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명사 '친구'를 대명사화 시킨 장본인이 여주인공 칸나에게 자기 소개를 하는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20세기 소년이다.'
세기가 변했음에도 영원히 지난 세기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과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것 처럼 자꾸만 어긋나는 인생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라사와 나오키는 특유의 짜임새 있고 긴박한 전개를 선보이고 있다. 예의 나오키 만화가 그러하듯 연재 중일 때에는 다음 권이 나오기 전에 이미 주요 사실을 다 망각해 버릴 만큼 인물 관계가 복잡한 까닭에 12권 까지만 보다가 포기해 버린 비운의 만화였다. 하지만 나오키의 이러한 특징은 결국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게 만화책을 사서 책장에 꽂으라는 강렬한 메세지로 해석할 수 있다. 비록 구매를 하진 않았지만 3일에 걸쳐 해치운 '20세기 소년'은 만화의 바이블이라 해도 좋을 만큼 놀라운 완성도와 흡입력을 갖추고 있다. 어떻게 8년의 긴 연재 기간동안 이리도 톱니바퀴 돌아가듯 스토리를 착착 진행시킬 수 있는 건지, 아무리 일본 만화계의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경이롭기만 하다. 1권 부터 24권까지 사건 순으로 연표를 만들어 본다면 대충 작가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해나가는지 그 패턴을 짐작할 수 있을까? 나오키의 이러한 작업 방식은 내가 앞으로 글을 쓴다고 할 때 한번쯤은 따라해 봐야 할 모범으로 여겨진다.
★★★★★
p.s. 결론을 알고나서 다시 훑어보니 몇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1. '친구'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울트라맨처럼 생긴 형상의 가면을 쓰고 다니는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2. 사람이 성형을 하면 얼굴은 비슷해질 수 있겠지만 목소리나 덩치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3.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셋이나 등장하는데 '신령님'도 혹시 칸나의 가족?
4. '친구'는 꿈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는데 정말 예지력이 있는 것인가.
5. 과거에 대한 집요한 집착은 일본 사회 특유의 미니멀리즘적인 정서의 비판인가 아니면 그냥 한 인물의 우연한 인생인가.
6. 미드 로스트와 20세기 소년의 전개 방식은 서로 유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