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kits](http://cache.reverbnation.com/widgets/content/28/footer.png)
![](http://www.reverbnation.com/widgets/trk/28/artist_345240/artist_345240/t.gif)
위젯을 클릭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어요
+
작년 11월쯤 예매를 했었나? 그 때는 정말 이 공연이 서울에서 열린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질 못했다. 물론 그 흥분은 내 방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이런 공연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테니까. 허공에 대고 무조건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외쳤다. 파이널 판타지 오케스트라 공연을 내 생에 볼 날이 오다니. 하지만 수중에 공연을 좋은 좌석에서 볼 넉넉한 자금따위는 없었다. 그래도 어짜피 한 명에 집중해야 하는 공연이 아니니까 3층 제일 뒷자리를 물색했다. 게다가 이번 공연을 핑계로 데이트를 해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더해 옆자리를 하나 더 예약했다. 아직 3개월 쯤 시간이 있으니 넌 할 수 있을거야 라며 의지를 다졌다.
+
아! 이건 무리수야! 3개월은 결코 길지 않았어. 그리고 난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았어.
그냥 아는 여자를 데려가기엔 이 공연은 너무 매니악했다. 그래도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진 '히사이시 조'나 '칸노 요코' 쯤 되어도 가줄까 말까 고민할텐데 '노부오 우에마츠'라니!!!
"이것 보셔. 그는 게임 음악계의 '존 윌리암스'라니까?"
'존 윌리암스'는 또 무슨 듣보잡이야 라고 되려 반문할 슬픈 시나리오가 머릿 속을 마구 스쳐갔다. 페이 왕(왕정문)이 부른 'eyes on me'나 이수영의 '얼마나 좋을까'를 지나가는 길에 한 번쯤 들어봤을 수는 있겠지만 그 곡을 위해 나머지 18곡을 희생해달라기는 너무 미안했다. 게다가 없는 돈 털어 마련해준 자리에서 하품을 참으며 눈문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기는 너무 너무 싫었다. 결국 이 모든 책임은 나의 과용에 있다며 공연을 2주 앞두고 옆자리는 취소.
아 피같은 예매+취소 수수료여~
+
오덕, 매니아의 길이 이렇게 외로운 것이었나. 남 눈치 안 보고 순수하게 대상에만 빠져드는 오타쿠가 되지 못한 불덕(불완전 오타쿠) 혹은 외덕(외로운 오타쿠)이라 불리어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내가 끔찍이도 좋아하는 걸 같이 누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텐데 소시적부터 만화와 오락에 정신이 팔린 운명이 참으로 가혹하도다.
+
워낙에 흔치 않은 기회라 그런지 파이널 판타지 매니아들은 예술의 전당에 다 모인 것 같았다. 2000~2500명 들어갈 것 같은 좌석이 거의 꽉 찼고 일본인, 서양인들도 꽤 보였다. 이틀 동안의 공연 표가 거진 다 팔렸으니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 하는 공연치고 비교적 흥행면에서는 성공적이지 않은가 싶다.
+
첫 곡 'liberi fatali(운명의 아이들)'이 합창단의 음성에서 엄숙하게 시작되고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절정에 달했을 때 진짜 눈물날 뻔 했다. 아...현장에서 실제로 듣는 음악의 박력이란 이렇게 멋진 것이었구나!!! 연주자 뒷편으로는 게임의 영상이 지나가고 머릿속에서는 1999년이 흘러갔다.
+
파이널 판타지는 현재 13편까지 나온 상태이다. 나는 플레이 스테이션 1 이후로는 게임기를 사지 못한 관계로 1~9편까지만 플레이 했었는데 1에서 5편까지의 음악은 선곡에서 너무 소외된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아니면 그동안 수 없이 연주되었던 까닭에 요즘은 레퍼토리가 차츰 7편 이후로 집중되는 것 일지도...
+
특별 게스트로 이수영이 나와서 10편의 주제곡 '얼마나 좋을까'를 불렀다. 잘만 했으면 공연의 백미로 기억되었을 법한, 중요한 위상을 차지 했는데 안타깝게도 이틀 공연 모두 관람객의 평이 좋지 않다. 혹자는 감기에 걸린 것이 아닌가 했는데 내 생각엔 엔지니어들이 사운드를 제대로 잡아주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너무 목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고나 할까. 조금만 성량을 변화시켜도 그 차이가 너무 크게 들린다.
