회화 수업을 위해 영입했다가 나처럼 자기 개인 작업을 위해 가끔 회사를 방문하는 영어 선생 마이클이 마선생으로 불리울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요즘.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 원하는 카메라 구성을 갖추긴 했지만 반대로 자잘하고 감칠맛나는 소비생활은 포기해야 했다.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던지,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지나가다 군것질을 한다던지, 백화점 세일 기간에 옷을 산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심지어 소개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이유도 다 같은 이유에 해당된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원하는 책을 바로 바로 사서 읽지 못하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하철로 왕래할 때 매번 똑같은 음악 듣는 것도 지겹고 평생 공부할 목적으로 산 영어 책들은 수도 없이 사전을 뒤져봐야 하는 까닭에 대중교통에서 할 짓이 못 된다. 가끔 그림도 있고 글도 부담스럽지 않은 책들이 딱 좋은데 요즘 땡기는 책들은 다음과 같다.

+ 지식의 미술관
+ 천 한개의 고원
+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
+ 마약은 범죄가 아니다: 네덜란드편
+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
+ 21세기 유럽 현대 미술관 기행

주로 미술과 현대사상을 대상으로 한 책이거나 아니면 네덜란드에 관한 책들이 그 대상인데 딱 하나만 사야 한다면 들뢰즈/가타리가 쓴 '천개의 고원'의 해설서 '천 한개의 고원'을 택하겠다. 왜냐하면 다른 책들은 한 번 봐도 족할 것 같은데 이 책은 2년에 한 번씩 다시 읽어봐줘야 조금씩 조금씩 내용을 이해할 것만 같아서이다.

내일은 서점에 가서 한 번씩 주욱 훑어 본 후에 두 권 정도만 구입하고 나머지는 집 근처에 있는 국립도서관의 신세를 져야할 것 같다. 조금만 걸어가면 방대한 지식의 창고가 있는데 (더군다나 최근 전자도서관도 지었고) 20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반성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나도 정말 되도 않는 변명을 하자면... 도서관 건물의 디자인이 빠리, 런던, 암스테르담의 도서관들 처럼 오지 말래도 가고 싶어지는 매력적인 장소였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적어도 강남역 국기원 근처 도서관처럼 매력적인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던지. 독서 행위는 책의 내용이 일차적으로 중요하겠지만 어떤 환경에서 읽느냐도 무시해선 안 되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탈로 작업을 해야 할 일들이 왕왕 생기면서 필름 구성들을 정리하기로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예산과 스케줄에 맞춰 물품을 사고 파는 일은 정말 전기구이 치킨집 유리창 안에서 돌고 있는 닭처럼 진과 영혼이 다 빠지는 과정이었다. 주식 현황을 살피기 위해 하루종일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몇 날 며칠을 중고 장터를 뒤적인 결과 그럭저럭 크게 손해 보지 않고 디지탈 라인 업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내가 허비한 시간과, 왔다 갔다 하면서 쏟은 에너지와, 언제쯤 매물이 나올까 노심초사 마음만 졸이며 일이 손에 안 잡혔던 걸 고려하면 분명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밑지는 장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바탕으로 변증법적 논리를 적용해보면 이보다 더 큰 액수의 돈을 움직여야 하는 주식의 경우 난 절대로 손도 대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래서 이 모든 잡소리에도 불구하고 결국 손에 쥔 물건들을 공개하자면.
라이카 최초의 디지탈 레인지파인더인 M8과 35mm summicron 4세대, 역시 원 바디 원 렌즈의 간결한 구성이다.

허나 렌즈용 uv/ir필터를 월요일에 택배로 받게 되고, 새로운 친구에 걸맞는 가죽스트랩을 살 예정이니 진정한 개시일은 월요일 부터나 가능할 것이다. 마치 다큐사진가인냥 언제든 사진 찍을 준비가 돼 있으려는 생각에 바디용 속사케이스를 구매해서 항시 메고다닐 생각이었으나 지옥철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카메라에 흠집이 생길 걸 상상하니 누가 내 몸에 해코지라도 한 듯 불쾌한 느낌을 받아 그냥 예전처럼 케이스 없이 안전하게 카메라 가방에 넣어 다니기로 했다. 더군다나 파일을 옮기기 위해 sd메모리를 뺄려면 매번 케이스를 벗겨야 하는 반복작업이 너무 번거로울 것 같았다.

