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테리 길리엄!!!
★★★★
nick of time = just in time = 딱 맞게, 제 시간에
케이블 영화 채널에서 줄창 해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시간을 제때 맞추지 못해서 그동안 수 없이 지나쳤던 영화이다. 뭔가 분위기가 그럴싸 했던 것 같은 옛 기억을 더듬어 15년 전의 영화를 찾아 봤는데 너무도 치밀하게 짜여진, 날고 기는 요즘의 인질극 스릴러에 비하면 많이 어설프단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배우 'christopher walken'의 전성기 모습을 보는 걸로 위안을 삼았다. 2년 뒤의 영화 'suicide king'에서 절정에 오른 카리스마를 또 볼 날이 올 것인가. 이 양반이 '분노의 핑퐁'같은 영화에 나올 위치는 아닌데 말이지.
★★
몬티 파이톤과 성배.
영구와 OOO 시리즈처럼 몬티 파이톤과 XXX 시리즈들이 있는데, 몬티 파이톤이란 영국의 희극인 집단 중 하나라 한다. 1975년작 임에도 상당히 수준 높은 개그와 패러디를 선사하는데 주성치가 이 영화의 스타일을 많이 차용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유사한 느낌이 든다. 감독 중 한 명이 무려 ('브라질'이라는 걸작을 만든) '테리 길리엄'님이시라는 것도 이 오래된 영화를 구태여 보게 만든 큰 이유이다.
★★★☆






웨스 앤더슨 감독만큼 꾸준하게 자기 스타일을 이어가는 사람이 또 있을까?
주제는 가족 혹은 사랑, 캐릭터들은 멀쩡한 얼굴을 한 채 병신같은 행동을 일삼지만 그래도 연민이 솟아나고, 가내 수공업 스타일에 편집증적으로 정교한 공간 연출, 내용은 언제든 삼천포로 빠질 준비가 되어 있고, 그럼에도 언제나 희극을 강조하는 음악 선정. 그야말로 웨스 앤더슨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
다즐링 주식회사 ★★
스티브 지소우와의 해저생활 ★★★★
로얄 테넌바움 ★★★☆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러쉬모어) ★★★★

최근작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의 원작자는 찰리와 초컬릿 공장을 쓴 로알드 달이다. 아바타와 이 영화를 비교하자면 둘 다 인간이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데에 공통점이 있다. 전자의 경우는 시대를 앞서가는 대약진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후자의 경우는 '하라면 뭐 할 수는 있겠지만 굳이 21세기 기술복제시대에 원시 노동으로 집약된 예술을 성취해야 했을까'의 어조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보는 이는 눈이 즐거우니 감사할 따름이고 계속 옹고집 스타일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외로이 응원할 뿐이다.

오래되고 낡은 것을 지우기 위해 정부와 일부 시민들이 부단히도 애써준 덕분에 옛 모습을 많이 잃어버린 서울이지만 여전히 끈질긴 생명력으로 남아준 것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어린 시선과 경외가 눈물겹다. 한자와 국사라면 불볕더위에도 소름이 끼칠정도로 손사래를 치는 사람으로서 다소 힘겹게 책장을 넘기던 부분들이 있었지만 책이라는 건 꼭 전체를 읽지 않아도 되는 바 그냥 목차를 보고 관심가는 주제들만 읽어도 값진 수확일 것이라 믿는다. 소제목으로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언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역사적 사실들을 규명하는 방식이라 재미있다. 그만큼 단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얘기를 하고 있으니 서울 뿐만 아니라 서울 사람들이 쓰는 말 또한 예사롭지 않다.

단, 디자인에 관심있는 독자로서 조금 딴지를 걸자면, 표지를 멋지게 장식한 저 대상들은 책의 내용과 아무 상관이 없음이 아쉽다.

책의 내용은 별 다섯개짜리 이지만 나의 부족한 교양으로 인해 제법 난이도가 느껴졌던 바,
★★★
여름이. 나쁜 년 T_T
영화의 내용보다는 편집이 인상적.
★★★

천만 관객이 훌쩍 넘은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imax 3d의 좋은 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앞에서 여섯 번째 줄이었기에 더욱 가깝게 아이맥스와 입체영상의 박진감을 느낄 수 있었으나
워낙 멀미를 잘 하는 탓에 토나올 것 같아서 영화의 반은 3d 안경 없이 2중상 화면을 볼 수 밖에 없었다.
16000원에서 6000원 어치는 환불해주라~

그래도 정말 볼거리가 굉장한 영화였고 오락영화로서는 어디 한 군데 흠 잡을 곳이 없더라.
모션캡쳐 기술도, 3d 카메라 개발도, cg 기술도 모두 스태프들의 역량 혹은 미국 거대자본에 의해
진보를 이룬 결과인데 왜 다른 감독이 아닌 유독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에만 이런 어마어마한 혁신이
실현되는 것일까. 정말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을 꾸는 주체인가?
★★★★ 