얼마나 좋을까가 아니라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들리더라. 그러니까 이수영도 더 쫄아서 조심 조심 부르느라 결과적으로 비참한 라이브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이수영도 이 곡을 라이브로 불러본 적이 없었을 것 같다. 인터넷에 라이브 동영상이 있어 들어보니까 일백프로 립싱크였으니까.
+
안타까웠던 것이 비단 이 뿐만은 아니었다.
유라시안 오케스트라!!!
클래식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니지만 초보자가 듣기에도 좀 거슬렸다. 특히 호른은 연주에 늦을까봐 뛰어 왔나? 음이탈도 잦고 제일 불안하더라. 여기 저기서 실수를 범해서 그런지 플룻이었나? 하여튼 솔로가 있는 파트에서는 혹시 이러다 실수하는 거 아닌가 보고 있는 내가 다 긴장했다. 관악기 연주자들의 위태로움을 멋지게 커버한 사람들은 타악기 파트였다. 실로폰, 트라이앵글, 드럼 등등.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트라이앵글이라도 오케스트라에선 이렇게 멋진 사운드가 되는구나. 특히 팀파니에게 박수 박수... 덕분에 아주 박력이 살아났고 흥겨웠다. 평소 연습하던 클래식 음악이 아니었고 '고작' 게임 배경 음악이고 팬들을 위한 이벤트에 불과했지만 연주 자체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피아노 솔로인 'kids run through the city'라는 곡이다. 정말 아이가 오래된 도시의 골목을 마구 달리는 듯 경쾌한 진행이 으뜸인데 이 곡을 들으면 마치 따뜻한 깃털로 감싼 듯 마음이 평안해지고 차분해 진다. 영혼이 치유되고 근심걱정이 정화되는 느낌. 이 곡을 라이브로 들을 날이 과연 올까?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곡은 '에어리스의 테마'인데 이번에 들었으니 반쯤은 소원 성취를 한 셈이다. 아 근데 이 곡 역시 듣고 있으면 눈물이 글썽.
+
프로그램 상의 모든 곡이 끝나고 지휘자 '애니 로스'가 작곡가 '노부오 우에마츠'를 연단에 모셨다. 지휘자가 재미를 주고자 작곡가에게 노래를 한 곡 하라고 했는데 작곡가는 막상 마이크를 잡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노래는 도저히 안 되겠고 앵콜송에 코러스로 참여하겠노라며 짧은 다리를 쭐레 쭐레 흔들고 합창단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관객들은 다 신나서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냈는데 알고보니 이전 공연에서도 똑같은 해프닝을 연출했었다 카더라. 난 또 막공의 특별 이벤트인가 했는데 계획된 꽁트를 태연하게 치룬 거라니. 요즘 대세는 '리얼'인 걸 모르셨구나.
+
저번 주 부터 감기로 계속 고생중이어서 공연을 취소할까도 생각했었다. 혼자라서 그랬나? 가까운 예술의 전당이지만 그렇게 가기가 귀찮았다. 그런데 지금은 대만족. 여전히 공연의 감동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비록 또 나 혼자만 읽을 수 있는 컬렉션을 추가한 셈이지만 아무리 연주 수준이 어쩌네 저쩌네 해도 방구석에서 컴퓨터 스피커로 듣는 것에 비할 수가 없는 사운드였다. 콘서트 홀 좌석에 앉아 나는 게임을 플레이 하고 영상에 맞춰 오케스트라가 실시간으로 연주를 해주면 어떤 느낌일까 미친 상상을 해 본다. 이건 뭐 부모님 팔순잔치에 마이클 잭슨을 불러 쨍하고 해뜰 날을 불러 달라는 꼴이겠지. 그래도 빌 게이츠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완전히 우주도 아니고 대기권 언저리에 잠깐 갔다 오면서 민간인 우주 여행이랍시고 부자들이 수백억을 쓰는데 나 같으면 위와 같은 짓꺼리를 하고 있을 것 같다.
+
'우에마츠'가 살아 생전에 또 서울에서 공연할 날이 올까?
그 때는 언제쯤일까?
환상은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
→
공연 관련 기사_1
→
공연 관련 기사_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