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피아노, 리코더, 하모니카 등의 악기를 사 주신 적은 있지만 순수하게 내 의지로 악기를 산 적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선물했던 통기타를 나도 한 번 연주해보겠노라 올 초에 빌린 적이 있지만 무슨 저주에 걸린 악기처럼 집에 가져다 놓은 그 순간부터 기타에 대한 관심과 의욕이 깨끗하게 증발해 버렸다. 쌩판 모르는 기타보다는 그래도 다장조 음계는 칠 줄 아는 건반이 내 스타일이라는 핑계와 함께 기타는 여전히 방 한 구석에서 레쟈 케이스에 싸여 오래도록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마 한참 뒤 자크를 열었을 때 안에서 전혀 엉뚱한 물건이 튀어나와도 그다지 놀라지 않을 정도로 나는 기타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지낸다.
대신 미디 음악에 대한 나의 관심은 피아노나 기타 보다 더욱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렸을 적 접한 패미콤 오락의 영향이 지배적인데 당시 드래곤 퀘스트나 파이널 판타지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고전이었다. 롤 플레잉 게임의 특성상 한 번 시작을 하게 되면 적어도 한 달 정도는 하나의 오락과 교감을 나누는 셈인데 그러는 와중에 구수하게 뿅뿅대는 미디 사운드에 마음을 뺐겨나 보다. 사골 우려내 듯 오케스트라 버전, 피아노 버전, 클럽 리믹스 버전이 이어서 시중에 발매되지만 뭐니 뭐니해도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비쥬얼이 가미된 스토리가 있고 거기에 항상 좋은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니 이는 한 편의 장대한 뮤지컬을 감상하는 것과 견줄만 하다. 더욱이 rpg게임의 특성상 내가 주인공이 되어 미션들을 헤쳐나가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몰입되는 수준이 관람자의 입장을 넘어서고 일종의 이미지 컴플렉스를 느끼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전자 음에서 어린 시절의 내가 보이니 미디는 일종의 노스탈지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미콤 시절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최초로 현실에 반영된 것은 수신 알림음을 내가 만들어 넣을 수 있는 핸드폰을 갖게 된 최근의 일이다. 인터넷에서 하라는 대로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가진 mp3파일을 변환하여 핸드폰에 넣어 봤는데 이게 생각처럼 괜찮은 시스템이 아닌가보다. 아무리 내가 여러가지 방법을 써서 변환을 해봐도 심한 노이즈가 깔렸고 돈 주고 다운 받은 음원과 음질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전문 기자재를 갖춘 음악인이 아니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박한 최초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최근에 우연히 동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고 거기서 작곡가가 열심히 두드려 대는 물건을 보고 첨 보는 물건을 간 보는 고양이마냥 뇌 한 구석이 킁킁대기 시작하였다. (→ 클릭) 영상 중간에서 잠시 멈춘 후 악기에 쓰여진 글씨를 자세히 보자 물건의 정체가 드러났다. korg pad kontrol. 이 걸 악기라고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내가 음악인이 아니라 정확히 정의내릴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엔 이것도 일종의 악기인 듯 싶었다. 4x4로 배열된 고무 패드에 원하는 음원을 저장한 후 두드릴 때 마다 그 소리가 나오게 하는 기계라서 드럼이 될 수도, 건반이 될 수도, 기타나 베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더군다나 자세한 내용은 아직 모르지만 좌측 하단에 위치한 터치 패드를 이용해서 음원의 색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를 기쁘게 한 것은 바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래도 korg면 유명한 장비를 생산하는 믿을만한 회사이고 현역 작곡가가 사용하는 콘트롤러임에도 가격은 12~13만원에 형성되어 있다. (정가는 27만원 정도 하지만 품절되었고 중고 장터에 거래도 왕성한 편이라 가격이 착하다.) 오래 생각할 필요 없이 딱 하루 고민해 본 뒤 바로 구입 결정을 하였다.