봉준호 > 미셸 공드리 > 레오 까락스

'유레루(흔들리다)'라는 영화에 나왔던 배우가
'흔들리는 도쿄'에 캐스팅된 걸 보니 그 인연이 재밌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은 일본인보다 더 일본을 잘 아는 것 같았고
세밀한 공간 설정과 용의주도하게 쫓아다니는 카메라워크가 흥미로웠다.
남녀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마다 지진이 일어나고 그 지진은 히키코모리의
닫힌 틀을 깨고 세상에 나오라는 일종의 메시지이기도 한데...
문득 든 생각은,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는 가정하에,
특별한 터전에서 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민족성이 있을까?
예를 들어, 온 세상이 평지이고 바람이 많은 곳에서 사는 네덜란드인이라던가
섬나라이면서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인에게 찾아볼 수 있는 습성같은 것 말이다.
다 똑같이 검은 머리를 한 천만 인구가 좁은 땅덩이에서 미친듯이 부대끼는 서울에서는
남의 일에 참견 잘 하고 옆 사람과 동질화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것 처럼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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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1월쯤 예매를 했었나? 그 때는 정말 이 공연이 서울에서 열린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질 못했다. 물론 그 흥분은 내 방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이런 공연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테니까. 허공에 대고 무조건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외쳤다. 파이널 판타지 오케스트라 공연을 내 생에 볼 날이 오다니. 하지만 수중에 공연을 좋은 좌석에서 볼 넉넉한 자금따위는 없었다. 그래도 어짜피 한 명에 집중해야 하는 공연이 아니니까 3층 제일 뒷자리를 물색했다. 게다가 이번 공연을 핑계로 데이트를 해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더해 옆자리를 하나 더 예약했다. 아직 3개월 쯤 시간이 있으니 넌 할 수 있을거야 라며 의지를 다졌다.

+
아! 이건 무리수야! 3개월은 결코 길지 않았어. 그리고 난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았어.
그냥 아는 여자를 데려가기엔 이 공연은 너무 매니악했다. 그래도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진 '히사이시 조'나 '칸노 요코' 쯤 되어도 가줄까 말까 고민할텐데 '노부오 우에마츠'라니!!!
"이것 보셔. 그는 게임 음악계의 '존 윌리암스'라니까?"
'존 윌리암스'는 또 무슨 듣보잡이야 라고 되려 반문할 슬픈 시나리오가 머릿 속을 마구 스쳐갔다. 페이 왕(왕정문)이 부른 'eyes on me'나 이수영의 '얼마나 좋을까'를 지나가는 길에 한 번쯤 들어봤을 수는 있겠지만 그 곡을 위해 나머지 18곡을 희생해달라기는 너무 미안했다. 게다가 없는 돈 털어 마련해준 자리에서 하품을 참으며 눈문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기는 너무 너무 싫었다. 결국 이 모든 책임은 나의 과용에 있다며 공연을 2주 앞두고 옆자리는 취소.
아 피같은 예매+취소 수수료여~

+
오덕, 매니아의 길이 이렇게 외로운 것이었나. 남 눈치 안 보고 순수하게 대상에만 빠져드는 오타쿠가 되지 못한 불덕(불완전 오타쿠) 혹은 외덕(외로운 오타쿠)이라 불리어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내가 끔찍이도 좋아하는 걸 같이 누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텐데 소시적부터 만화와 오락에 정신이 팔린 운명이 참으로 가혹하도다.

+
워낙에 흔치 않은 기회라 그런지 파이널 판타지 매니아들은 예술의 전당에 다 모인 것 같았다. 2000~2500명 들어갈 것 같은 좌석이 거의 꽉 찼고 일본인, 서양인들도 꽤 보였다. 이틀 동안의 공연 표가 거진 다 팔렸으니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 하는 공연치고 비교적 흥행면에서는 성공적이지 않은가 싶다.

+
첫 곡 'liberi fatali(운명의 아이들)'이 합창단의 음성에서 엄숙하게 시작되고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절정에 달했을 때 진짜 눈물날 뻔 했다. 아...현장에서 실제로 듣는 음악의 박력이란 이렇게 멋진 것이었구나!!! 연주자 뒷편으로는 게임의 영상이 지나가고 머릿속에서는 1999년이 흘러갔다.

+
파이널 판타지는 현재 13편까지 나온 상태이다. 나는 플레이 스테이션 1 이후로는 게임기를 사지 못한 관계로 1~9편까지만 플레이 했었는데 1에서 5편까지의 음악은 선곡에서 너무 소외된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아니면 그동안 수 없이 연주되었던 까닭에 요즘은 레퍼토리가 차츰 7편 이후로 집중되는 것 일지도...