어쨌거나 꿈에 그리던 렌즈 녹티룩스를 구입해서 온 천하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었는데 렌즈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나의 행태가 맘에 안 들어 조금 더 검소한 구성을 갖춘 것이기도 하다.(녹티룩스는 정말 대단한 렌즈였고 감히 최고라 말하고 싶지만 나의 소심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이효리랑 사귀면서 효리를 여왕처럼 모신다고 생각하면 어느정도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행여 케이스로 보호되지 못하는 부분에 기스가 갈까봐 카메라만 달랑 메고 다니지 못하는 이 nano mind는 결국 내가 라이카라는 고급 기종을 쓰는 한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아 이 물신주의의 망령이여.

대신 디지탈인 만큼 원 없이 셔터를 날리며 카메라의 진정한 존재 목적을 이루면 단순히 물건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고장 없이 오래 쓰고 싶어서 깨끗이 아끼는 걸로 이해되겠지. 오늘 이전에 쓰던 필름카메라를 파는데 구매자가 깨끗한 상태에 감동받는 것을 보고 나도 같이 뿌듯했으니 말이다. 
아 대박이다...

클릭

어머니께서는 무척이나 엄하셨고 학업과 관계 없는 물품들은 잘 사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사진상의 물건들은 구슬, 팽이, 라디오 빼고는 거의 가져본 적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상품들을 알아보고 마치 내 것처럼 추억할 수 있는 것은 다 좋은 친구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져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동에 대한 동경 때문에 연필깎이도 자동으로 사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열차 모양의 수동 연필깎이가 이미 나의 선택과는 상관 없이 있었기 때문에 차마 하나 더 사달라고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일부러 고장낼만한 꾀를 부릴 만큼의 재주도 없었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면 여기 저기서 뚜껑이 열리며 돋보기도 나오고, 필통 안의 연필이 발사대의 미사일처럼 45' 각도로 튀어나오기도 하고, 연필 깎이도 한 켠에 숨어 있는 필통은 또 하나의 로망이었다. 생일 선물로 기껏 연필 한 다스 받는 것에 만족해야 했던 시절이어서 무서운 어머니께는 감히 사달라고 할 엄두도 못 냈지만 운이 좋았던 건지 초등학교 2학년 당시 내 짝꿍 미남이는 문방구 집 딸이었다.(그 아이 이름이 박미남이다) 미남이가 날 살짝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였고 나는 얼마 안 있으면 내 생일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몇 일을 조르고 조른 끝에 결국 정말로 꿈에 그리던 필통을 선물 받게 되었다. 솔직히 가정 형편으로 치자면 아버지는 당시 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하시던 사업가였고(당시 우리집은 자가용에 기사도 딸려 있었다. 나 그렇게 곱게 자랐다우) 미남이 아버지는 작은 문방구 하시던 분이셨으니 나보다 어렵게 살던 친구를 곤란하게 만든데 대해 어린 마음에도 미안한 감정이 조금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자신의 소유는 아니지만 온갖 장난감에 둘러싸여 사는 짝의 인생을 동경했고 그녀의 무리한 선물을 받고 진심으로 행복했었다. 옷 상표가 어떻든, 밥 반찬이 어떻든, 백과사전이 있든 없든, abe책 전집이 있든 말든, 원목 영창 피아노와 마란츠 오디오가 있든 그런 건 하나도 초등학생의 행복에 도움이 되질 않았었다. 나는 그저 그 전자동 필통 하나면 좋았던 것이었다.