한껏 고조된 나의 기대감과는 달리 오늘 택배로 배송 된 물건은 상당히 지저분해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역시 물건들 중에 가장 싼 물건을 택했으니 이 정도는 감수하라는 뜻이었을까. 피씨방 키보드처럼 담뱃재와 각종 이물질이 여기 저기 붙어있었고 틈새마다 때가 꼬질 꼬질했다. 결국 물티슈와 전자제품 청소 도구와 마지막으로 알콜 솜까지 동원하여 환골 탈태를 시켰다. 본인도 무척이나 흡족한 듯 옆에서 패드 속에 내장된 붉은 빛을 반짝 반짝 내뿜고 있다. (전원을 킨 후 한동안 놔 두면 랜덤으로 불빛이 깜빡이는 기능일 뿐이다. 오해 말자.) 아직은 매뉴얼도 읽어보지 않았고 테스트 할 미디 음원도 없으니 어떤 성능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인생 최초로 음악과 관련된 장비를 구했다는데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스피커는 제외시키자 -.-) 건반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뭔가를 꿍짝 꿍짝 만들어 볼 수 있겠으나 건반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상당한 금액이 필요하니 아직은 언제가 될 거라고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당분간은 그냥 드럼 소리 좀 집어 넣고 패드를 퉁퉁 거리면서 박자 연구 좀 하는 수준에서 머물 듯 싶다.
음악을 직업적으로 할 생각은 꿈에도 없고 뭔가를 만들더라도 공개할 의사도 아직은 없다. 그냥 조금씩 조금씩 미디에 대해 알아가다가 나이 마흔 즈음에 떳떳하게 한 곡 정도 들려줄 만 하게 되면 여한이 없겠다. 하지만 어짜피 음악은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꿈이었기에 죽을 때 까지 기초에 머무른다고 해도 전혀 억울할 일은 없다. 그냥 재밌는 장난감 하나 샀다는 생각으로 살란다.
p.s.1. 상형과 동률형 공연에 반도네온 연주자로 참여했던 고상지 양에게 공연 사진을 전달해 주던 와중에 그녀가 드래곤 퀘스트와 파이널 판타지 음악의 상당한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파이널 판타지 앨범 대부분을 mp3로 보내줬더니 너무 기뻐하는데 뭔가 비슷한 취향의 사람을 만나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p.s.2. 스캐너 위에 타블렛이 있고 그 위에 패드콘트롤이 있다. 책들은 책장 용량의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고 초등학교 때 부터 쓰던 책상은 작업하기엔 너무 작다. 단순한 형태에 2인 이상이 쓸 수 있을 정도로 길다란 책상 파는 곳을 안다면 가차없이 답글 달아주시길...
대신 미디 음악에 대한 나의 관심은 피아노나 기타 보다 더욱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렸을 적 접한 패미콤 오락의 영향이 지배적인데 당시 드래곤 퀘스트나 파이널 판타지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고전이었다. 롤 플레잉 게임의 특성상 한 번 시작을 하게 되면 적어도 한 달 정도는 하나의 오락과 교감을 나누는 셈인데 그러는 와중에 구수하게 뿅뿅대는 미디 사운드에 마음을 뺐겨나 보다. 사골 우려내 듯 오케스트라 버전, 피아노 버전, 클럽 리믹스 버전이 이어서 시중에 발매되지만 뭐니 뭐니해도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비쥬얼이 가미된 스토리가 있고 거기에 항상 좋은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니 이는 한 편의 장대한 뮤지컬을 감상하는 것과 견줄만 하다. 더욱이 rpg게임의 특성상 내가 주인공이 되어 미션들을 헤쳐나가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몰입되는 수준이 관람자의 입장을 넘어서고 일종의 이미지 컴플렉스를 느끼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전자 음에서 어린 시절의 내가 보이니 미디는 일종의 노스탈지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미콤 시절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최초로 현실에 반영된 것은 수신 알림음을 내가 만들어 넣을 수 있는 핸드폰을 갖게 된 최근의 일이다. 인터넷에서 하라는 대로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가진 mp3파일을 변환하여 핸드폰에 넣어 봤는데 이게 생각처럼 괜찮은 시스템이 아닌가보다. 