+
특별 게스트로 이수영이 나와서 10편의 주제곡 '얼마나 좋을까'를 불렀다. 잘만 했으면 공연의 백미로 기억되었을 법한, 중요한 위상을 차지 했는데 안타깝게도 이틀 공연 모두 관람객의 평이 좋지 않다. 혹자는 감기에 걸린 것이 아닌가 했는데 내 생각엔 엔지니어들이 사운드를 제대로 잡아주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너무 목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고나 할까. 조금만 성량을 변화시켜도 그 차이가 너무 크게 들린다.
가 아니라 까 이렇게 들리더라. 그러니까 이수영도 더 쫄아서 조심 조심 부르느라 결과적으로 비참한 라이브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이수영도 이 곡을 라이브로 불러본 적이 없었을 것 같다. 인터넷에 라이브 동영상이 있어 들어보니까 일백프로 립싱크였으니까.  

+
안타까웠던 것이 비단 이 뿐만은 아니었다.
유라시안 오케스트라!!!
클래식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니지만 초보자가 듣기에도 좀 거슬렸다. 특히 호른은 연주에 늦을까봐 뛰어 왔나? 음이탈도 잦고 제일 불안하더라. 여기 저기서 실수를 범해서 그런지 플룻이었나? 하여튼 솔로가 있는 파트에서는 혹시 이러다 실수하는 거 아닌가 보고 있는 내가 다 긴장했다. 관악기 연주자들의 위태로움을 멋지게 커버한 사람들은 타악기 파트였다. 실로폰, 트라이앵글, 드럼 등등.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트라이앵글이라도 오케스트라에선 이렇게 멋진 사운드가 되는구나. 특히 팀파니에게 박수 박수... 덕분에 아주 박력이 살아났고 흥겨웠다. 평소 연습하던 클래식 음악이 아니었고 '고작' 게임 배경 음악이고 팬들을 위한 이벤트에 불과했지만 연주 자체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피아노 솔로인 'kids run through the city'라는 곡이다. 정말 아이가 오래된 도시의 골목을 마구 달리는 듯 경쾌한 진행이 으뜸인데 이 곡을 들으면 마치 따뜻한 깃털로 감싼 듯 마음이 평안해지고 차분해 진다. 영혼이 치유되고 근심걱정이 정화되는 느낌. 이 곡을 라이브로 들을 날이 과연 올까?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곡은 '에어리스의 테마'인데 이번에 들었으니 반쯤은 소원 성취를 한 셈이다. 아 근데 이 곡 역시 듣고 있으면 눈물이 글썽.

+
프로그램 상의 모든 곡이 끝나고 지휘자 '애니 로스'가 작곡가 '노부오 우에마츠'를 연단에 모셨다. 지휘자가 재미를 주고자 작곡가에게 노래를 한 곡 하라고 했는데 작곡가는 막상 마이크를 잡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노래는 도저히 안 되겠고 앵콜송에 코러스로 참여하겠노라며 짧은 다리를 쭐레 쭐레 흔들고 합창단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관객들은 다 신나서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냈는데 알고보니 이전 공연에서도 똑같은 해프닝을 연출했었다 카더라. 난 또 막공의 특별 이벤트인가 했는데 계획된 꽁트를 태연하게 치룬 거라니. 요즘 대세는 '리얼'인 걸 모르셨구나.

+
저번 주 부터 감기로 계속 고생중이어서 공연을 취소할까도 생각했었다. 혼자라서 그랬나? 가까운 예술의 전당이지만 그렇게 가기가 귀찮았다. 그런데 지금은 대만족. 여전히 공연의 감동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비록 또 나 혼자만 읽을 수 있는 컬렉션을 추가한 셈이지만 아무리 연주 수준이 어쩌네 저쩌네 해도 방구석에서 컴퓨터 스피커로 듣는 것에 비할 수가 없는 사운드였다. 콘서트 홀 좌석에 앉아 나는 게임을 플레이 하고 영상에 맞춰 오케스트라가 실시간으로 연주를 해주면 어떤 느낌일까 미친 상상을 해 본다. 이건 뭐 부모님 팔순잔치에 마이클 잭슨을 불러 쨍하고 해뜰 날을 불러 달라는 꼴이겠지. 그래도 빌 게이츠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완전히 우주도 아니고 대기권 언저리에 잠깐 갔다 오면서 민간인 우주 여행이랍시고 부자들이 수백억을 쓰는데 나 같으면 위와 같은 짓꺼리를 하고 있을 것 같다.