그러던 내가 이렇게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고 무시무시한 물신주의에 빠져있다니 세월이 참 무섭게 느껴진다. 나이 일흔이 되면 20인치 아이맥, 라이카 m8, 35mm summicron 4세대, 뱅엔올룹슨 이어폰, psp 정도는 나와줘야 '와하하 한 때 이런 게 있었지?'라며 추억에 젖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불과 어제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리곤 겨우 겨우 힘들게 하나 찾아낸 단서는 마우스를 하나 사러 국제전자센터에 갔었다는 것.
네덜란드를 가지 않게 된 많은 이유 혹은 변명들을 대면서 저녁을 먹었다.
입은 하나의 주제를 얘기하고 머리 속에는 오만 잡상이 뒤엉켜있고 손은 끊임없이 밥과 반찬을 실어 날랐다.
개강파티때 소주를 사발로 원샷하던 과대표처럼
먹을 땐 잘 몰랐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나서자 위장이 과부하를 알린다.
배가 터질 것 같은 괴로움에 하던 일에서 손 놓고 소화도 시킬 겸 오랜만에 걸어서 집에 왔다.
그 이후로 네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불량한 느낌이 남아있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예상한 일은 생각한 것과 달랐고
예측한 일은 궤도를 이탈했고
해야 할 일은 실천에 옮기지 못 했고
하고 싶은 일은 아직 저 만치에 있고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래도 비만 오면 이 모든 가뭄이 일순간에 해결될 것이라는 농부의 마음으로 살련다.
물꼬가 트이듯 하나가 터지면 긍정적인 연쇄반응이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요즘 나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특히 낮과 밤의 상태가 지킬과 하이드 만큼 극명하게 다르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엄습해 오면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온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게 된다.
말똥구리가 온갖 정성을 들여 똥을 구형으로 만들 듯 부정적인 생각들을 열심히 생산한 후 그것들을 하나 하나 품 안으로 쓸어 담는다. 그리고는 날이 밝으면 말똥구리에서 사람으로 환생한 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넋을 잃고만다.
똥 보다도 못한 불안과 고민 덩어리들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럴 땐 술이라도 진탕 먹고 정신을 마비시키면 좋을텐데 몸이 아프니 그것도 허락이 안 된다.
그렇다면 존재만으로도 깊은 위로가 될 만한 친구가 필요한데.
갑자기 준기가 보고 싶어진다.
(물론 다른 좋은 친구들이 섭섭해 할 수도 있지만... 오늘 저녁으로는 신사동 가로수길 너머에 있는 포크포크의 수제 햄버거가 땡기는데? 뭐 이런 느낌인게다.)
오랜만에 보는 내 사진.
(방문자도 손 꼽을 정도지만) 오픈된 블로그에 본인 사진 올리는 것이 좀 민망하기도 하고, 너무 미화된 것 같아 망설여지지만 찍사의 정성어린 마음을 받아들여 상판대기를 가감없이 공개한다.



카메라를 빌리러 한남동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 내내 화창한 가을 날씨가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들더라.
세상을 빛과 그림자로 양분할만큼 눈부신 빛줄기 임에도 쬐는 이를 말려 죽이려는 듯한 한여름 뙤약볕과 다른 인자함이 가득하였다. 하늘은 파랗고 갓 태어난 듯 포동 포동한 구름이 흐르니 그냥 어디 벤치에라도 앉아 동네 바보형처럼 멍청하게 있어도 부러움을 살 것만 같았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 한 무리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친구들과 마지막 수다를 나누는 것을 보니 문득 옛 생각이 났다. 계절이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이었으랴. 그냥 수업이 끝났다는 것에 기뻐하고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집에 가는 길이 가을 풍경보다 더 값진 순간이었는데. 이 따스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의 적절한 배합이 만들어낸 찬란함에도 아랑곳 하지않는 그들의 천연덕스러움이 위대하게 다가왔다. 모두가 같은 운명을 지고 살았기에 이런게 그냥 인생인가보다 착각하고 살았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건 나 뿐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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