아무리 내가 여러가지 방법을 써서 변환을 해봐도 심한 노이즈가 깔렸고 돈 주고 다운 받은 음원과 음질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전문 기자재를 갖춘 음악인이 아니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박한 최초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최근에 우연히 동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고 거기서 작곡가가 열심히 두드려 대는 물건을 보고 첨 보는 물건을 간 보는 고양이마냥 뇌 한 구석이 킁킁대기 시작하였다. (→ 클릭) 영상 중간에서 잠시 멈춘 후 악기에 쓰여진 글씨를 자세히 보자 물건의 정체가 드러났다. korg pad kontrol. 이 걸 악기라고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내가 음악인이 아니라 정확히 정의내릴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엔 이것도 일종의 악기인 듯 싶었다. 4x4로 배열된 고무 패드에 원하는 음원을 저장한 후 두드릴 때 마다 그 소리가 나오게 하는 기계라서 드럼이 될 수도, 건반이 될 수도, 기타나 베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더군다나 자세한 내용은 아직 모르지만 좌측 하단에 위치한 터치 패드를 이용해서 음원의 색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를 기쁘게 한 것은 바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래도 korg면 유명한 장비를 생산하는 믿을만한 회사이고 현역 작곡가가 사용하는 콘트롤러임에도 가격은 12~13만원에 형성되어 있다. (정가는 27만원 정도 하지만 품절되었고 중고 장터에 거래도 왕성한 편이라 가격이 착하다.) 오래 생각할 필요 없이 딱 하루 고민해 본 뒤 바로 구입 결정을 하였다.
한껏 고조된 나의 기대감과는 달리 오늘 택배로 배송 된 물건은 상당히 지저분해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역시 물건들 중에 가장 싼 물건을 택했으니 이 정도는 감수하라는 뜻이었을까. 피씨방 키보드처럼 담뱃재와 각종 이물질이 여기 저기 붙어있었고 틈새마다 때가 꼬질 꼬질했다. 결국 물티슈와 전자제품 청소 도구와 마지막으로 알콜 솜까지 동원하여 환골 탈태를 시켰다. 본인도 무척이나 흡족한 듯 옆에서 패드 속에 내장된 붉은 빛을 반짝 반짝 내뿜고 있다. (전원을 킨 후 한동안 놔 두면 랜덤으로 불빛이 깜빡이는 기능일 뿐이다. 오해 말자.) 아직은 매뉴얼도 읽어보지 않았고 테스트 할 미디 음원도 없으니 어떤 성능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인생 최초로 음악과 관련된 장비를 구했다는데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스피커는 제외시키자 -.-) 건반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뭔가를 꿍짝 꿍짝 만들어 볼 수 있겠으나 건반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상당한 금액이 필요하니 아직은 언제가 될 거라고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당분간은 그냥 드럼 소리 좀 집어 넣고 패드를 퉁퉁 거리면서 박자 연구 좀 하는 수준에서 머물 듯 싶다.
음악을 직업적으로 할 생각은 꿈에도 없고 뭔가를 만들더라도 공개할 의사도 아직은 없다. 그냥 조금씩 조금씩 미디에 대해 알아가다가 나이 마흔 즈음에 떳떳하게 한 곡 정도 들려줄 만 하게 되면 여한이 없겠다. 하지만 어짜피 음악은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꿈이었기에 죽을 때 까지 기초에 머무른다고 해도 전혀 억울할 일은 없다. 그냥 재밌는 장난감 하나 샀다는 생각으로 살란다.
p.s.1. 상형과 동률형 공연에 반도네온 연주자로 참여했던 고상지 양에게 공연 사진을 전달해 주던 와중에 그녀가 드래곤 퀘스트와 파이널 판타지 음악의 상당한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파이널 판타지 앨범 대부분을 mp3로 보내줬더니 너무 기뻐하는데 뭔가 비슷한 취향의 사람을 만나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p.s.2. 스캐너 위에 타블렛이 있고 그 위에 패드콘트롤이 있다. 책들은 책장 용량의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고 초등학교 때 부터 쓰던 책상은 작업하기엔 너무 작다. 단순한 형태에 2인 이상이 쓸 수 있을 정도로 길다란 책상 파는 곳을 안다면 가차없이 답글 달아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