+
'우에마츠'가 살아 생전에 또 서울에서 공연할 날이 올까?
그 때는 언제쯤일까?
환상은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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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된 도시를 살리겠답시고 너도 나도 가식적인 이벤트를 해대는 세상에 대한 풍자극?
까지는 아니고 그냥 아이가 있음 같이 보기 좋은 영화
★★☆


다큐는 세상의 어둠을 밝힌다.
목숨을 걸고 비밀을 파헤친 행동하는 지성에게 갈채를...
★★★☆


할아버지의 액션이 인디아나 존스 급이구나.
★★★

감독이 어지간히 사회에 불만이 많았나보다.
주인공에게 억지 재능을 부여한 건 우습지만,
누가 정의로운 것인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영화.
그니까 괜히 선량한 시민 건들지 말라굽쇼!
★★★☆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다.
그나저나 제라드 버틀러... 영화 엄청 찍네.
★★★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건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로 인한 현기증을 해소시키기 위함이었다.
정신분열적인 글로 인한 불쾌함을 소위 '청아'하다는 에쿠니 가오리의 문체로 위로받고 싶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반짝반짝 빛나는'과 '호텔 선인장'을 읽었었는데, 사실 두 책에 대한 개인적 감상이 너무 극명하게 달라서 이 작가의 책을 더 읽어야되나 의구심에 휩싸여 있었었다. 하도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의 경우 아이러닉한 설정과 담담하게 풀어내는 방식에 맘에 들었었던 것 같다. '호텔 선인장'의 경우는 조물주의 영역을 벗어나 기가 찬 캐릭터 설정과 다다이즘을 방불케하는 무의미한 내용에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대신 '호텔 선인장'에서는 벨기에의 아르누보 양식 건물들을 그린 정성어린 삽화가 더 인상적이었다. 마치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보다 요시토모 나라의 삽화가 더 맘에 들었던 것 처럼.

낙하하는 저녁은 기본적으로 실연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예의 에쿠니 가오리 글이 그렇듯 헤어짐 조차 정적이다. 기름기가 전혀 없는 닭가슴살 처럼 퍽퍽하고 무미건조하다. 그녀에게는 사랑도 죽음도 실연도 모든 극적인 상황이 그렇다. 마치 별 사진을 보는 것 같다. 30초만 셔터를 열어 두어도 북극성을 중심으로한 빛의 궤적이 남을 정도로 천체는 빠르게 돌고 있는데 육안으로는 인식이 어렵다. 수 시간이 지나서야 아 벌써 이만큼 왔는가 싶을 정도로 그 속도는 느리면서도 순식간이다. 더군다나 태양이나 달 같이 초점이 하나로 모이는 절대적 존재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별은 그 수많은 다른 별들로 인해 그냥 '별'이란 말이 복수나 다름없다. 일상은 그렇게 수많은 별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고 헤어짐이야 그저 그 중에 조금 더 반짝이는 하나의 별에 불과하다. 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이란 의미도 이런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슴프레 땅거미가 깔리는 듯 하다가 어느새 검은 밤이 발치까지 떨어졌을 때의 당혹감.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일상에 대한 묘사가 많다. 딱히 주인공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 같지도 않고 메타포가 되지도 못하는데 집요할 정도로 주변 사물을 들춘다. 그러다가 어느새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지나 싶으면 여지없이 추억이라는 시체를 해부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제품 매뉴얼을 보는 듯한 시선이 우리에게는 없는 일본인의 습성인가 싶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끝으로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더 이상 읽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말라 비틀어진 문체가 맘에 안 들어서는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대담한 상황 설정에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된 계기를 제공한 여인과의 동거. 더욱이 은근 싫지 않다가 결국 살갑고 정겹게 되는 이해 안 가는 인물 관계가 나와는 맞지 않았다. 이건 '반짝반짝 빛나는'에서의 기묘한 동거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일말의 공감이 가지 않는...
또한 책의 결말도 많은 불만을 토해내게 하였고 결정적으로 변역조차 오류가 듬성 듬성 보였다.
간결한 문체가 장점이 되는 이런 식의 소설은 전체를 읽기 보다는 그 날 그 날의 기분에 맞춰 몇 단락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일 듯 싶다. 그도 그럴것이 작가가 최초에 적은 몇 줄이 책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가장 인상적인 글이었으니까 말이다.

"이상한 말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 다케오하고 두 번 다시 안 만날 수도 있고,
다케오하고 새롭게 연애할 수도 있고,
지금 당장 다케오하고 같이 잘 수도 있어."
★★☆
각각의 단편마다 각기 다른 농도의 허탈감이 뒤섞여 있다.
평소엔 허무와 염세주의로 가득찼지만 글이나 대화로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싶은 나와는 반대되는 성향이랄까.
그래서 나의 추천은,
- 프랭크와 나
- 유쾌한 하녀 마리사
- 숟가락아, 구부러져라
- 비행기
- 이십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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